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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김교석의 남자의 물건] [3] 무중력도 극복한 필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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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 7호와 ‘스페이스 펜’

전기차 업계와 소셜 미디어 세계를 넘어 정계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하는 일론 머스크는 지난 10월, 우주 세계와 탐험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들끓게 만들었다. 스페이스X의 대형 우주탐사선 ‘스타십’의 5차 시험비행에서 71m짜리 초대형 하부 로켓 ‘수퍼 헤비’가 역추진하며 내려오고, 괴수 영화 ‘고질라’의 이름을 딴 ‘메카질라(Mechazilla)’라는 거대 로봇 팔이 젓가락질하듯 이를 공중에서 회수하는 신기술을 선보였다. 이 과정이 전 세계에 고화질로 생중계됐고, 지구인들은 컴퓨터 그래픽(CG)이 아닌 실황 중계라는 데 열광했다. 영혼의 단짝이 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지난 19일 열린 6차 시험비행 참관을 했는데, 그 진귀한 젓가락질은 실패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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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셔 펜사 창립자 폴 피셔가 창립 50주년을 맞아 펜 모델을 보이고 있다./피셔 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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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처럼 직접 텍사스를 찾아갈 순 없지만, 우주 모험의 꿈을 품고 싶을 때면 피셔펜이라는 회사가 만든 ‘스페이스 펜’을 재킷 안에 꽂고 다닌다. 1960년대 말 미 항공우주국(NASA)은 아폴로 1호의 대형 화재사고 이후 가연성 소재인 연필의 대체품을 찾고 있었다. 당시 조악한 볼펜 기술을 뛰어넘는 획기적인 제품을 개발하던 피셔펜의 소식을 들은 NASA는 고온과 저온, 순수 산소와 진공 상태, 5km 가까이 선을 긋는 등의 극단적인 실험과 고심 끝에 첫 주문을 넣었다.

스페이스 펜은 메카질라처럼 등장하자마자 매스컴을 탔다. 1968년 10월 미국의 첫 유인우주선인 아폴로 7호의 승무원들이 TV 생중계와 여러 사진을 통해 스페이스 펜을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준 이후, 60여 년간 NASA와 피셔펜 간의 납품 계약은 이어져오고 있다. 당시 라이벌이었던 소련 우주인들도 단체 구매를 하는 등 반세기 넘게 전 세계 우주인의 필수품목으로 자리 잡았다. 2021년에는 우주재단이 발표한 올해의 ‘우주기술 명예의 전당’에 오르기도 했다. 특히 ‘불렛’ 스타일은 디자인으로도 인정받으며 뉴욕 현대미술관(MoMA)의 영구 소장품으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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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 7호 비행사 발터 커닝햄이 우주선에서 스페이스 펜을 사용하는 모습./NA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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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소로 가압된 잉크 카트리지가 장착돼 있으며, 무중력 상태는 물론이고 어떠한 각도에서도 잉크가 공급된다. 물속은 물론 영하 35도의 극한 조건에서도 동작하고 젖은 종이에도 쓰인다. 유통기한은 100년 정도라니 지구 밖에 갖고 나갈 만큼 강인한 물건임은 틀림없다. 살면서 담대함이 필요한 순간에 가슴에 품어보자. 입문용 만년필 수준의 합리적인 가격에 우주 탐험의 장대한 역사와 함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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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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