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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6 (월)

손톱을 뽑아 사랑의 확률을 계산할 수 있다면[오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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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거네일>의 안나(오른쪽)와 라이언은 오랜 연인이다. ‘손톱 테스트’는 둘이 사랑하고 있을 확률이 100%라고 하지만, 안나는 왠지 이 관계가 권태롭다. 애플TV+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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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주’는 주말에 볼 만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콘텐츠를 추천하는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 오전 찾아옵니다.

지금 연인이 ‘천생연분’임을 확신할 수 있습니까. 만일 연인들이 서로 사랑하고 있을 확률을 알려주는 기술이 개발된다면 어떻겠습니까.

애플TV+에서 볼 수 있는 영화 <핑거네일>은 ‘레트로 SF’라 할만합니다. 등장인물들의 의상, 공간, 전자기기의 인터페이스 등은 복고적인데, 언급되는 기술 한 가지가 아직 구현되지 않은 ‘미래 기술’입니다. 바로 두 연인이 사랑하는 확률을 정확한 숫자로 말해주는 기계입니다. 측정 방법이 다소 난감합니다. 두 연인이 각자 손톱 중 하나를 뽑아 기계에 넣으면, 기계에는 곧 숫자가 나옵니다. ‘100%’라면 두 연인이 확실히 사랑한다는 뜻이고, ‘0%’면 두 연인이 전혀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이죠. ‘50%’는 좀 알쏭달쏭하죠. 한쪽이 일방적으로 짝사랑한다는 뜻일까요, 아니면 둘이 서로를 미적지근하게 사랑한다는 뜻일까요. 둘이 서로 사랑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50% 미만의 결과를 받고는 헤어져 버리는 연인, 부부가 속출하는 시대가 <핑거네일>의 배경입니다.

교사 안나(제시 버클리)는 새 직장을 찾던 중 ‘사랑 기관’이란 곳에 취직합니다. 이곳은 연인의 사랑을 강화해주는 각종 훈련을 통해 ‘손톱 테스트’를 통과할 확률을 높여준다고 주장하는 곳입니다. 연인들은 수영장 물속에서 1분간 눈 맞추기, 눈을 가린 채 체취만으로 상대방 알아맞히기, 함께 스카이다이빙 하기, 휴 그랜트가 나오는 로맨스 영화 함께 보기, 가벼운 전기 충격으로 연인의 부재 대리 체험하기 등을 합니다. 이후 손톱을 뽑아 테스트를 통과하면 기관의 인증서를 받습니다. 안나는 이 기관의 우수 강사인 아미르(리즈 에메드)와 강의 파트너가 됩니다. 안나는 자신의 눈길이 자꾸만 아미르에게 머문다는 것을 느낍니다.

문제는 안나에게 오랜 연인 라이언(제러미 앨런 화이트)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손톱 테스트에서 미적지근한 결과를 받아 헤어지는 커플이 속출하는 마당에, 둘의 결과는 ‘100%’입니다. 라이언은 안나와의 관계에 별 불만이 없는 듯 보이지만, 안나는 라이언과의 사랑을 어딘지 지루해하는 듯 보입니다. 이 연인의 사랑은 안정기일까요, 권태기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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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기관’ 설립자 던컨(루크 윌슨)은 ‘손톱 테스트’의 정확성을 믿는다. 애플TV+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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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테스트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싶어 안나는 라이언을 힘들게 설득해 다시 한번 손톱 테스트를 받습니다. 역시 결과는 ‘100%’. 손톱 테스트는 안나와 라이언이 여전히 서로를 확실히 사랑하고 있다고 알려줍니다. 사랑 기관 설립자 던컨(루크 윌슨)은 테스트가 각기 다른 두 상대에게 ‘양성’일 가능성은 없다고 말합니다. 안나가 두 남자 모두 사랑하고 있을 가능성은 없다는 뜻입니다.

안나는 혼란에 빠집니다. 라이언을 향한 미지근한 감정의 정체는 무엇인가, 아미르를 향한 뜨거워지는 마음은 사랑인가. 명확한 숫자로 표기되는 테스트 결과를 믿어야 하나, 눈에 보이진 않지만 확실히 느껴지는 사랑의 감정을 믿어야 하나. 많은 SF가 이 같은 딜레마를 다뤄 왔습니다. <가타카>(1997)는 유전적으론 부적격자였던 주인공이 강력한 의지로 우주비행사의 꿈을 이루는 내용을 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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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거네일>의 한 장면. 안나(왼쪽)와 아미르가 기계에 손톱을 넣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애플TV+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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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거네일>은 유전자와 기계의 명확한 계산을 믿을지, 인간의 불명확한 감정을 믿을지 분명한 답을 주지 않습니다. 인간의 의지에 방점을 찍었던 26년 전의 <가타카>와는 다른 양상입니다. 챗GPT 같이 인간을 능가하는 기계의 위력이 명확해진 시대를 반영하는 것일까요.

<핑거네일>에서 사랑의 확률을 테스트하는 방법이 왜 하필 ‘손톱 뽑기’인지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마 손톱 뽑는 아픔을 감수할 만큼 확실한 연인이 아니라면, 장난으로 사랑을 테스트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가 아닐까 합니다. 만일 지문 채취, 동공 반응 검사 정도로 사랑의 확률을 계산할 수 있다면, 세상은 현재 연인을 의심하고 새 연인을 찾으려는 사람들로 일대 혼란을 겪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따로 또 같이’ 지수 ★★★★ 함께 있지만 외로운 사람들

‘사랑은 아픔’ 지수 ★★★ 고통을 감수하지 않으려면 사랑할 생각도 말라



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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