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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1 (화)

[조우석의 누보 파리(Nouveau Paris)] 파리의 심장에 태극기 휘날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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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4년 8월 태조 이성계는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직접 한양을 찾아 둘러보고 북악(北岳)을 주산으로 궁궐을 조성하고 천도할 것을 결정한다. 1392년 고려의 도성 개경의 수창궁에서 즉위하고 조선을 개국했지만, 개경에는 고려를 추종하는 수구 세력들이 그대로 남아있었고, 무엇보다도 새로운 왕조를 새 도읍지에서 시작하겠다는 이성계의 의지는 강력했다. 한양의 도시 계획은 정도전에 의해 건국이념인 성리학을 반영해 치밀하게 추진된다. “왼쪽에 조(祖, 종묘)를 두고 오른쪽에 사(社, 사직단)를 두며, 앞에는 조(朝, 육조)를 두고 뒤에 시(市, 시장)를 형성해야 한다.”는 주례고공기(周禮考工記)를 철저하게 따르고자 했다. 이에 따라,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 남쪽으로 오른편에 의정부, 이조, 한성부, 경조부, 호조가 왼편에 예조, 중추부, 사헌부, 병조, 형조, 공조가 세워져 숭례문으로 향하는 대로는 조선의 통치 이념을 구현하는 행정 중심으로 자리잡는다. 아울러, 육조거리(지금의 세종대로)의 남쪽 끝에서 십자 모양으로 만나는 종로 거리는 흥인지문(동대문)에서 출발해 경희궁 앞을 지나 돈의문(서대문)으로 이어지며 시장들과 연결되고 1,360간의 행랑들이 지어져 경제의 중심축으로 발전하게 된다.

서울의 세종대로와 종로처럼, 도시에는 도시를 지탱하는 척추와 같은 도로들이 있다. 파리도 예외는 아니다. ‘왕의 길(Voie Royale)’로 불리는 ‘파리 역사의 축(L’axe historique de Paris)’과 ‘공화주의의 축(L’axe Republicain)’이 파리를 지탱하는 대표적인 척추들이다. ‘왕의 길’은 프랑스에 마카롱과 포크를 처음 전파한 앙리 2세의 왕비 카트린 드 메디치가 사냥을 가기 위해 조성되기 시작한 길로, 루브르 박물관에서 시작해 튈르리 정원과 콩코르드 광장을 지나 개선문 너머로 향하는 직선대로다. 고결한 영혼들이 살았다는 그리스 신화 속 엘리시안 들판에서 이름을 따온 샹젤리제 거리 양쪽으로 들어선 명품 매장들, BIE(세계박람회기구) 총회가 열리는 포르트 마이요의 팔레 데 콩그레(Palais des Congre‘ s), 그리고 프랑스혁명 200주년을 기념해 길이 112m, 너비 106.9m, 높이 110.9m의 중앙이 비어 있는 입방체 모양으로 세워진 라데팡스의 ‘신 개선문(Grande Arche)’까지.

도로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직선으로 이어진다. 특히, 루브르에서 바라볼 때, 콩코르드의 오벨리스크와 이집트 원정에서 돌아온 나폴레옹을 축하하기 위해 세워진 개선문(L’arc de Triomphe) 뒤로 보이는 신도시 라데팡스의 마천루는 수백 년 전 과거에 서 있는 당신이 영화 속 미래 세계를 바라보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며 묘한 심장박동을 유도한다. 경제적으로 웅비하고 싶은 프랑스인들의 염원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것만 같다.

파리 경제의 축인 이 왕의 길과 십자 모양으로 교차하는 길인 ‘공화주의의 축(L’axe Republicain)’은 정치의 중심축이다. 이 축은 프랑스 고전 건축양식의 정수라 불리는 호텔 데 장발리드(Hotel des Invalides)에서 출발해 앵발리드 광장(Esplanade des Invalides)을 가로지르며, 센강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알렉상드르 3세 다리를 건너 현 프랑스 대통령의 집무실로 사용되는 엘리제궁까지 이어진다.

