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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이슈 아동학대 피해와 대책

[단독] 경찰 "아동학대 CCTV 보려면 '시간당 60만원' 모자이크 처리 비용 피해가족이 부담해야"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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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 ‘아동학대 수사 업무 매뉴얼’ 논란
"CCTV 보려면 자비로 ‘모자이크 처리’해야"
비용 시간당 60만원…피해 학부모들 ‘열람 포기’
"수백~수천만원 드는데 사실상 열람하지 말란 소리"
경찰 "CCTV 등장 ‘제3자’ 인권 보호 위한 것"

"가해자가 CC(폐쇄회로)TV 열람을 거부한 경우, 영상을 보려면 가해자에 대한 ‘비식별화 조치’(모자이크 처리) 비용을 피해 가족 측이 부담해야 합니다."

서울 강북구 구립(區立)어린이집 아동 학대 의혹 사건과 관련, 경찰이 CCTV 열람을 요구하는 피해 아동 학부모들에게 자비로 CCTV 영상에 나오는 어린이집 교사들의 모습을 ‘비식별화 조치’해야 영상을 볼 수 있다고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사설 업체를 통해 CCTV 등장 인물의 얼굴을 가리는 '비식별화 조치'를 하는 비용은 한 시간 촬영분 당 약 60만원에 달해 결국 학부모들은 CCTV 열람을 포기했다. 경찰은 CCTV에 등장하는 ‘제3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매뉴얼에 따라 조치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학부모들은 "피해 사실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CCTV 열람을 사실상 포기하라는 것 아니냐"고 반발하고 있다.

20일 서울 강북경찰서와 아동학대 피해가족 등에 따르면, 아동학대 피해를 주장하는 강북구 구립 D어린이집 학부모 A씨 등은 지난달 8일 D어린이집의 두 달치 CCTV 영상에 대한 정보공개청구를 했다. 그러자 경찰은 "해당 영상에 나오는 모든 사람의 동의를 받아오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아동학대 혐의 등으로 입건된 교사 2명이 동의를 거부하면서 CCTV를 열람할 수 없게 됐다.

조선일보

일러스트=정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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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지난달 10일 학부모 측에 교사들이 CCTV 열람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사설 업체를 통해 어린이집 교사들의 얼굴을 ‘비식별화 조치’해 오면 CCTV를 보여줄 수 있다고 안내했다. 통상 ‘비식별화 조치’에 들어가는 비용은 시간당 60만원 선이다. 현행법상 어린이집이 의무 보관해야 하는 두 달치 영상(하루 8시간, 평일 기준)을 처리하려면 하루 480만원씩, 약 2억원의 비용이 드는 셈이다.

이같은 지침은 경찰청이 지난 5월 전국 경찰서에 배포한 ‘아동학대 수사 업무 매뉴얼’에 따른 것으로 확인됐다.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이 입수한 ‘아동학대 수사 업무 매뉴얼’에는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상 열람대상인 CCTV 영상에 촬영된 가·피해자를 포함한 모든 정보 주체의 동의가 선행돼야 피해자 측 CCTV 열람이 가능하다"며 "범죄 혐의 확정 전인 피의자도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의 본질적 내용이 침해돼서는 안 되므로 피의자의 동의도 필수적으로 요구된다"고 나와 있다.

또 제3자가 열람을 거부해 CCTV 확인이 불가능한 상황에 대해선 "일부 정보 주체의 비동의로 CCTV 열람이 불가능한 경우 비동의한 정보주체들을 비식별화 조치를 한 후에 공개 가능"이라고 안내하고 있다.

당초 경찰이 이런 지침을 마련한 것은 이전까지 아동학대 피해 부모들이 공식적으로 CCTV를 열람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압수수색한 CCTV는 수사상 비공개가 원칙이어서 피해 가족이 CCTV 열람을 요청해도 경찰은 이를 확인시켜줄 방법이 없었다. 경찰이 피해 가족이 CCTV를 볼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준 것이 ‘아동학대 수사 업무 매뉴얼’이었다.

경찰청 관계자는 "아동학대 피해 가족을 중심으로 보육시설의 CCTV를 열람하도록 해달라는 요청이 늘어나 법에 근거해 매뉴얼을 만들었다"며 "개인정보보호법상 수사 과정이라도 CCTV에 나온 ‘제3자’는 비식별화 등을 통해 인권보호를 보장받을 권리가 있기 때문에, 피해자나 가족도 가해자 등 제3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동학대 전문가와 피해가족 사이에선 "이 매뉴얼이 오히려 CCTV 열람을 어렵게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들이 CCTV 열람에 동의할 가능성도 거의 없고, 비식별화 조치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아동학대 피해부모인 B씨는 "처음에는 정보공개청구를 하라더니, 그 다음에는 가해교사의 동의를 받아오라고 하고, 그 다음에는 학부모들이 사설업체에 CCTV를 맡겨 ‘비식별화 조치’를 해오라고 해 결국 CCTV 열람을 포기했다"며 "수백~수천만원에 이르는 비용을 내기 어려운 학부모들에겐 사실상 열람을 포기하라는 소리"라고 했다.

법무법인 ‘서평’의 송상엽 변호사는 "영·유아는 나이가 어려 피해 사실을 제대로 진술하기 어려워 CCTV가 유일한 범죄의 증거인 경우가 많다"며 "경찰이 영유아 보호를 위해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한 CCTV를 가해자의 동의가 있어야만 피해아동 부모가 볼수 있도록 법 적용을 하는 것은 개인정보보호법의 취지를 잘못 이해하는 것으로, 피해 가족이 법적으로 보호받을 기회를 빼앗는 셈"이라고 했다.

[박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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