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공식 추모행사가 있기 하루 전 10월2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에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차별금지법 입법을 막아달라는 한교총 대표의 요구에 ‘먹고사는 문제’를 우선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고, 이것이 정치의 근본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충분히 성숙한 다음에’, ‘사회적 대화를 하고 나서’ 차별금지법을 논의해볼 수 있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두 사람의 대화가 사람의 존재를 부정하고 성소수자를 사회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 같아 분노를 느꼈다.
교회 지도자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정치인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그리 놀랍지 않다. 다만 차별금지법 입법을 당장 추진할 의사가 없음을 명확히 보여주며 안심시키기에 급급한 모습이 과연 이재명 대표가 말하는 ‘정치의 근본’인 것인지 묻고 싶었다. 또한 차별금지법 제정 논의가 15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사회갈등을 일으키는 입법과제로만 치부하며 ‘나중에’를 재탕하는 것이야말로 비겁한 변명처럼 느껴졌다.
이재명 대표의 말처럼 ‘먹고사는 문제’ 중요하다. 윤석열 정부가 파탄 낸 사회에서 돈 벌어 먹고살기 참 쉽지 않다. 하지만 그것이 민생이라면, 성소수자 또한 배제되어선 안 된다. 자신의 성정체성만으로도 일터와 삶터에서 내쫓기는 사람들이 존재하는데, 차별금지법이 어찌 먹고사는 문제가 아닐 수 있겠는가. 지난 국회에서 같은 당 의원들이 발의한 차별금지법 입법 목적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었다면 이런 발언은 할 수 없었을 테다.
질릴 정도로 반복되고 있는 사회적 대화는 누가, 언제 시작하는 것인가. 21대 국회에서 차별금지법이 발의되었을 당시 이미 다수 국민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찬성(여론조사에서 67.2%의 응답자가 찬성)했고, 국가인권위원회도 사회적 공감대를 이미 이뤘다고 평가했는데, 이재명 대표는 누구와 어떤 사회적 대화를 하고 싶은 것일까. 차라리 민주당이 차별금지법 제정 논의를 충분히 하지 못했음을 인정하고, 이제부터라도 ‘사회적 대화’를 위한 구체적 로드맵을 제시하는 것이 지금으로선 가장 필요한 역할일 것이다.
존재하는 한, 살아 있는 한, 성소수자도 평등한 삶을 누릴 자격이 있다. 저승이 아닌 이승에서 평안해야 하지 않겠는가. 차별을 예방하고 구제하는 일이 ‘먹고사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죽고사는 문제’임을 상기하길 바란다.
정민석 청소년성소수자지원센터 ‘띵동’ 대표 |
정민석 청소년성소수자지원센터 ‘띵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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