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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2 (목)

[이상렬의 시시각각] 윤 정부 경제정책, 길을 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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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이상렬 수석논설위원


반도체 호황으로 수출은 호조인데, 서민 살림살이가 벼랑으로 내몰렸음을 알리는 지표가 쏟아지고 있다. 실업급여 신규 신청이 1년 전보다 7.6% 늘고(7월, 11만2000명), 소매판매액은 15년 만에 최대폭으로 뒷걸음질했다(2분기, -2.9%). 국민연금이 깎이는 것을 감수하고 앞당겨 받는 조기 수급자(신규)는 지난해 11만 명을 넘어 2022년보다 약 90% 증가했다. 많은 서민이 보험을 깨고 카드론과 급전 대출을 쓰며 버틴다. 지독한 양극화가 한국 경제를 붙잡고 있다.

윤석열 정부도 민생 회복을 위해 열심히 뛰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성과가 부진하다면 정책 방향성과 집행 과정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



수출 좋지만 서민 경기 악화일로

긴축 부작용에 정책 모순 심해

우선순위 다잡고 팀워크 다져야

우선, 재정 건전성에 갇혀버렸다. 2024년 예산 편성이 시발점이었다. 2005년 이후 최저 증가율(2.8%)이었다. 올해도 재정 건전화가 경제정책 전반을 짓누르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국가채무가 400조원이나 불어났으니 방만한 재정 운용의 정상화는 당연한 과제다. 그렇지만 물가 때문에 금리를 낮추기 어려운 상황에서 재정 긴축마저 지나치면 민생 경기는 얼어붙을 수밖에 없다. “이 정부는 재정 건전화를 내세우면서 각자 알아서 먹고살라고 해버린 것”이란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의 지적(중앙일보 8월 2일자 인터뷰)은 곱씹어볼 대목이다.

둘째, 부처 간 각자도생이다. 대표적인 게 금융과 부동산이다. 기준금리는 코로나 한창 때보다 3%포인트 높다. 불황인데 금리는 높고, 원리금 상환 유예도 끝났으니 자영업자들은 죽을 맛이다. 대통령실이 금리 인하를 종용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금리 인하는 가계부채 증가, 부동산 불안 등의 부작용을 야기한다. 금리 인하가 정부의 방향이라면 부동산 공급에 진작부터 초점을 맞추고 주택대출 제한을 엄격히 했어야 한다. 그러나 공급 대책은 충분치 않았고 정책대출은 확 늘었다. 감독 당국은 대출규제 강화(2단계 스트레스 DSR 도입)를 늦췄다. 대통령실, 기재부, 국토부, 금감원이 따로 노는 형국이었다. 결국 부동산이 뛰고 가계부채가 급증하면서 금리 인하의 여건만 나빠졌다.

셋째, 정책 간 모순이 심하다. 여권은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상속세율 인하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런데 세수 형편이 좋지 않다. 상반기 나라살림(관리재정수지) 적자는 100조원을 넘어섰다. 국세 수입은 세수 가뭄이었던 작년보다도 10조원 줄었다. 세금 폐지는 재정 건전화와 부합하지 않는다. 최소한 세수 부족을 메울 대안이 있거나, 감세가 세입 증대로 귀결된다는 확신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증시 활력 제고가 우선 목표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러나 그 경우라면 외국인 투자자가 문제 삼는 공매도 전면 금지를 하지 말아야 했고, 기업 가치를 높이는 밸류업 프로그램을 더 강화해야 했다.

윤 정부가 벤치마킹하는 이명박(MB) 정부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은 거저 된 것이 아니었다. 초대 경제사령탑이었던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장관직을 오래 못 할 각오를 하고 환율 실세화, 경상수지 흑자, 종부세 폐지, 이 세 가지는 꼭 하고 떠나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종부세 폐지 말고는 실제로 그렇게 했다(종부세는 대폭 감면). ‘위기 때는 대외균형이 대내균형보다 우선’이라는 문제의식과 목표가 분명했다. 후임 윤증현 장관은 취임 회견(2009년 2월 10일)에서 그해 성장률 예상치를 당초의 3%에서 마이너스 2%로 대폭 낮췄다. 일대 쇼크였다. 그는 “시장과 국민의 신뢰를 얻는 첫걸음은 정부의 정직성”이라고 했다. 그랬기에 28조원 추경예산에 대해 국회 지지를 받아 경기 진작에 시동을 걸 수 있었다.

1900조원의 가계부채, 치솟는 아파트값 등 정책 여건이 좋지 않다. 그럴수록 정책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고, 경제부처 간 팀워크를 탄탄히 해야 한다. 정부가 길을 잃으면 ‘현금 살포’ 같은 포퓰리즘이 민심을 파고들게 된다.

이상렬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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