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9.08 (일)

4살에 티파니 목걸이, 교복은 몽클레어···외신, 한국 어린이 명품 소비 조명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FT “소수의 자손 위해 사치품 사줘”

지난해 아동용 명품 매출 15~27% 상승

경향신문

몽클레어, 버버리 홈페이지 갈무리.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경기도 동탄에 사는 38세 ‘워킹맘’ 김 모 씨는 4살 딸을 위해 티파니에서 78만원대 은목걸이를 구매했다. 18개월 딸에겐 38만원대 골든구스 신발을 사줬다.

서울 잠실에 사는 사업가 엄 모 씨의 17세 딸은 어릴 때부터 고가의 물건을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선물 받았다. 최근 생일선물은 아식스와 마크제이콥스가 협업해 만든 80만원짜리 운동화였다.

파이낸셜타임스(FT)가 한국의 어린이 명품 소비 유행을 보도하며 전한 사례다. 티파니는 프로포즈용 다이아몬드 반지로 유명한 미국의 하이엔드 주얼리 브랜드이며, 골든구스는 신발 바깥쪽 별 마크로 유명한 이탈리아 브랜드다. 김 씨는 FT에 “결혼식이나 생일파티, 음악회 참석을 위해 외출할 때 아이들이 초라해 보이길 원치 않는다”며 “(아이들이) 이런 옷과 신발을 신고 편안하게 뛰어놀 수 있다면 가격은 상관없다”고 말했다.

FT는 세계 최저 수준인 한국 출산율을 하나의 배경으로 거론하며 “한국인들은 점점 부유해지면서 적은 숫자의 자손들을 위해 사치품에 돈을 쓰고 있다”는 세계은행(WB) 분석을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한국은 특히 1인당 지출 기준 아동용 명품 의류 시장이 세계에서 중국·터키 바로 다음으로 빨리 성장한 나라다. 지난해 신세계·현대·롯데 백화점에서도 아동용 명품 매출이 15~27% 상승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인 유로모니터의 뷰티·패션 컨설턴트 리사 홍은 “많은 가정이 아이가 한 명뿐이라, 아이들을 위해 최고급 품목을 선택해 (아이가) 처음으로 명품을 소비하는 연령을 낮춘다”고 말했다.

중국의 소황제 세대, 링링허우 세대 등과 유사한 분석이다. 소황제 세대는 1970년대 말 ‘1가구 1자녀’ 기조 아래 탄생한 세대를 일컫는 말로, 특히 부유층·관료 집안에서 과잉보호를 받으며 자랐다는 의미를 담았다. 링링허우는 2000년~2009년 출생자로, 한 자녀 정책은 유지되는 가운데 개혁·개방의 ‘자본주의 맛’을 가장 많이 경험하며 자란 세대로 꼽힌다.

과시 경쟁 풍토도 저연령대 명품 소비 유행의 배경으로 지목됐다. 이종규 디올코리아 전 대표(현 에트로코리아 대표)는 “한국 사회는 경쟁이 치열하고, 사람들은 눈에 띄고 싶어 한다. 명품은 이들을 위한 좋은 도구”라며 “몽클레어 겨울 패딩은 10대 청소년의 교복이 됐다”고 했다. 매체는 백화점이 문을 열었을 때 가장 먼저 새 상품을 사기 위해 백화점 밖에서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을 보는 것은 서울에서 드문 일이 아니라고 꼬집었다.

방탄소년단(BTS), 블랙핑크 등 K팝 스타들을 앰배서더로 영입한 명품 브랜드의 홍보 전략이 20대와 30대를 공략한 영향도 거론된다. 매체는 또 “높은 집값에 좌절한 청년들”도 명품 대열에 합류한 것으로 짚었다.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내 집 마련’이라는 장기 목표를 포기한 젊은이들이 대신 저축·투자 대신 소비에 돈을 썼다는 분석이다.

FT는 한국의 저연령대 명품 소비 풍조에 대해 별다른 가치판단은 하지 않았다. 다만 FT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6월 기자회견에서 한국의 인플레이션 수준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높은 구조적 원인 중 하나로 명품 선호 현상을 꼽았다고 전했다. 당시 이 총재는 한국에서 특정 브랜드가 인기를 얻으면 갑작스레 모두가 탐내기 시작하는 희한한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는데, 가격이 비싸져도 소비를 줄이지 않기 때문에 물가 억제가 어렵다는 의미였다.

FT는 “딸이 명품에 너무 익숙해질까 봐 걱정이다. 나중에 이런 사치스러운 소비를 감당할 수 있는 직업을 가질 수 있을지가 우려된다“는 사업가 엄 씨의 말로 기사를 마무리했다.

조문희 기자 moony@kyunghyang.com

▶ 매일 라이브 경향티비, 재밌고 효과빠른 시사 소화제!
▶ ’5·18 성폭력 아카이브’ 16명의 증언을 모두 확인하세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