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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0 (화)

[단독] 시인 백석·화가 이인성 1938년 다방에서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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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찍은 사진 첫 공개

무용가 조택원 귀국환영 만남

이인성 아들이 유품서 확인


한겨레

시인 백석과 화가 이인성 등이 함께 찍은 사진. 맨 오른쪽부터 백석, 이인성, 무용가 조택원, 의사이자 수필가인 정근양이다. 이인성이 직접 운영하던 대구의 아르스 다방에서 찍은 사진인데, 정면 벽에는 이인성이 좋아했던 배우 그레타 가르보의 사진이 걸려 있다. 이채원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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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백석(1912~1996)과 화가 이인성(1912~1950)이 함께 찍은 사진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1938년 12월에 찍은 이 사진은 이인성의 아들 이채원(70)씨가 아버지의 유품에서 확인해 <한겨레>에 알려온 것으로, 당대를 풍미한 무용가 조택원(1907~1976)과 의사이자 수필가인 정근양이 두 사람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이채원씨는 “사진이 찍힌 장소는 아버님이 운영하던 대구의 아르스 다방이고, 사진 오른쪽 하단의 글귀로 보아 1938년 프랑스에서 돌아온 무용가 조택원을 환영하는 모임을 기념한 사진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아버님의 유품 가운데에서 이 사진을 발견하고, 주변 분들의 자문을 거친 뒤에 최종적으로 백석 전문가인 이동순 영남대 명예교수한테서 사진 속 인물이 백석이 맞다는 고증을 들었다”고 밝혔다.

백석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등의 시로 사랑받는 시인이고, 이인성은 <가을의 어느 날> <경주의 산곡에서> 같은 작품으로 잘 알려졌으며 거칠면서도 강렬한 화풍으로 ‘조선의 고갱’으로 일컬어졌다. 조택원은 최승희와 함께 일본 현대무용의 거두 이시이 바쿠에게 배운 무용가로 1937년 프랑스에서 순회공연을 열기도 했다. 정근양은 의사이자 수필가로 “<삼천리> <조광> 같은 잡지에 수필 작품이 실렸고 당시 문인주소록에도 꼭 등장하는데, 서울에서 병원을 하다가 나중에 북만주로 떠나 거기에서 개원해 살고 있다는 소식이 잡지 <문장>의 문인 근황에 실리기도 했다”고 이동순 교수는 소개했다. 이동순 교수는 1987년 처음으로 <백석시전집>을 펴냈고 백석의 연인인 자야 김영한의 자전 에세이 <내 사랑 백석> 출간의 산파 구실을 한 바 있다.

한겨레

이인성이 1938년 7월15일에 개업한 아르스 다방의 광고 전단. 이채원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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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서 맨 오른쪽 인물이 백석인데, 탁자에 괸 오른쪽 팔에 머리를 받친 채 입은 살짝 벌리고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이동순 교수는 “첫눈에 백석이 틀림없다고 느꼈지만, 눈빛이 특이해서 자꾸 다른 백석 사진과 비교해서 들여다보곤 했다”며 “숱 많은 모발, 짙은 눈썹, 쪽 곧은 콧날과 하관 등 전반적인 외양이 백석이 분명하다”고 단언했다. 백석의 사진은 일본 아오야마학원 재학 시절 사진과 함흥 영생고보 교사 시절 사진, 북한에서 찍은 70대 중반쯤의 사진 등이 알려졌지만, 1938년 무렵 동료 예술인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백석은 1934년 조선일보사에 입사해 잡지 <조광> 창간에 참여한 데 이어 1936년에는 잡지 <여성> 창간 준비를 마친 뒤 사직하고 함흥 영생고보 교사로 일했으며 1938년에 교사직을 그만두고 경성(서울)으로 돌아와 1939년 1월26일부터 다시 <여성> 편집주임으로 일했다. 이동순 교수는 “백석이 <조광>과 <여성> 등 잡지 일을 하면서 동갑내기 화가인 이인성의 전시회 평을 쓰는 등 개인적으로도 교류가 많았을 것으로 짐작된다”며 “사진 오른쪽 하단 ‘1938. 12 조택원 군 후란-스 귀(歸)’라는 문구로 보아 조택원이 프랑스에서 귀국한 기념으로 서울에서 친구들과 함께 밤차를 타고 대구로 내려와 아르스 다방에서 찍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이채원씨는 부친 이인성이 1938년 7월15일 대구에서 개점한 아르스 다방의 광고 전단 역시 <한겨레>에 제공했다. 이인성이 직접 작성한 이 전단은 아르스 다방 이름이 나전어(라틴어)로 예술을 뜻하는 ‘ARS’를 가리키며 빅터 아르시에이(RCA) 오디오 시스템을 갖추었다고 홍보하고 있다. 이채원씨는 “아르스는 대구는 물론 서울에서 온 많은 예술인들도 들르던 명소였다”며 “아버님의 유품 중에도 이 다방에서 찍은 사진이 여럿 있다”고 밝혔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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