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중 가장 까다롭게 친환경농산물의 품위와 수확시기를 따지는 영역이 학교급식이다. 세금이 들어가고, 학생들을 먹이는 일이므로 깐깐하기 이를 데 없다. 하여 급식에 농산물을 낸다는 것은 친환경농가의 안정적인 판로 확보 차원이기도 하지만 농민의 농사실력과 신념을 보증하는 일이자 자부심이다. 급식농산물 출하 일주일 전에 각종 안전성 검사를 받고, 대량조리의 특성상 규격을 맞추기 위해 선별도 꼼꼼해야 한다. 작은 방울토마토도 열량의 기준을 맞추기 위해 크기를 세분화한다. 다만 농산물 규격이 세분화된다는 것은 그만큼 ‘비(B)품’도 많아진다는 뜻이다. 학교도 저간의 사정이 있다. 채소를 절삭기에 넣어 공장제품처럼 각 잡아 자르려면 일정 규격을 갖춘 농산물이 필요하다. 자연스럽게 자란 호박보다는 ‘인큐애호박’이 필요한 이유다. 여기에 친환경농산물은 관행 농산물에 비해 흠이 있기 마련이어서 다듬고 씻는 전처리 시간이 더 길지만 조리 인력이 늘 모자란다. 그래서 농민 사정을 알면서도 결국 ‘로열과’를 찾을 수밖에 없다.
6월은 마늘, 양파, 감자 같은 저장채소가 쏟아져 나오는 시기로, 학교 급식업계의 가장 바쁜 철이다. 대량수매하여 잘 저장해 일 년 내내 학교에 공급하기 때문이다. 그중 감자는 국과 반찬, 카레나 짜장에도 쓰임새가 많아 으뜸인 채소다. 계약 농가 입장에서도 감자는 대량 수매가 되고 엽채처럼 하루 이틀 안에 무르지 않아 인기 있는 작물이다. 여기에 겨울에 심어 5월 즈음 수확하는 조생종 감자 재배도 인기가 높다. 6월 감자가 쏟아져 나오기 전, 틈새를 이용해 급식에 낼 수 있어 농가들 간 경쟁도 치열하다.
하지만 기후가 받쳐주질 않아 계약시기를 맞추기가 어려워 농민들 입장에선 부담도 점점 커진다. 감자가 볕을 충분히 받아야 토실토실해지고 맛이 들어차건만 겨우내 일조량이 턱없이 모자랐다. 품위를 맞출 수가 없어 며칠 더 키웠더니 이번엔 출하시기가 며칠 늦어졌고, 그렇게 몇몇 계약 농가의 급식 감자가 붕 떠버렸다. 친환경농산물의 주요 소비처인 학교급식이나 생활협동조합에 봄감자를 내던 충남의 주요 산지도 납기일을 맞추기 어려워 봄감자 재배에 손을 떼고 있다고 한숨을 쉰다. 물량 모자랄 때는 조림용 알감자까지 알뜰하게 걷어가더니 남을 때는 생산자가 삶아 먹든 팔아먹든 알아서 해야 하는 상황이 자꾸 생겨나서다. 본래 꽃송이인 브로콜리에 꽃이 조금 피었다고, 브로콜리 줄기가 너무 길다고, 감자가 너무 커서, 혹은 너무 작아서, 무엇보다 지정 날짜까지 길러내질 못해서 출하가 막히기도 한다. 기후위기를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한다면 먹는 것에 대한 새로운 품위도 받아들여야 한다. ‘로열’의 시대는 진즉에 끝났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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