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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해고금지 명문화` 안됐다고…위원장 감금한 민노총 강경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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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사정 대타협 무산 ◆

매일경제

노사정 대타협이 불발로 그친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총리 공관에 마련된 `노사정 대표자 협약식`장이 텅 비어 있다. 당초 계획에 따르면 협약식은 이날 오전 10시 30분에 개최될 예정이었다. [이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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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 만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까지 참여하는 노사정 합의에 이르는 길은 험난했다. 1일 오전 정부는 국무총리실 주관하에 한국경영자총협회, 대한상공회의소, 고용노동부, 기획재정부, 민주노총,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이 참여하는 '노사정 대타협 합의문 서명식'을 개최하려고 계획했다. 그러나 민주노총이 강경파의 반발을 뛰어넘지 못하면서 결국 이날 서명식은 무산됐다.

민주노총은 지난달 29일 마련된 '노사정 합의안' 추인을 둘러싸고 극심한 내홍을 겪었다. 29~30일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중앙집행위원회(중집)에서 밤을 새워 가며 합의안 추인 여부를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당시 20여 시간에 걸친 논의에도 성과가 나지 않자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나의 거취를 포함해 조만간 입장을 밝히겠다"면서 회의를 중단했다.

총리실이 노사정 합의 서명식을 열기로 예정했던 1일 오전 10시 30분이 다가오면서 상황은 더욱 급박하게 돌아갔다. 직을 걸고 노사정 합의에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김 위원장은 지난달 30일 저녁 "1일 오전 8시에 긴급 중집을 열겠다"고 중집위원들에게 통보했다. 서명식에 참석하기 전 노사정 합의안의 막판 추인을 재시도한 것이다. 이에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 등을 중심으로 한 반대파는 이날 새벽부터 중집이 예정돼 있던 서울 정동 민주노총 15층 교육장 주변에 집결했다. 김 위원장의 입장을 저지하기 위해서였다. 반대파의 반발에 중집 회의 시간도 오전 8시에서 9시로 한 시간 늦춰졌다. 우여곡절 끝에 김 위원장이 회의장에 들어갔지만 반발이 지속되면서 이날 중집은 개회조차 하지 못했다.

조합원 30여 명은 "노사정 합의안 폐기하라"란 구호를 외치며 회의장 입구 를 막아섰다. 비정규직 중심인 이들 조합원은 노사정 합의안에 '해고 금지'가 명문화되지 않은 점에 대해 불만을 표출했다. 한 조합원은 "지난 5~6월 현장에서 비정규직이 잘려 나가는 동안 민주노총이 무엇을 했느냐"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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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건물 앞에서 구급차에 탑승하는 김명환 위원장. [한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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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0시 10분께 한 조합원이 "김 위원장이 10시 20분에 총리 공관 일정이 있다며 자리를 뜨려고 한다"고 외치자 다른 조합원들이 회의장 안으로 몰려 들어갔다. 김 위원장은 "향후 대의원 대회를 통해 공식 추인 절차를 밟겠다"고 말했지만 이들의 반발을 누그러뜨릴 수 없었다. 오히려 조합원들의 반발 수위는 더 커졌다. 한 조합원은 "총리실만 눈에 보이고 조합원들은 눈에 보이지 않느냐" "이렇게 어용인지 몰랐다" "조합비만 받아 먹고 무엇을 하고 있느냐" "김명환 위원장은 당장 사퇴하라"는 등 원색적인 비난을 이어갔다. 또 다른 조합원은 "대의원 대회를 열면 단상이 무사할 것 같으냐"면서 "내가 책임지고 가서 단상에 소화기를 뿌리겠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결국 회의장 바깥으로 한 걸음도 옮기지 못하고 사실상 '감금' 상태에 처했다. 이 같은 대치 상황은 3시간 가까이 지속되다가 오후 1시께 종료됐다. 대치가 풀린 뒤 김 위원장은 119 구급차를 타고 강북삼성병원으로 이송됐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김 위원장이 원래 당뇨와 고혈압을 앓아왔다"면서 "출근 저지 과정에서 압박과 스트레스 등으로 코피를 쏟았다"고 말했다.

'사회적 합의'에 대한 민주노총 내부 반발은 그동안의 관행으로 볼 때 예정된 수순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민주노총 내부의 '사회적 대화'에 대한 반감은 지난 20여 년간 지속돼왔고 이 때문에 '노사정 대화'에 참여하지 않았다. 김 위원장이 취임한 이후 노사정 협의체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참여를 시도했지만 좌절된 것도 이 같은 민주노총의 오랜 역사와 깊은 관련이 있다. 김 위원장은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선제적으로 대화를 제안했지만 결국 내부 반발을 넘지 못했다.

민주노총은 2일에 임시 중집을 열고 노사정 합의안 재추인을 추진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날과 같은 상황이 반복되면 중집에서 갑자기 방향을 틀어 노사정 합의안을 추인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분석이다. 특히 올해 하반기 차기 위원장 선거를 앞두고 중앙파, 현장파 등 비주류 계파들의 패권 다툼이 격화되고 있다는 점도 합의안 추인을 더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박승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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