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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2 (목)

[시선2035] 교사가 뉴스에 나오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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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허정원 사회부 기자


‘물에 빠지면 옷 젖는다’는 식의 당연함이 금기시되는 영역이 뉴스지만, 당연한 게 점점 당연하지 않은 세상이 되어 거꾸로 기사의 반열에 오를 것 같다. 그중 하나가 교권 문제다. 요즘 초등교사들이 학부모 민원에 사사건건 시달린다는 건 뉴스가 되기 어렵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오히려 기삿감이다. 지난 6월 전북 전주의 한 초등학교에서 3학년 학생이 교감에게 욕설하며 뺨을 다섯 차례 때린 일은 교사들에게는 뉴스다운 뉴스로 들리지 않았다. “별로 놀랍지도 않아서”란다.

이런 체념적인 내성이 생긴 계기는 다양하다. 학부모, 심지어 학생에게 무릎 꿇고 사과하는 일은 흔해졌다. 2021년 의정부 호원초 교사 사망사건 사례는 좀 더 극적이다. 수업 중 학생이 사고로 손을 다치자 학부모가 보상을 받고도 담임 교사가 군대 간 이후까지 4년 동안이나 민원을 제기한 사건 말이다. 결국 교사는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지난해 6월엔 서울 양천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담임 교사가 학생에게 수십 대를 맞아 전치 3주의 상처를 입었다. 서이초 사건은 이런 흐름이 수면 위로 고개를 내민 것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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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6일 서울 용산구 서울역에 서이초 교사 사망 1주기 추모 기간 지하철 광고가 게시돼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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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사건 대부분은 사후 유가족이나 교사단체의 고소·고발로 이어졌다. 차라리 교사 생전에 법적 대응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아쉬웠다. 자녀 입시 비리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장관 출신 야당 대표가 여당 대표의 자녀 입시를 검증하겠다고 나서는 세상에 뭐가 그리 어려웠을까 했다. 나도 뭘 몰랐던 거다.

학부모에게 법을 들이댄 교사가 져야 할 부담은 싸워 이겨 얻을 해방감보다 컸다. 교육청 단위 대응 시스템이 없을 뿐만 아니라 수사와 증거수집도 개인 몫이어서 낭떠러지에서 홀로 싸우는 느낌이라고 한다. 그저 이번 학년이 가고 내년엔 극성 학부모가 없길 로또 당첨되듯 빈다.

교사들의 ‘최소 대응’ 경향은 지난 7월 서이초 순직 교사 1주기 추모식에도 그대로 묻어났다. 1000만 서울시민의 지하철 출근길을 멈춰 세웠던 어느 시위에 비춰보면 전철역에 걸린 ‘학교를 응원해주세요. 선생님을 믿어주세요’라는 광고는 앙상했다. 추모가 정치적 목적 등으로 오인당할 가능성을 깎아내고 깎아낸 결과물이라고 한다. 하필 글씨체도 각이 없어 둥근 ‘오이체’다. 소리내기가 그렇게 눈치 보이는 게 교직 사회다.

추모식에서 순직 교사 아버지의 편지가 낭독될 때, 온라인에선 ‘선크림 공지를 안 해준 학교를 아동학대로 신고할 수 있냐’는 학부모의 글이 화제가 됐다. 같은 부모의 마음이 이렇게 멀 수 있나 싶었다. “1년에 방학을 세 번 줘도 교사는 안 한다”는 분위기 속에 교대 합격선은 추락하고 있다. 사람을 예의로 대할 수 없다면 교사의 의무가 어디까지인지, 만능키처럼 들이대는 ‘정서적 아동학대’의 경계는 어느 지점인지 최소한 저지선이라도 명확히 그어야 한다.

허정원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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