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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장은주의 정치시평]‘이면헌법’을 없애는 두 개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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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안을 마련하기 위한 다양한 차원의 논의가 한창이다. 국회 개헌특위의 활동이 지지부진하자 문재인 대통령은 정부 차원의 개헌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으며, 시민사회에서도 이런저런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촛불혁명은 우리 사회의 근본 틀을 새롭게 규정할 개헌을 통해서만 완성될 수 있을 터, 가능한한 여러 의견들이 검토되고 반영된 최선의 헌법안이 국민투표에 부쳐질 수 있으면 좋겠다.

경향신문

그런데 이런 논의 과정에서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사실 하나가 있다. 1948년 정부 수립 이래 우리나라에는 하나가 아닌 두 개의 헌법, 곧 공식 헌법과 함께 ‘이면헌법’(백낙청)이 존재해 왔다는 사실 말이다. 이 이면헌법은 분단이라는 비정상적 상황이 국민의 기본권에 대한 심각한 제약도 정당화할 수 있다고 여기는 등의 내용을 담은 일종의 관습헌법으로, 심지어 민주화 이후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공식 헌법을 무력화시키곤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심지어 통합진보당을 해산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에서 극명하게 확인되었듯이, 하위법인 ‘국가보안법’이 헌법의 해석마저 지배한다. 이 이면헌법의 작동을 중지시키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헌법을 만들어도 우리 민주주의는 결코 온전한 모습을 갖기 힘들 것이다.

물론 촛불혁명을 거치면서 이 이면헌법의 위세가 상당히 위축되기는 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그 이면헌법의 논리에 따라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실행했던 김기춘 등이 사법적 징치를 받았고, 그 이면헌법의 은밀한 집행자였던 국가정보원에 대해서도 ‘적폐청산’ 작업이 진행 중이다. 그러나 최근에도 우리 극우반공주의 세력은 평창 동계올림픽을 ‘평양올림픽’이라 조롱하고 모처럼 조성된 남북대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그 이면헌법을 부활시키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문제는 단순히 우리 사회 일각의 삐뚤어진 반공, 반북 의식이 아니라 우리의 정치와 사회를 여러 차원에서 일그러뜨리고 있는 비정상적인 분단체제 그 자체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 분단체제를 정상화하는 길은 단지 민족적 동질성에 기초한 ‘통일’뿐이라고 생각해 왔다. 현행 헌법도 우리 대한민국이 주도하는 통일 지향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이런 패러다임으로는 분단체제의 비정상성을 완화시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병리성을 극대화하기만 한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민주정부 10년 동안의 대북포용정책 역시 한반도에 정상 상태를 가져다주지 못했다. 오히려 극우반공주의자들은 그런 정책이 북한에 유화적이라면서 이면헌법을 더 활발하게 작동시키기 위한 빌미로 삼았다. 그 결과가 바로 지난 두 정부 시기의 남북관계 경색과 작금의 북핵 위기다.

모처럼 열린 지금의 남북대화 국면도 비슷한 운명을 되풀이하지는 않을지 걱정이다. 이제 이 통일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통일과는 다른 방식으로 분단체제를 정상화할 수 있는 길이 있다. 통일의 가능성은 미래의 일로 열어 두면서 이미 국제법적 현실인 ‘1민족 2국가 체제’를 그 자체로 수용하고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두 국가의 ‘평화공존’이라는 새로운 정상상태를 만들어내는 길이다. 나중에 독일 통일의 초석이 되었다고 평가받는 빌리 브란트 총리의 ‘동방정책’이 이끌어 낸 동서독 사이의 ‘기본조약’이 모델이 될 수 있다. 이 조약은 두 독일 사이를 “서로 평등한 보통의 좋은 이웃 관계”라고 규정하고, 양국의 주권과 독립성 및 영토적 통합성을 인정한 위에서, ‘상설대표부’를 상대의 수도에 설치하도록 했다.

이런 방식은 하나의 민족이 만든 두 국가의 화해 불가능한 이념과 체제의 차이를 그 자체로 존중하고 인정함으로써 분단이라는 비정상성을 정상화하려 한다.

어떤 신실한 기독교도와 냉철한 무신론자의 신념체계는 서로 화해하기 힘들다. 그러나 배타적 신념체계를 가진 사람들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삶의 질서를 만드는 일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신념의 차이를 불가피한 것으로 수용하면서 공동의 삶을 규제하는 원칙들에 합의할 수 있으면 된다. 이게 바로 우리 극우반공주의 세력이 신줏단지 모시듯 한다면서도 사실은 부정하고 있는 ‘자유민주주의’의 방식이다. 마찬가지 원리에 따라 한반도에 국제적으로 보증된 ‘관용의 레짐’을 구축할 수 있다.

우리 헌법의 영토조항(3조)과 통일조항(4조)은 평화공존 패러다임에 잘 부합하지 않는다. 사실 이런 조항들은 공식 헌법을 무력화시켜 온 이면헌법의 은밀한 작동을 정당화하는 데 일정한 역할을 했다. 개헌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이런 문제도 함께 검토되고 적절한 대안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장은주 | 와이즈유(영산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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