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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3 (목)

[세상사는 이야기] 코로나와 월드컵 유치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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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코로나 환란 중에 스포츠에 목이 말라 월드컵이 불현듯 떠오른다. 2002월드컵 유치 드라마의 막전막후 이야기다. 2032년 하계올림픽과 향후 월드컵 유치를 기대하며 뒤돌아본다.

1930년 시작된 월드컵은 60년간 유럽과 남미 국가에서 번갈아 개최됐다. 1994년은 북미대륙 미국에서, 2002년은 아시아대륙에서 개최하기로 결정되자 일본은 1989년에, 한국은 1994년에야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대한축구협회 정몽준 회장은 FIFA 부회장 겸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어 FIFA에 교두보를 구축하고 전 세계를 돌며 유치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문민정부가 들어선 후 대선 후유증으로 월드컵 유치와 정 회장에 대한 청와대 분위기는 냉랭했다. 당시 문체비서관이던 필자는 월드컵 유치 필요성을 제기하고 정 회장의 청와대 방문을 주선했다. 유치 중요성을 확신한 김정남 교문수석은 비서실 내 의견을 조율하고 김영삼 대통령의 재가를 얻어 월드컵 유치를 적극 추진토록 1994년 5월 문체부에 지시했다.

브라질 출신 주앙 아벨란제는 1963년부터 IOC위원으로, 1974년부터 FIFA 회장을 겸임하며 월드컵을 세계 최고 스포츠 제전으로 만든 축구황제였다. 한국이 유치전에 돌입하자 아벨란제 회장은 "일본의 개최안이 가장 좋고 한국은 전쟁 위협이 있다"면서 일본을 편들었다. 일본에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김 대통령은 유치 지원에 적극 나섰다. 관련국 정상회담과 함께 김영수·최호중·이양호 장관을 대통령특사로 파견하고 FIFA 집행위원 12명을 만나 한국 지지를 당부했다. 20대 그룹 회장도 청와대 오찬에 초대하여 유치 협조를 요청했다.

월드컵에 한 번도 출전하지 못한 일본보다 3회 연속 출전한 한국이 월드컵을 개최해야 한다는 전략을 폈다. 한국은 축구전용구장이 하나도 없는데 일본은 이미 여러 개 확보하고 있었다. 한편 유럽 축구계의 한일공동 개최안을 수용하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집행위원 지지표를 확보하지 않은 중도에 타협은 필패라는 의견을 유치위에 전달해 궤도 수정을 막았다.

1995년 5월 아르헨티나 마르델플라타에서 열린 남미축구대회에 가는 길에 이홍구 전 총리와 정몽준 회장이 카를로스 메넴 대통령 목장을 비공식 방문한 기사가 라 나시온(La Nation)에 게재됐다. 세계 축구계 인사가 체류하던 호텔에서 그 신문을 보고 당황해하던 일본유치단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한국유치단은 레스토랑과 경기장에서 각국 축구인과 개별적으로 어울리는 반면 일본유치단은 그들끼리 조찬과 회의를 하였다. 이 전 총리 주최 리셉션 시간에 아벨란제 회장이 갑자기 만찬회의를 소집해 축구계 인사들이 뒤늦게 리셉션에 나타나는 해프닝도 있었다. 이 전 총리는 대통령궁을 방문해 메넴 대통령에게 지지를 부탁했다. 이 전 총리의 외교와 정 회장의 불도저 돌파력으로 남미에 발판을 마련했다. 필자는 유치 현장에서 일본의 수비축구 외교와 한국의 공격축구 외교를 지켜보며 우리의 승리를 예감했다.

유치 결정 3주 전 아발란제 회장 생일파티에서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IOC 위원장은 "FIFA 집행위원 24명 중 한국 지지표가 일본보다 훨씬 많다"고 귀띔했다고 한다. 1996년 5월 말 필자는 유치단 일원으로 스위스 취리히에 머물렀다. 폭풍 전야의 밤은 고요했다. 결선투표 전날 정 회장은 FIFA 회장이 한일공동 개최를 제안했다고 알려주었다. 김광일 대통령비서실장에게 전화하니 어제 김운용 IOC 위원이 그 상황을 알려주어 대통령께 보고했다고 하였다.

FIFA 총회장에서 한일공동 개최가 발표되는 순간 한국유치단의 환호와 일본유치단의 침울한 분위기가 지금도 생생하다. 대~한민국 국민이 하나 되어 만든 기적이다. 유치에 공을 들였던 김영삼 대통령은 2002월드컵 개막식에 초청받지 못해 섭섭해했다. 후임자가 전임자를 모시는 아름다운 전통은 언제쯤 만들어질까.

[신현웅 웅진재단 이사장·전 문화관광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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