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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5 (일)

대한민국을 ‘약탈국가’로 추락시키려 하나 [아침햇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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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열린 국정브리핑 및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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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손원제 논설위원



며칠 전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파행에 대해 통치 능력을 상실한 듯하다고 평하는 글을 썼다. 댓글 중에 “윤 대통령은 통치 능력을 상실한 적이 없다”는 반박도 있었다. 이유는 이랬다. “윤통님께서는 통치 능력이 있었던 적이 없습니다!”



반전 유머에 살짝 입꼬리가 올라갔다. 윤 대통령의 지난 27개월에 비춰보면, 틀린 데 없는 말 아닌가. 실로 지난 2년3개월은 대통령 잘못 뽑으면 나라의 운명과 국민의 삶에 어떤 위험이 초래되는지에 대해 고통스럽게 체감하는 시간이었다. 대통령중심제 국가의 이 숙명에 대해 이제는 국민 대다수가 곱씹고 있을 것이다. 몇 장면만 일별해보자.



첫째, 윤 대통령이 취임 석달 만인 2022년 8월8일 빗줄기를 뚫고 정시 퇴근한 장면이다. 100여년 만의 폭우로 강남역이 물에 잠기고, 신림동 반지하에서 일가족이 숨진 날이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다음날 “퇴근하면서 보니까 다른 아파트들이 벌써 침수가 시작되더라”라고 했다. 큰 재난이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차를 집무실로 되돌리지 않고 퇴근을 강행했다는 것이다. 이런 말을 부끄러움이나 미안함 없이 신기한 구경이나 한 것처럼 툭 꺼냈다. 취임 100일도 안 된 대통령이 보여준 무신경과 안일함에 할 말을 잊었다는 사람들이 적잖았다. ‘#무정부상태’ 해시태그가 번져갔던 이유일 것이다.



둘째, 지난해 뜬금없이 “나눠먹기” 운운하며 연구개발 예산을 5조2천억원(16.6%)이나 삭감한 장면이다. 유수 대학과 연구소의 기초 연구가 중단되고, 수많은 대학원생과 석박사들이 생계를 걱정하는 처지로 내몰렸다. 대한민국을 중진국 함정에서 탈출시킨 핵심 동력을 윤 대통령 한마디로 싹둑 깎아먹었다. 뒤늦게 복원한다 어쩐다 호들갑을 떨었지만, 이미 연구 기반 자체가 허물어져 중장기적 국가경쟁력은 치명상을 입은 뒤다. 눈여겨볼 건, 윤 대통령이 별다른 근거도 대지 못한 채 연구개발 예산 감축을 고집했다는 사실이다. 부자감세로 세수가 줄자, 세출을 깎아도 저항이 크지 않을 것 같은 만만한 대상으로 연구개발 예산을 콕 집은 게 아니냐는 해석이 많다.



셋째, 의대 정원 2천명 증원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다 의료 위기를 초래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이다. 의료개혁과 의사 수 확대 필요성엔 많은 국민이 공감한다. 그러나 책임감 있고 능력을 갖춘 정부라면 특히 국민 생명과 직결된 이런 문제일수록 치밀한 준비와 소통을 통해 부작용을 최소화하며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그러나 왜 2천명 증원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여당에서조차 그 근거를 모르겠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런데도 윤 대통령은 갈수록 커지는 국민의 고통과 걱정에 눈감은 채 이번에도 고집으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 29일 국정브리핑에선 “비상진료 체제가 원활하게 가동되고 있다”며 “의료 현장을 한번 가보시는 게 제일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달나라 대통령이냐”(김동연 경기도지사)는 물음을 자초하고 있다.



도대체 윤 대통령이 무신경과 게으름, 무능과 무책임, 오기와 옹고집이 아닌 무언가를 한번이라도 민생 국정에서 보여준 사례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그나마 요란스레 발표했던 ‘동해 석유가스전’ 탐사와 ‘체코 원전 수주’ 등도 현실성 검증 없는 부풀리기 아니냐는 의구심이 크다.



이미 윤 대통령은 김건희 여사 의혹 봐주기와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 등으로 정권의 도덕적 정당성을 무너뜨린 바 있다. 이제 민생마저 난맥과 파행으로 끌고 간다면 정권의 지반 자체가 무너진대도 놀라운 일이 아닐 것이다. 보수층에서도 이대로는 “정권 자체도 유지하기 힘들다”(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는 경고가 나온다.



지금 국민권익위원회 누리집엔 ‘추석명절 청탁금지법 바로 알기’란 카드뉴스가 올라와 있다. “친구, 친지 등 공직자가 아닌 사람에게 주는 명절 선물은 금액 제한 없이 얼마든지 줄 수 있다” “직무와 관련 없는 공직자에게는 100만원까지 선물도 가능하다”고 친절히 안내한다. 직무 관련성을 떠나 공직자와 그 가족에 대한 금품 제공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청탁금지법 취지에 정면으로 반하는 내용이다. ‘제재 조항이 없다’며 김 여사 명품백 수수에 면죄부를 준 후유증이다. 김 여사는 봐주고 이제 와서 추상같은 원칙론을 강조하기가 면구했을 것이다.



정부가 국리민복이 아니라 한줌 집권세력의 사익과 특권을 위한 도구로 전락한 나라를 ‘약탈국가’라고 한다. 지금 이 정권 돌아가는 꼴은 대한민국이 후진적 약탈국가로 퇴행하는 게 아니냐는 두려움을 갖게 한다.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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