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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자유민주주의→민주주의' 교과서에 싣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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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논란됐던 시안 유지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도 빠져

교육부가 2020년부터 중·고교생들이 배울 역사 교과서의 교육과정, 집필 기준에서 '자유민주주의'를 '민주주의'로 바꾸기로 했다. '대한민국이 한반도 유일 합법 정부'라는 집필 기준도 삭제된다.

교육부는 이런 내용의 교육과정 개정안을 22일 행정예고했다. 교육부는 지난 4월 연구 용역을 맡은 교육과정평가원에서 교육과정, 집필 기준 시안(試案)을 받아 두 달 넘게 검토하며 개정안을 만들어왔다.

교육부는 평가원 시안에서 논란이 됐던 부분을 그대로 유지했다. 특히 현행 교육과정과 집필 기준에서 '자유민주주의'로 서술된 부분을 모두 '민주주의'로 바꿨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자유민주주의가 협소한 의미이기 때문에 민주주의로 바꾼 것"이라고 밝혔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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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집필 기준에서 '대한민국이 한반도 유일 합법 정부'라는 서술도 빠졌다. 현행 집필 기준은 '대한민국 정부는 유엔으로부터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받은 사실에 유의한다'고 서술하고 있다. 그런데 교육부 집필 기준은 '남한과 북한에 각각 들어선 정부의 수립 과정과 체제적 특징을 비교한다'고 서술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국가기록원 자료에 대한민국은 '유엔 선거 감시가 가능한 지역에 수립된 유일한 합법정부'라고 돼 있기 때문에, '한반도 유일한 합법 정부'는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또 교육부 교육과정 개정안은 1948년 8월 15일은 '대한민국 수립'이 아닌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서술했다. 교육부는 중·고 역사교과서뿐 아니라 내년부터 초등 5·6학년들이 배울 국정 사회교과서 교육과정 개정안에서도 '자유민주주의'를 '민주주의'로, '대한민국 수립'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바꿨다.

교육부 교육과정 개정안과 집필 기준에 대해 전문가들은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명시한' 헌법에 위배된다"고 반발하고 있다. 교육과정 개정안은 앞으로 20일간 행정 예고를 거쳐 확정·고시된다. 집필 기준은 행정 예고 대상은 아니지만, 교육과정이 바뀌지 않으면 현행 안이 그대로 확정된다.

교육부는 지난해 8월 역사 교과서 교육과정, 집필 기준을 개정하기 위해 교육과정평가원에 연구 용역을 맡겼다. 지난 2월 '자유민주주의'가 '민주주의'로 바뀌고 '한반도 유일 합법 정부' 등이 빠진 평가원 시안이 공개됐을 때 교육부는 "연구진 입장일 뿐, 우리 의견과 다르다"고 했다. 당시 이낙연 국무총리도 국회 본회의에서 질문이 나오자 "(집필 기준에) 동의하지 않는다. 총리가 동의하지 않으면 정부 입장이 아니다"고 했다. 그런데 21일 교육부가 발표한 개정안을 보면, 평가원 시안이 그대로 유지됐다. 교육부는 '자유민주주의'를 '민주주의'로 바꾼 이유에 대해 "역대 역사과 교육과정과 교과서는 대부분 민주주의로 서술했고, 현재 다른 사회 과목도 모두 민주주의로 서술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자유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내포하는 자유·평등·인권·복지 등 다양한 구성 요소 중 일부만을 의미하는 협소한 의미이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적합하다"고 했다. 또 "헌법 전문의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는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가 아니라, 독일 기본법의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 질서(The basic free and democratic order)'를 의미한다는 학계주장이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헌법학자인 고려대 장영수 교수는 "여러 가지 민주주의 중에서 헌법 전문과 4조의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 우리의 '자유민주주의'"라며 "헌법에 따라, 우리 민주주의가 독일 히틀러식 민주주의나 북한의 인민민주주의와 다르다는 점을 알려주기 위해 교과서에도 자유민주주의라고 적시해야 한다"고 했다. 장 교수는 또 "현재 미국이 북한과 정상회담을 하는 등 미묘한 시점에 굳이 북한과 우리 민주주의를 포괄하는 상위 개념인 '민주주의'를 교과서에 쓰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집필 기준에서 '한반도 유일 합법 정부'를 뺀 이유에 대해서는 "집필자에게 자율성을 주기 위해서"라고 했다. 예를 들어, 집필 기준이 '남한과 북한에 각각 들어선 정부의 수립 과정'이라고 돼 있으니, 집필자들이 정부 수립 과정을 설명하면서 '한반도 유일 합법 정부'라고 써도 검정 심사에서 탈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교육부는 "대한민국이 '한반도 유일한 합법 정부'인지, '유엔의 감시가 가능한 지역에서 수립된 유일한 합법정부'인지 학계에서도 논란이 있어 집필 기준에서는 포괄적으로 서술했다"고 했다. '북한의 도발' '북한 세습' '북한 주민 인권' 등 북한에 대한 부정적 내용도 집필 기준에서 대거 빠졌다.

하지만 강규형 명지대 교수는 "집필 기준에도 없는데, 검정 심사에서 '대한민국이 한반도 유일 합법 정부' '천안함 피격' 등을 서술하지 않았다고 탈락시킬 수 있겠느냐"면서 "꼭 들어가야 할 부분이 빠졌다"고 했다. 장영수 교수는 "박근혜 정부의 국정교과서를 비판한 현 정부가 똑같이 헌법에 위배되는 왜곡된 역사 교육을 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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