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22대 국회 개원식을 마친 의원들이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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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정치권에 따르면 현재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 사실이 알려진 현역 의원은 정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유일하다. 그는 지난 2월 당내 경선 과정에서 불법 전화홍보를 한 혐의 등을 받는다. 검찰은 통상적으로 공소시효 만료 전후 기소 여부를 일단락 짓기 때문에 다음 달 10일 전후로 현역 의원 기소 규모가 판가름 날 전망이다.
정치권에선 선거법 공소시효가 끝나는 10월 10일을 기점으로 20~30명 이상의 현역 의원이 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질 거란 관측이 적지 않다. 언론 보도 등을 통해 검·경 수사 사실이 알려진 인사만 해도 여야 합쳐 10명을 훌쩍 넘는다. 대검찰청의 ‘총선 선거사범 입건 및 처리 현황’(8월 7일 기준) 자료에 따르면 지난 4월 치러진 22대 총선에서 공직선거법 혐의로 입건된 사람은 모두 2348명이다. 이 중 10%가량인 252명이 기소됐고, 1399명에 대해선 수사가 진행 중이다.
민주당에선 재산 축소 신고 혐의를 받는 양문석 의원을 비롯해 김문수·박균택·박용갑·신영대·이상식·이언주·이정헌 의원 등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국민의힘에선 김형동·서일준·조지연 의원 등이 수사대상에 올랐다. 여권 관계자는 “본인이 숨길 경우 선거법 위반 수사 대상이란 사실을 알기 어려워 전체 규모를 가늠하기 어렵다”며 “실제 기소되는 현역 의원은 언론에 알려진 것보단 더 많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선거법 위반 수사대상에 올랐다는 건 정치인에겐 공포 그 자체다. 벌금 100만원 이상 형이 확정될 경우 의원직 상실은 물론이고, 형의 경중에 따라 향후 5~10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된다. 반대로 10월 10일까지 기소되지 않으면 설령 선거 과정에서 불법 행위가 있었더라도 면죄부를 얻을 수 있다. 선거법 공소시효가 선거일로부터 6개월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위증교사' 혐의를 받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이 대표는 경기도지사 시절인 2018년 허위사실공표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던 중 증인으로 출석한 김병량 전 성남시장 수행비서였던 김진성 씨에게 자신에게 유리하게 위증해 달라고 한 혐의를 받는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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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때마다 다가오는 공소시효가 이번에 더 주목받는 건 현재의 정치상황과 맞물려서다. 여권에선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간 사이가 삐걱대고 있고, 야권에선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선거법 위반 및 위증교사 의혹 재판 1심 선고가 10월로 예정돼 있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선 10월 이후 상황을 가정한 다양한 시나리오가 흘러나온다.
우선 거론되는 건 정계 개편설이다. 주로 야권에서 나오는 시나리오다. 여소야대 정치 지형을 흔들기 위해 검찰 출신인 윤 대통령이 선거법 위반 사건 수사에 드라이브를 세게 걸 것이라는 의심이다. 이 대표의 유죄 선고에 이어 현역 의원 다수가 재판받는 상황이 연출되면 민주당의 위세가 약해질 수 있다.
이와 관련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김승원 의원은 4일 JTBC 유튜브에 출연해 “들리는 얘기로는 용산에서 선거법 위반 등 많은 수사를 통해 민주당 내지 야당 국회의원을 20명 이상 날리겠다고 한다”며 “(여당 의원의 국회 입성을 위한) 재보선도 할 수 있고, 그다음에 민주당 의원에 대해 ‘까불면 수사로 날릴 수 있다’는 압박을 진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8월 27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문화일보 주최로 열린 문화미래리포트2024에서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와 인사 뒤 행사장을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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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여권 분열’ 시나리오도 나온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대통령실의 불협화음에 주목한 시각이다. 장경태 민주당 의원은 MBC라디오에서 “(현재는) 다들 검사의 칼끝에 서 있기 때문에 어떤 의원도 ‘한동훈 대표 의견에 공감한다’고 말할 수 있는 국민의힘 의원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10월 10일이 지나면 앞으로 상당히 변할 것이다. 소신 있는 국민의힘 의원이 많이 나올 것”이라고 했다.
