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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2 (월)

삼계탕이 보양식인가 [전범선의 풀무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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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초복인 지난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동물해방물결 등 주최로 ‘2024 복날추모행동’ 집회가 열려 참석자들이 ‘닭을 죽이지 않는 복날을’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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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범선 | 가수·밴드 ‘양반들’ 리더



지난 월요일이 초복이었다. 올해 초 개도살금지법이 통과된 이후 처음 맞는 복날이다. 아직 3년의 유예 기간이 있지만 보신탕을 찾는 이가 현저히 줄었다.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불법적으로 생산되는 개고기를 누가 굳이 먹고 싶어 할까? 정력에 좋다는 미신도 옛말이다. 반려인구 1500만 시대, 아기 유모차보다 강아지 유모차가 더 많이 팔리는 대한민국에서 보신탕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대신 삼계탕을 많이 찾는다. 복날에는 이열치열. 고단백의 보양식을 먹어야 한다는 복달임 문화가 여전하다. 개는 반려동물이라 가깝지만 닭은 아직 멀게 느껴진다. 살아 있는 모습보다 죽어서 튀겨진 ‘치킨’으로 마주할 때가 많다. 한국에서만 매년 10억명 이상의 닭이 식용으로 도살된다. 하루에 거의 300만명꼴이다. 복날이 있는 7월에는 닭 소비가 두배 가까이 증가한다.



“1인 1닭”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한국인은 치킨을 사랑한다. 아니, 죽여서 먹는 것을 사랑하니 치킨을 극히 혐오한다는 말이 맞겠다. 우리는 왜 이토록 닭을 많이 죽일까? 그저 맛있으니까? 단순히 혀의 쾌락 때문에 생명을 학대하고 학살하는 것은 누가 봐도 나쁜 짓이다. 인간이 고기를 먹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주장할 수 있으나 자연스러운 것이 꼭 윤리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연스러운 정글의 법칙을 어기고 사람의 도와 덕을 지키는 것이 윤리다.



우리는 다른 동물의 살점을 탐하는 행위가 비윤리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먹는다. 건강을 위해서는 고기를 먹어야 한단다. 나는 12년째 채식을 하고 있다. 고기를 끊으면서 오히려 건강이 좋아졌다. 피도 맑아지고 피부도 깨끗해졌다. 인간은 채식만으로도 아주 건강하게 살 수 있다. 영양학적으로 고기를 먹어야만 한다는 것은 오해다. 그럼에도 우리는 육식이 건강에 좋다고 생각한다. 특히 닭가슴살을 뜯고 삼계탕을 흡입할 때 이것이 나의 몸을 위한 보양식이라고 믿는다. 더더욱 복날에는 그런 믿음이 극에 달해 너도나도 삼계탕집 앞에 줄을 선다.



과연 삼계탕이 보양식인가? 보양(補陽)이란 무엇인가? 양기를 보전한다는 뜻이다. 보신(補身)이란 몸을 돕는다는 뜻이다. 기름에 튀겨서 맥주나 콜라랑 같이 먹는 치킨이 건강에 좋다고 믿는 이는 없다. 그런데 삼계탕은 다들 보양식이라고 여긴다. 한때 보신탕도 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개농장의 참혹한 현실이 밝혀지고 그 말이 무색해졌다. 개의 생명에 대한 윤리적인 고려는 차치하고 그냥 너무나도 더러웠다. 음식물 쓰레기를 먹고 오물 범벅인 뜬장에서 병들어 살던 개의 사체를 먹는 것이 과연 나의 건강에 좋을까?



동물해방물결의 조사 결과 국내 닭농장의 현실도 개농장과 크게 다르지 않음이 드러났다. 삼계탕 닭은 백세미(白Semi)라고 불리는데 ‘하얀 반쪽짜리 닭’이라는 뜻이다. 빠른 성장을 위해 육계와 산란계를 교배해 만든 잡종이다. 우리나라밖에 없고 규제도 모호하다. 주로 하림과 마니커 같은 대기업이 생산한다. 해당 기업에 유통되는 농장을 동물해방물결이 국내 최초로 잠입 취재했는데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었다.



우선 농장 불이 24시간 켜져 있다. 밝을 때 먹이를 먹는 닭의 습성을 이용해 빨리 살찌우기 위함이다. 움직일 틈 없이 빽빽하게 서 있어서 모이통까지 분변이 가득하다. 암모니아 수치는 동물보호법상 25ppm 이하 권장이지만 99ppm이 넘는다. 외미거저리 등 벌레가 창궐하고 몸의 일부가 괴사한다. 살모넬라, 대장균 등 각종 바이러스 및 세균 감염으로 대부분 설사, 졸음, 침울 등의 증상을 보이고 일부는 고통 속에 죽는다. 서로 공격하거나 사체를 쪼아 먹는 카니발리즘을 보인다.



성장촉진제와 항생제를 맞으며 한달 남짓 겨우 버티다가 결국 도살된다. 정말로 그런 닭의 가슴과 날개와 다리와 머리와 발과 똥집을 먹는 것이 내 몸과 마음에 좋은가? 과연 우리는 오늘날 공장식 축산에서 생산되어 밥상으로 올라오는 음식의 진실을 알고 있는가?



고기가 귀했던 농업 사회에서는 복날에 한번씩 개고기, 닭고기 먹는 것이 보신, 보양이었을 수 있다. 하지만 2024년 한국인은 쌀보다 육류 소비량이 더 많다. 매일 고기를 먹다가 복날이라고 더 먹을 뿐이다. 오히려 그날만큼은 덜 먹는 게 건강에 좋지 않을까? 새로운 보양식, 지속가능하고 윤리적인 복달임 문화를 원한다. 지구 뭇 생명에게 이로운 음식이 나에게도 이로운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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