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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샤넬 부흥을 이끈 ‘패션 거장’ 칼 라거펠트, 별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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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거장(巨匠)’ 칼 라거펠트가 85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샤넬의 부흥을 이끈 라거펠트는 명품(럭셔리) 패션 디자인을 정립해온 인물이다.

샤넬은 19일(현지 시각) 샤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칼 라거펠트가 프랑스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사인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최근 몇 주 건강상태가 악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지난 1월 파리에서 열린 샤넬 오뜨 꾸뛰르(고급 맞춤복) 패션쇼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당시 샤넬은 "칼 라거펠트가 심신이 지쳤다"는 긴급 성명을 발표했다.

이날 샤넬은 인스타그램 공식 계정에 "칼 라거펠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죽음을 발표하게 된 건 깊은 슬픔"이라면서 "뛰어난 창의력을 지닌 칼 라거펠트는 가브리엘 샤넬이 만든 브랜드 코드를 재창조해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칼 라거펠트)는 ‘내 일은 그녀(가브리엘 샤넬)이 한 일이 아니라 그녀가 했을 일을 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곤 했다"며 "그는 끝없는 상상력으로 사진과 단편 영화 등 많은 예술 세계를 탐험했다. 샤넬은 1987년부터 그의 재능 덕을 많이 봤다"고 덧붙였다.

알렝 베르트하이머 샤넬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그는 창조적인 천재성과 관대함, 뛰어난 직감으로 시대를 앞서갔고 샤넬이 전세계적으로 성공하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며 "나는 오늘 친구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뛰어난 창조적 감각까지 모두 잃었다"고 라거펠트의 죽음을 애도했다. 샤넬의 패션 사업 부분을 이끄는 브루노 파블로브스키도 "칼 라거펠트는 가브리엘 샤넬의 전설과 남겼고 샤넬 하우스 역사에 발자취를 남겼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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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칼 라거펠트가 85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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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거펠트는 끌로에, 펜디, 샤넬 등 기존 럭셔리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이끌면서 패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나는 다국적 패션 현상(Fashion phenomenon)이 되고 싶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는데, 라거펠트는 자신의 말대로 패션 현상이었다.

1933년 9월 10일생인 라거펠트는 어릴 적부터 예술과 옷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1954년 국제양모사무국 콘테스트에서 코트 부문 1등을 하면서 파리 패션계에 입문했다. 이후 패션 브랜드 피에르 발망, 장 파투 등에서 경력을 쌓았다. 그는 보수적이고 변화하지 않는 파리 꾸뛰르 업계에 염증을 느껴 여러 브랜드와 협업하면서 ‘패션계의 아웃사이더’로 있었다. 그는 꾸뛰르보다 한 단계 낮게 평가받는 기성복 디자이너로 다양한 경험을 갖춰나갔다.

그러다 그는 1964년부터 패션 브랜드 끌로에에 수석 디자이너로서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또 1965년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펜디에 합류에 펜디를 혁신하면서 세계적인 브랜드 자리에 올려놨다. 그는 모피 가공 기술로 유명한 펜디에서 모피를 여러 형태로 변형해 현대적인 디자인을 만들어냈다. 펜디의 상징이 된 ‘더블 F(에프)’ 로고도 라거펠트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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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의 홍보대사로 활약 중인 지드래곤(왼쪽)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칼 라거펠트(오른쪽)./ 샤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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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그룹 회장은 라거펠트를 가리켜 "파리를 세계 패션 수도로, 펜디를 가장 혁신적인 이탈리아 브랜드 중 하나로 만드는 데 도움을 준 창조적 천재"라고 평했다. LVMH그룹은 펜디를 비롯해 루이비통·로에베·셀린느·겐조·지방시·디올 등을 거느리고 있다.

이후 라거펠트는 1982년 샤넬에 공식 영입돼 샤넬을 재창조했다. 당시 오뜨 꾸뛰르 디자이너가 아닌 기성복 디자이너로 활동한 라거펠트의 경력은 거센 반발과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업계는 독일인이라는 점도 탐탁지 않아 했다. 그러나 그는 1983년 1월 샤넬 오뜨 꾸뛰르 컬렉션 데뷔 무대를 성공적으로 선보이며 ‘죽은 샤넬을 환생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라거펠트는 기존 샤넬 아이템과 대중적인 문화 요소를 결합해 젊은 층까지 샤넬의 열성 팬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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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라거펠트. 그는 1982년 샤넬에 공식 영입돼 샤넬을 재창조했다./칼 라거펠트 인스타그램


이후 그는 1984년부터는 샤넬의 프레타 포르테(기성복)까지 감독하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명실상부한 샤넬 수장(首長)이 됐다. 그의 이름에는 ‘파리 패션의 귀족’ ‘제왕’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그는 1984년 ‘칼 라거펠트’, 1998년 ‘라거펠트 갤러리’를 차례로 설립하면서 자신의 브랜드 사업도 전개했다.

까만 선글라스와 백발(白髮)의 포니테일 머리, 검은색 바지, 바짝 선 칼라, 크롬하츠 액세서리는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다. 그는 신비주의를 고수하고 있지만 휴가를 반납하면서까지 일에 매달리는 일 중독자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의 패션 정신은 구찌의 톰 포드, 디올의 존 갈리아노, 지방시의 리카르도 티시, 보테가 베네타의 토마스 마이어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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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만 선글라스와 백발(白髮)의 포니테일 머리, 검은색 바지, 바짝 선 칼라, 크롬하츠 액세서리는 칼 라거펠트의 트레이드마크였다./ 보그 알렉사 청


2000년 에디 슬리먼이 디자인한 디올 옴므 수트를 입기 위해 13개월 동안 다이어트해 42kg을 감량한 일화도 유명하다.

그의 죽음을 두고 뉴욕타임스(NYT)는 "20세기, 21세기 가장 열매를 많이 맺은 디자이너"로 평했다. BBC는 "칼 라거펠트는 패션 업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하나다.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 패션에 매진했다"고 전했다. 보그 편집장인 안나 윈투어는 2015년 영국 패션 어워드에서 상을 받으면서 "내가 아는 그 누구보다 그(라거펠트)는 패션 정신을 대표한다"고 존경심을 표했다.


[포토]'샤넬의 전설' 세상을 떠났다, 칼 라거펠트 향년 85세

[이다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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