김승원 의원 역시 “국민의힘 의원들도 (공소시효가 만료되는) 10월까진 몸조심하고 있다고 들었고, 이후엔 선거법으로부터 자유로워져 다음 지방선거나 대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며 “예컨대 (순직해병 특검법 재표결 가결 의석인) 200석에서 현재 8석 모자라는데, 8명 이상 (이탈)이 10월 이후 충분히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여권 분열설’에 대해 국민의힘에선 “뇌피셜”(김종혁 최고위원)이라고 일축하지만, 일각에선 10월 10일을 기점으로 당정관계가 수평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기대도 감지된다. 지난 4일 친한계 박정훈 의원은 CBS라디오 인터뷰에서 “지금은 선거법 공소시효와 예산에 의원들 이해가 달려 있어서 한 대표가 주도권을 쥘 수 없는 구조”라며 “대통령이 절대적으로 힘이 강한 시기, 의원들이 말 못하는 시기가 좀 정리돼야 모든 문제를 풀 수 있는 균형적인 상태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 국회의원의 특권…단순폭행도 5년인데, 선거법만 공소시효 6개월
3월 27일 당시 충북 청주를 방문해 시민과 인사를 나누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왼쪽 사진)와 인천에서 대학생과 만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총괄선대위원장. 전민규 기자,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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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사범에 대한 공소시효는 6개월이다. 4월 10일 치러진 22대 총선과 관련된 범죄는 10월 10일 이후 기소할 수 없다. 선거 때 불법 논란이 제기된 현역 의원도 이날까지 기소만 되지 않으면 법적 처벌을 피하게 된다.
이에 따라 선거범죄 공소시효가 지나치게 짧아 벼락치기 수사·기소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선거일 6개월 뒤 추가 범죄 사실이 발견돼도 처벌이 불가능하다는 점도 논란거리다. 현행 공직선거법은 조속한 선거 사범 처리와 당선자 신분 안정화를 명분으로 선거 범죄에 대해 단기 공소시효 특례(6개월)를 두고 있다. 이는 국민투표법 위반 범죄(3개월)에 이어 두 번째로 짧은 공소시효로, 단순 폭행죄(5년) 같은 일반 범죄 공소시효와 비교하면 10분의 1 수준이다.
1994년 3월 ‘공직선거법’ 제정 당시 특례 조항이 적용됐다. 그사이 선거법을 무려 104차례나 뜯어고쳤지만, 공소시효는 30년째 그대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거듭 개정 의견을 냈지만, 이해 당사자인 국회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선거법 수사를 오래 해온 검사 출신 변호사는 “고양이에 생선을 맡긴 격”이라고 했다.
4월 10일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직원들이 경기 과천 중앙선관위에 마련된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종합상황실에서 최종 투표율을 확인하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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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위는 지난해 1월에도 “선거일이 임박하여 발생하거나 인지한 위법 사항에 대한 조사·단속 및 수사가 시간에 쫓겨 부실화되는 현상을 방지해야 한다”면서 ‘공소시효 6개월→1년 연장’ 개정 의견을 국회에 냈다. 이어 같은 해 8월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런 내용을 담은 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21대 국회 임기가 만료될 때까지 법안 소위에서 단 한 차례도 논의하지 않았다.
선관위는 앞서 2011년 ‘6개월 공소시효’는 유지하되 매수 범죄에 한해서 공소시효를 2년으로 연장하자는 개정 의견을 제안했다. 하지만 여야는 2014년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죄 공소시효만 10년으로 확대했다. 국회의원은 여야 가릴 것 없이 선거 사범엔 관대했고, 공무원에게는 엄격했다.
대다수 선진국은 선거사범에 대한 공소시효 특례를 따로 두지 않는다. 독일은 부정선거 행위를 형법에 따라 처벌하는데, 5년(법정형 1년 이상 5년 미만인 경우) 또는 3년(그 이하인 경우)의 공소시효가 적용된다. 미국은 원칙적으로 모든 범죄에 5년의 공소시효를 두고 있으며, 선거자금 공개 규정을 어긴 경우에도 5년의 공소시효를 별도로 규정했다. 과거 우리와 유사한 공소시효를 뒀던 일본도 1962년 공직선거법 개정 때 단기 공소시효 규정을 삭제해, 각 범죄의 형량에 따라 3년 또는 5년(다수인 매수 및 이해 유도죄 등)이 공소시효다.
이창현 한국외대 로스쿨 교수(형법)는 “일반 범죄의 공소시효가 과학수사 발달로 대개 연장되는 추세와 달리 30년째 6개월 특례가 요지부동인 것은 국회의원의 엄연한 특권”이라며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수사가 장기화하고 고소·고발이 늘어나 수사기관 부담이 커진 만큼 선거사범 공소시효 연장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기정·윤지원 기자 kim.ki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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