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30 (화)

[김이택 칼럼] 채널A 사건, ‘수사’ 보다 중요한 일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채널에이(A) 수사 결과에 따라 방통위가 결단해야 한다.

무더기 종편 허가 뒤 10년만에 방송의 공공성이 위협받고 있다.

우리 방송 구조와 언론 지형을 정상화하는 게 수사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다.


한겨레

추미애 법무부 장관(오른쪽)과 윤석열 검찰총장. 문화방송(MBC) 뉴스데스크 화면 갈무리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겨레

김이택 ㅣ <한겨레> 대기자

지난 6월2일치 칼럼(‘채널A’, 사이비 권력들의 ‘진실 은폐’ 야합) 이후 6주 사이 많은 일들이 있었다. 바로 그날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채널에이(A) 법조팀장 등의 휴대전화를 압수하며 적극 수사에 나선 이래 ‘진실 은폐’ 시도는 점점 실패 쪽으로 기우는 분위기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노골적이고 집요하게 측근 감싸기에 나섰지만 결국 꼬리를 내렸다. 구차하게나마 자리를 보존한 덕분일까, 야권의 차기 대선 주자 지지율 1위는 지켰다. 김종인 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까지 “퇴임 뒤 지지율 오르면 (대권 주자) 가능성이 있다”고 했으니 그런대로 남는 장사를 한 셈이다. 그러나 검찰 조직은 만신창이가 됐다. 특히 총장 스스로 손떼는 건 괜찮지만 장관이 손떼라는 건 ‘위법’이라고 ‘기술’까지 부려가며 윤 총장을 밀어줬던 검사장들은 ‘X망신’을 했다.

윤 총장의 그간 행보는 ‘측근 보호’를 위한 것이겠지만 그것만으론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아마도 ‘보호 결의안’까지 내며 자신을 밀어준 두 보수야당, 특히 보수언론들을 믿지 않았다면 그렇게 대놓고 저항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보수언론들은 <문화방송>이 ‘검·언 유착’ 의혹을 처음 보도한 직후부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여권의 ‘윤석열 때리기’란 프레임을 짜놓고 시작했다. 검·언유착의 진실 추적 대신 전과까지 들추며 제보자와 폭로언론을 공격했다. 일부 여권 인사들의 페이스북 글에서 ‘작전’의 냄새가 난다며 문화방송과의 ‘정·언 유착’ 프레임까지 들고나왔다.

일일이 반박할 필요까진 없겠다. 다만 대한민국 판사들이 검·언유착과 정·언유착도 구분 못하고 함부로 기자와 검사장 휴대전화 압수수색 영장 발부하지는 않는다는 정도의 법지식만 있으면 이해하기 쉽다. 밀실에서 대화·녹음해놓고, “없다”고 말맞추고, 다시 지우고, 휴대전화 비밀번호까지 감추는 건 ‘유착’ 정황이지만, 페이스북에 공개적으로 글 올려놓고 하는 ‘유착’은 드물다는 상식 정도만 있어도 판단은 쉽다. 물론 문화방송 취재 이전에 이미 감옥으로 보내진 편지들과 이들이 미처 없애지 못한 녹음 파일들은 결정적 물증으로 남아 있다.

보수언론들이 ‘윤석열 편들기’에 올인한 데는 문재인 정부 공격 전선에 나란히 섰다는 동지의식이 컸을 것이다. 사건 당사자가 종편이라 보수적 가치를 공유하기도 하겠거니와, 종편 재승인이 걸려 있다는 ‘동병상련’의 정서가 무리한 ‘프레임’을 부추겼을지도 모르겠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 4월 <채널에이(A)>와 <티브이(TV)조선>에 대해 조건부로 재승인을 허가했다. 만일 채널에이 사건 수사에서 ‘중대한 문제’가 확인되면 재승인이 취소될 수 있다. 그러면 ‘공정성’ 합격 조건부로 재승인받은 티브이조선 역시 위기를 맞을 수 있다. 그런 ‘순망치한’의 절박감이 아니고는 그처럼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는 식의 주장을 아무렇지도 않게 펼쳤을 리 없다.

여러 곡절은 있었으나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다수의 중요 증거를 확보”했다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수사심의위가 제지하지 않는다면 기소가 유력해 보인다.

그렇게 되면 방통위가 재승인 여부를 결단해야 한다. 그러나 방통위의 행보는 매우 조심스럽다. 탄핵 국면이긴 했어도, 박근혜 정부가 꾸린 방통위가 티브이조선 등에 과감하게 낙제점을 준 것과도 대조적이다. 자본금 불법 충당으로 방송법 위반 혐의를 받는 엠비엔(MBN)에 대해서조차 좌고우면할 정도로 소극적이다.

2011년 12월 출범한 종합편성채널이 올해로 10년째. 티브이조선 등 4개 종합편성채널의 방송사업 매출액은 2263억원(2012년)에서 8228억원(2019년)으로 비약적으로 늘었다. 반면 <한국방송> 등 지상파의 매출액은 같은 시기 3조9572억원에서 3조5168억원으로 떨어졌고 매출액 점유율은 32.0%에서 19.9%로 급락했다. 지상파의 추락은 유튜브 등 뉴미디어 영향도 있겠으나 무리하게 허가한 종편 탓이 크다. 당시 이명박 정부가 ‘우리 광고 시장 규모에서 2개 이상은 무리’라는 평가를 무시하고 허가를 남발한 결과다. 결국 한국방송 등은 쌓이는 적자로 구조조정 준비에 들어갔다. 방송이 수익에 휘둘리면 공공성이 위협받는다. 그래서 유능한 기자·피디들이 떠나면 공영방송 체제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심각한 문제다.

기자와 검사의 빗나간 유착에서 시작한 채널에이 사건이 우리 방송 구조와 언론 지형을 정상화하는 나비의 날개짓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수사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다.

rikim@hani.co.kr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 한겨레 구독하세요!
▶네이버 뉴스판 한겨레21 구독▶2005년 이전 <한겨레> 기사 보기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