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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바보 같은 미국 대학생들 [특파원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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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난 4일 미국 미시간대 졸업식에서 한 졸업생이 팔레스타인 깃발을 펼치고 있다. 앤아버/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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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본영 | 워싱턴 특파원



미국에는 중앙정보국(CIA) ‘과거사 3종 세트’가 있다. 1953년 이란, 1954년 과테말라, 1973년 칠레에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를 전복하는 쿠데타를 조종해 성공시킨 것을 말한다. 미국 대외 정책의 대표적 오점이고 그야말로 교과서적 사례들이다.



외교·안보 관리나 전문가들 강연에서는 명문대생들이 이에 관한 질문을 종종 던진다. 자유와 민주주의의 수호자라는 미국의 이런 행동을 어떻게 설명하겠냐는 것이다. 나는 그런 장면에 약간 냉소를 품기도 했다. ‘지금은 정의감이 충만하겠지만 당신들 중 저 연단에 올라 오늘의 경험을 바탕으로 능수능란하게 답하는 사람이 나올 거야’라는 생각 때문이다.



가자지구 학살에 대한 시위를 지켜보며 그런 생각을 고쳐먹었다. 우선 학생들의 저항은 불의를 들추고 바로잡는 데 미미하나마 기여한다는 점을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다. 전국적으로 저항하니까 미국 정부가 움찔은 한다.



또 다른 깨달음은 그들을 꾸짖는 기성세대, 특히 조 바이든 대통령을 보면서 얻게 됐다. 즉 젊어서 정의로운 사람 모두가 늙어서도 정의로울 것이라고 장담하기는 어렵지만 젊어서 기회주의적인 사람은 계속 기회주의적일 것이라는 점이다. 바이든은 시러큐스대 로스쿨에 다닐 때 베트남전에 반대하며 총장실을 점거한 학생들에 대해 친구들과 “저 머저리들 좀 보라”며 흉봤다고 자서전에 썼다. 천막농성 학생들을 철부지 취급하는 지금의 바이든은 그때도 그랬다.



11월 대선에서 재대결하는 바이든과 도널드 트럼프는 젊을 때 운동을 잘했다지만 건강을 이유로 베트남전 징집을 면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같은 세대 미국인들이 정글에서 쓰러져갈 때 무심했던 이들에게 팔레스타인인들의 죽음에 대해 ‘공감’을 요구하는 게 무리인지도 모르겠다. 바이든은 미국이 대 준 1t 가까운 무게의 대형 폭탄이 수많은 민간인을 죽이는데도 전쟁 발발 뒤 7개월이나 지나 이 폭탄 공급을 보류시켰다. 미군이 교량이나 군사시설 파괴용으로 규정한 이런 폭탄은 가자지구 민간인 거주지를 콘크리트 가루로 바꿔놨다. 트럼프는 정치적 궁지에 몰린 바이든이 이 폭탄 공급을 보류시키자 “바이든이 이스라엘을 버렸다”며 한술 더 떴다. 2016년 민주당 후보로 트럼프와 대결한 힐러리 클린턴까지 시위 학생들은 “중동 역사를 모른다”며 ‘꾸짖는 어른’ 대열에 섰다.



만약 이런 사람들이 아니라 또 다른 대선 후보 출신인 존 케리 기후변화특사 같은 사람이 이번 위기를 다루는 위치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2004년 민주당 대선 후보였고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힐러리에 이어 국무장관을 한 그는 베트남전 때 해군 중위로 복무하며 훈장을 여러개 받았다. 그러나 퇴역 뒤 참전 군인들의 반전 운동을 이끌었다. 1971년 의회 청문회에서 정치 지도자들의 욕심과 무책임이 미군을 양민을 도살하는 괴물로 만들었다며 유명한 연설을 했다. 지금은 변해서인지, 아니면 자기 일과 무관해서인지 별말이 없다.



결론은 사람이 한결같이 정의로우면 더 좋겠지만 젊을 때만이라도 정의로우면 그 사회와 인류를 위해 다행이라는 것이다. 바보, 머저리, 무식쟁이라는 소리를 듣고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그만 죽이라고 외치는 학생들이 그들을 꾸짖는 노회한 이들보다 훨씬 나은 인간들이다.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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