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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정인진의 청안백안 靑眼白眼]방통위 사건의 집행정지 결정을 읽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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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 의사결정엔 최소 3인 필요
‘2인 방통위’ 체제에서 의결한
방문진 이사 6명 임명 효력 정지

법원, 입법목적·법 기본원리 중시
법전에 안 갇히고 고약한 현실 교정

지난 7월26일 법원은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의 이른바 ‘2인 방통위’ 체제에서 의결된 방송문화진흥원의 새 이사 6인 임명의 효력을 정지하는 결정을 내렸다. 사건의 쟁점은 방통위의 이런 의결이 적법한지 여부였다. 방통위법 제13조(회의) 제2항은 “위원회의 회의는 재적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고 되어 있다. 재적위원이 2인이므로 2인의 찬성으로 한 의결은 적법하다는 것이 사건 피신청인인 방통위의 주장이다. 그런데 방통위법 제4조(위원회의 구성 등) 제1항은 “위원회는 위원회의 위원장 1인, 부위원장 1인을 포함한 5인의 상임인 위원으로 구성한다”고 되어 있고, 제2항은 “위원 5인 중 위원장을 포함한 2인은 대통령이 지명하고, 3인은 국회의 추천을 받아 제1항에 따른 임명을 한다”고 되어 있다. 의사정족수에 관한 규정은 없지만, 이렇게 5인으로 구성하도록 되어 있는 합의제(合議制) 기관에서 재적위원 2인만으로 내놓은 의결이 적법할 리 없다는 것이 사건 신청인들인 방문진 전 이사들의 주장이다. 법원은 신청인들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 사건의 배경에는 정치적 의미와 정책적 고려사항이 복잡하게 얽혀 있지만, 법적 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증거와 법리다. 경위가 어떻든 방통위의 의사정족수가 충족되지 않은 상황에 놓인 것이 당장의 사실인 이상, 그렇게 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여하는 2인 방통위 의결의 적법성 판단을 직접적으로 좌우할 만한 사정이 못 된다. 문제는 이렇게 의결정족수에 관한 규정을 두고서도 의사정족수에 관해서는 아무런 규정도 두지 않은 경우, 법이 정한 구성 방법에 부합하지 않은 조직이 문언상의 의결정족수에 부합하는 의결을 하면 그 의결을 적법하다고 할 수 있는지 여부다.

조항의 문언을 떠나 문제를 단체법과 행정조직법의 근본원리에서 보면 이렇다. 단체란 최소한 3인 이상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1인은 단체일 수 없고, 2인은 견해가 대립할 때 결론을 낼 수 없다. 그래서 단체의 의사결정에는 최소한 3인이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의 내포 중 하나인 다수결 원칙도 3인 이상이 모여 있을 때 작동하는 것이다. 전 세계 문명국의 사법(私法) 체계는 상당 부분 로마법에 빚지고 있고, 로마법의 여러 법관념은 보편성을 띠고 있다. 현대의 합의제 조직을 가리키는 용어인 컬리지엄(collegium)도 로마법에서 유래한 것인데, 로마법상 컬리지엄은 최소 3인 이상으로 구성된 사단체(社團體)를 말하는 것이다(‘Tres faciunt collegium’). 또 행정조직법적 구성원리상 합의제 행정조직은 본디 신중하고 전문적인 판단, 다양한 의견의 반영, 정책기관으로부터 독립된 직무 수행이 요구되는 행정영역에서 채택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국민권익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의 기구가 모두 그렇다. 넓게 보면 법원 등 각종 심판기관에서 합의제를 채택하는 것도 이런 이치에서일 것이다. 그러니 5인의 상임위원으로 구성해야 할 방통위가 2인의 위원만을 구성원으로 하여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것은 이런 구성 및 운영 원리에 반한다. 종전에 방문진 이사의 해임 및 보궐이사 선임 처분에 관한 사건에서 고등법원은 그 처분이 ‘방통위법과 방송문화진흥회법이 이루고자 하는 입법 목적을 저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로 볼 수 있다’고 판단하고 대법원은 이를 긍인한 바 있는데, 이 사건에서 법원은 결정 이유 중 위의 판단을 원용했다. 법원의 이번 판단은 법률 조항의 문언에 충실한 해석론보다는 입법 목적과 법의 기본 원리를 중시하는 해석론을 취한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법률 문언과 법체계의 정합성이 상충하는 경우 법원이 택해야 할 길은 무엇인가. 법률 해석이 걸린 쟁송에서 이런 문제는 수시로 일어난다. 법철학에서는 이를 재판에서 법적 안정성과 구체적 타당성 중 어느 것을 우선시키는가 하는 문제로 설명한다. 단순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말하자면, 이는 법실증주의와 법현실주의의 대립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법률 해석의 갈림길에서 판사가 늘 자기의 사법철학만으로 결론을 내리는 것은 아니다. 우선은 법리의 타당성을 저울질한다. 그래도 답이 나오지 않을 때 결국 사법철학이 정하는 쪽으로 가는 것이다. 이 사건에서 만약 판사로 하여금 어떤 해석론을 선택하게 한 동인이 있었다면, 그것은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 아니었을까. 민주주의는 정치적 이념이지만 동시에 헌법 이념이다. 그것이 법전에 갇혀 있지 않고 이 사건 결정 이유의 컨텍스트에 나타난 고약한 현실을 교정한 것은 매우 다행한 일이다.

경향신문

정인진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정인진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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