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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0 (화)

일본 학자 “자위대 ‘대동아전쟁’ 논란, 가해 역사 마주 안 한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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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일본 육상자위대 부대가 공식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대동아전쟁’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제32보통과 연대 공식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갈무리


일본 육상자위대 부대가 이달 초 공식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대동아전쟁”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과 관련해 일본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역사학자 히로나카 잇세이 아이치가쿠인대학 준교수는 16일 아사히신문 인터뷰에서 “지금 시대에 ‘대동아전쟁’을 굳이 사용하는 것은 당시 일본의 입장을 정당화하겠다는 의미”라며 “일본 국민은 가해의 역사를 포함해 역사와 마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히로나카 교수는 ‘대동아전쟁’이라는 표현에 대해 “당시 일본이 자신의 입장을 주장하기 위해 만든 용어”라고 설명했다. 대동아전쟁이란 말은 1941년 태평양전쟁 에이(A)급 전범인 도조 히데키 내각 때 각의(국무회의)를 통해 공식 표현으로 채택했다. 이는 일본이 주장했던 ‘구미 제국으로부터 아시아 식민지를 해방시켜, 대동아공영권을 설립해 아시아의 자립을 지향한다’는 ‘대동아 공영권 구상’에서 나온 것이다.



히로나카 교수는 “일본은 아시아의 식민지 해방을 제1의 목적으로 하지 않았다. 동아시아 침략 과정에서 일본은 착취·억압을 했다. 유럽·미국이 앉아 있던 의자에 일본이 (대신) 앉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평가했다.



1930년대부터 1945년까지 일본의 침략전쟁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일본에서도 하나로 정리되지 않은 상태다. 역사학자들은 태평양전쟁이 미·일 중심이 강해 당시 일본 히로히토 일왕의 연호를 딴 ‘쇼와 전쟁’이나 일본의 중국 침략전쟁까지 포괄한 ‘15년 전쟁’, ‘아시아·태평양 전쟁’ 등 새로운 용어를 제안했지만, 널리 정착되지 못했다. 이에 대해 히로나카 교수는 “역사를 이해하고, 국민적 논의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전후 일본은 경제성장을 우선시하고, 역사의 검증이나 총괄(정리)은 소홀히 했다”고 지적했다.



히로나카 교수는 내년 전후 80년을 맞아 일본 사회에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역사를 아는 것은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다.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불안정해지는 국제 정세를 내다보는 힘을 기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본 국민이 가해의 역사를 포함해 다시 한번 역사를 마주함으로써 이데올로기 논쟁이 아닌 사실로 이해하길 바란다”고 제언했다.



아사히신문도 지난 13일 사설에서 자위대 대동아전쟁 논란에 대해 “아시아 식민지배와 침략, (일본) 국민을 존망의 위기에 빠뜨린 패전이라고 하는 역사에 대한 반성이 엷어지는 것이 아닌가”라고 우려했다.



앞서 육상자위대 제32보통과 연대는 지난 5일 공식 에스엔에스에 사진과 함께 “32연대 대원이 대동아전쟁 최대 격전지 이오지마에서 개최된 일미 이오지마 전몰자 합동 위령추도식에 참가했다”는 글을 올려 논란이 커졌다. 결국 글은 삭제됐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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