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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1 (목)

해병대 출신 청년, 美유학 중 끔찍한 사고 “조종사 꿈 잃지 않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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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불의의 사고를 당한 뒤 수술을 받고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병원에 있는 한국인 김준오씨./김준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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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3일 새벽 4시, 뉴욕대 스턴 경영대 김준오(23)씨는 뉴욕에서 친구를 만나기 위해 버스를 타고 펜실베이니아주(州) 필라델피아를 찾았다. 새벽 시간이라 필라델피아에 대중교통을 잡기 힘들어 우버 택시를 타고 친구를 만나기로 한 장소로 가는 길, 갑자기 빛이 ‘번쩍’였고 그 뒤 기억을 잃었다.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눈을 떠보니 병원이었다. 주변에는 의사만 있었고 자신은 병실에 누워 몸을 움직이기 어려웠다. 의사가 “심각하게 다쳐 수술해야 한다”고 했고, 서울에 있는 부모님께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김씨 아버지는 식사 도중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아들의 첫 마디가 기가 막혔다. “아버지 정말 미안해요.”

김씨는 사고 당시 상황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지만 끔찍한 ‘차량 충돌 사고’를 겪었다. 그날 새벽 5명의 용의자는 총으로 BMW 차량 소유주인 여성을 위협해 뺏은 뒤 경찰을 피해 도망가다 김씨의 우버 차량과 부딪쳤다. 뉴욕포스트에 따르면 5명 중 4명이 체포됐는데 15세 소년 2명, 16세 1명, 30세 1명이었다. 김씨는 이 날 일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10일 본지와 인터뷰에서 김씨 아버지는 “준오가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을 했을 때 큰일이 벌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면서 “아들 옆에 있던 의사가 준오가 사고로 척수손상이 됐고 최고 등급 판정을 받았다고 했다”고 말했다. 김씨 아버지는 너무 놀랄 것 같아 아내를 일단 한국에 두고 먼저 필라델피아로 향했다. 비행기에 있는 시간 내내 “지옥 같았다”고 했다. 도대체 아들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씨는 이 집의 외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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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3일 새벽 김준오씨가 탄 차를 들이받은 가해 차량./ABC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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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 아버지가 관광비자를 받아 미국으로 오는 동안 김씨는 수술을 마쳤다. 그러나 하반신은 완전히 마비됐고, 왼손과 오른손은 움직일 수는 있지만 원활하지 않다. 이날 본지와 통화를 할 때도 김씨는 친구들이 사다 준 거치대에 휴대전화를 걸고 했다. 김씨는 200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의 뜻을 따라 중학교 때부터 제주도에서 생활했고, 고등학교는 한국국제학교 제주캠퍼스에서 마쳤다. 고등학교 졸업 후 코로나 팬데믹이 발생해 일단 입대를 했다. 당당하고 멋있게 군 생활을 하고 싶어 2020년 10월 해병대 1사단 특수수색대(1263기)로 입대해 2022년 4월까지 복무했다. 전역 전 한 달은 한미 해병대 연합훈련에서 통역병으로 일했다. 제대를 조금 더 일찍 할 수 있었지만, 통역병을 해보고 싶어 제대를 조금 늦췄다고 한다. 전역 후 뉴욕대에 입학했고, 현재는 2학년을 마친 상황이다.

김씨는 본지와 통화에서 어렸을 때는 조종사가 꿈이었고, 대학에 진학하면서부터 금융을 공부하게 됐다고 했다. 사고 전까지 그는 지난해 10월부터 미 월가의 ‘클레마캐피탈’이라는 금융사에서 인턴을 하기도 했다. 또 내년 5월부터는 CIBC(캐내디언 임페리얼 뱅크 오브 커머스)에서 인턴을 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건강한 신체에 친구들이 많았던 그는 하루아침에 사고를 당해 병상에 누워 있지만 가해자들을 원망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제 와서 미워하면 뭐하겠어요. 달라질 건 없습니다. 되도록 그들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는 사고를 당한 지금도 재기할 수 있다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고 했다. 김씨의 꿈은 지금도 “일을 해서 돈을 모아 개인 비행기를 조종하는 것”이다. 기자와 통화를 하는 그의 목소리는 침착했고 울먹임도 없었다. 그에게 “너무 힘든 상황에 어떻게 이 정도로 담담할 수 있느냐”고 물으니 그가 말했다. “해병대에서 1주일간 하루에 1시간 자고 훈련하는 지옥훈련을 했어요. 그 이후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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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를 당한 김준오씨가 해병대에 있을 때 모습./김준오


김씨 아버지에 따르면 김씨가 얼마나 나아질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수술을 마쳤기 때문에 재활병원에 가서 하루라도 빨리 재활을 시작하고 싶지만 미국은 한국과 모든 것이 달라 현재 언제 어디로 옮길 수 있고, 피해 보상은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 등 모든 것을 변호사에게 맡겨 놓은 상황이다. 이 지역 교민 업무는 뉴욕총영사관 담당이다. 아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기 싫어 병실 밖에 나와 통화를 하다 울음을 왈칵 터뜨린 아버지는 “솔직히 너무 두렵고 막막하다”고 했다. 신앙이 없던 아버지는 사고가 난 뒤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다고 한다. 김씨의 친구들이 그를 위해 ‘고 펀드 미(GoFundMe)’라는 온라인 모금 사이트에 사연을 올리는 것을 허락한 것도, 돈 보다는 ‘기도’가 필요했다는 게 아버지의 말이다. “사고 낸 아이들이 불우한 가정에서 자랐나 봅니다. 그 아이들도 사회가 돌봐주지 못해서 그런 거겠죠.” 김씨는 현재 상태로 비행기를 타는 것도 무리이기 때문에 한국에 갈 수도 없다. 김씨 아버지는 “아들이 재활 과정에서 사회와 분리되지 않았으면 한다. 사회생활을 하며 재활을 하고, 그 경험을 사회에 공헌했으면 한다”고 했다. 김씨 아버지는 아내에게 정확한 상황을 설명하지 않았지만 넌지시 암시는 준 상태라고 한다. 김씨 어머니는 곧 병실에 도착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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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윤주헌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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