루이 14세에 의해 30년 전쟁에 참전한 부상병을 치료하는 병원으로 건축된 앵발리드는 정작 베르사이유에서 파리로 행차하는 왕을 영접하기 위해 세워진 12㎏의 황금으로 도금된 왕실 교회(지금의 생 루이 성당)의 돔(Dome)으로 더 유명하다. 이번 올림픽에서 우리의 궁사들이 과녁을 정조준할 때 그 뒤로 보이던 그 황금색 돔이다. 앵발리드는 프랑스혁명 기간 큰 전환점을 맞이한다. 혁명군이 앵발리드에 보관된 3만2000정의 소총을 탈취해 바스티유 감옥을 무너트리며 혁명이 시작된 것이다. 왕의 공간에서 시민의 공간으로 변화한 앵발리드는 나폴레옹 시대를 맞아 프랑스 군사 거점으로 확고한 위상을 다지게 된다.

군병원에 더하여 군사령부가 들어오고, 군사박물관이 조성되어 프랑스군의 역량을 자랑했으며, 군사팡테온에는 프랑스를 위해 헌신한 군인들이 봉헌된다. 앵발리드에는 붉은 규암으로 만든 관 속에 유해가 안치된 나폴레옹이 영면하고 있다. 프랑스인들이 온갖 어려움을 뚫고 나폴레옹의 유해를 앵발리드에 안치하고 싶어 했던 이유는 앵발리드에 대한 나폴레옹의 사랑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다.

앵발리드 광장 오른편으로 혁명 이후 외교부와 국민공회가 들어서고, 교육부, 노동부, 총리실 등 정부 기관들이 속속 들어서며 광장은 행정의 중심으로 자리잡는다. 광장의 왼편에는 각국의 대사관과 세계박람회 참가 국가들의 전시관이 들어서 외교의 각축장이 되고, 당시 프랑스의 위상을 반영이라도 하듯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는 네 개의 황금 천사 조각상이 반짝이는 다리를 자신의 아버지 이름으로 프랑스에 선물한다. 바로, 알렉상드르 3세 다리다. 센강을 건너면, 혁명 이후 프랑스의 가장 황금시대, 벨 에포크의 서막을 알리는 ‘예술을 위한 대궁전, 그랑 팔레’가 1900년 세계박람회에 맞춰 개관한 후 지금까지 그 위상을 뽐내고 있다.

보훈의 중심에서 행정과 외교의 터전으로 확대되고 가장 프랑스적인 예술적 건축물에 더해, 공화주의의 축은 프랑스 정치의 중심 엘리제궁까지 이어지며 파리는 물론 프랑스 정치의 심장으로 박동하고 있다.

앵발리드와 그랑 팔레. 이번 올림픽을 통해 우리 국민들에게 친숙한 이름이 되었다. 마치 우리의 홈구장 같은 느낌이다. 2024 파리 올림픽에 참가한 우리 대표단이 일궈낸 13개의 금메달 중 다섯 개(양궁)가 앵발리드 광장, 네 개(펜싱과 태권도)가 그랑 팔레에서 나왔다. 파리의 심장에서 애국가가 울리고 태극기가 휘날린 것이다. 프랑스 정치의 심장에서 휘날린 태극기이기에 그 감동은 더욱 컸다. 그랑 팔레를 대각선으로 마주한 샹젤리제 대로변에 세워진 삼성의 올림픽 체험관 또한 시상대에 오른 메달리스트들의 셀피를 경험하기 위한 세계인의 방문이 수백 미터의 줄로 이어져, 그 앞을 지나는 우리 국민들에게 금메달급 자부심을 주었다.

파리를 지탱하는 심장이자 척추, 그 중심축에 우뚝 선 대한민국. 올림픽으로 파리의 위상이 높아진 만큼이나 우리의 위상도 높아진 걸 느낀다.

매일경제

7월 31일 프랑스 파리 그랑 팔레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펜싱 남자 사브르 단체 결승전에 한국 응원단이 태극기를 들고 승리를 기원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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