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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4 (월)

버스 50원, 택시 100원… 이래도 우리마을 떠날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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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 위기' 지자체, 인구 유출 막으려 교통 복지에 예산 집중]

귀농 지원·출산장려금도 소용없어

부안군, 30년 전 수준 요금 인하

주민 "병원 갈때 차비 걱정 컸는데"

정부는 '100원 택시' 확대 예정

전북 부안군 변산면 모항마을 주민들은 시내버스로 읍내를 왕복할 때 9800원을 요금으로 냈다. 38㎞ 떨어진 읍내까지 편도 요금은 4900원이었다. 7㎞까지 기본요금 1400원을 내고 1㎞마다 116원씩 추가 요금이 붙었다. 마을 주민 187명 중 60명이 시내버스를 이용한다. 마을에서 부안읍으로 가는 첫 버스는 오전 7시 30분. 배차 간격은 1시간 55분~2시간 15분이나 된다. 주민들은 버스를 놓치면 다음 날로 일정을 미루는 게 다반사였다.

이 마을 주민들을 위해 올해부터 '50원 버스'가 달린다. 부안군은 최근 농어촌 버스 요금체계를 구간 요금제에서 단일 요금제로 바꾸고 성인 1000원(기존 1400원), 초·중·고등학생 100원(700~ 1100원)으로 정했다. 교통카드를 사용하면 50원씩 추가 할인된다. 학생들은 50원만 내면 버스를 탈 수 있다. 버스요금 50원은 30여년 전 수준으로, 사실상 공짜에 가까운 파격적인 혜택이다. 요금 인하에 따른 버스 회사의 손실금 10억7600만원은 군이 전액 보전해준다.

조선일보

부안군 모항마을에 사는 학생들이 시내버스에 타고 있다. 부안군은 지난 1일부터 버스 요금을 인하했다. 학생들은 교통카드를 사용할 경우 50원을 내면 된다. /부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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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희 모항마을 이장은 "어르신들은 읍내 병원에 갈 때 진료비보다 차비가 더 들어 아파도 참는 경우가 많았다"며 요금 인하를 반겼다. 또 "이제 주민들이 교통비 걱정을 덜고 영화를 보거나 목욕탕에 가는 등 문화 생활을 더 많이 누리게 될 것"이라며 "접근성과 편의성이 더 높아져 농촌 마을에도 희망이 생겼다"고 말했다.

부안군이 버스요금을 파격적으로 내린 배경엔 '지방 소멸'의 위기감이 있다. 부안군 인구는 2007년 6만1879명에서 지난해 5만6086명으로 줄었다. 10년 사이 주민 9.3%(5793명)가 빠져나갔다. 군은 이 기간 귀농·귀촌 지원금과 출산 장려금을 신설했으나 인구 유출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부안군 관계자는 "대중교통은 앞으로 농촌 지역 지자체가 책임져야 할 주민 복지"라며 "요금을 내렸다고 당장 인구가 늘지는 않겠지만, 앞서 시행하고 있던 여러 정책과 시너지를 내면 인구 감소 폭은 최소화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고창군은 다음 달부터 단일 요금제를 도입해 시내버스 요금을 내린다. 요금은 성인 1000원(기존 1400원), 학생 500원(700~1100원)이다. 순창군도 이르면 다음 달 중순부터 단일 요금제를 도입키로 했다.

지난해 한국고용정보원은 전북 지역에서 전주·익산·군산·완주를 제외한 10개 시·군이 30년 안에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소멸 위기 10개 시·군의 재정 자립도는 10% 이하다.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의 재정 자립도 평균인47.2%에 크게 못 미친다. 그런데도 지방 소멸 위기감이 크다 보니 교통 복지 등에 꾸준히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진안군의 '100원 행복콜 택시'가 대표적이다. 전통시장을 중심으로 진안읍내를 도는 이 택시는 군민이면 누구나 거리에 관계없이 100원을 내고 이용할 수 있다. 택시 5대가 진안읍 5개 구역을 하루 16번 순환한다. 관공서와 병·의원, 약국, 복지시설 등 택시가 서는 곳을 구역별로 안배해 진안읍 전역을 오갈 수 있게 했다. 이 같은 행복콜 택시는 2015년부터 전북 10개 시·군에서 운영되고 있다. 버스가 다니지 않는 263개 마을에 택시 179대가 들어간다. 각 마을에 배정된 택시는 주민을 읍내까지 실어나른다. 주민들은 원하는 시간에 택시를 부르고 500~1000원의 저렴한 비용에 이용한다. 택시 회사의 손실금은 지자체가 부담한다.

앞서 전남도는 광역지자체로는 처음 2014년 '100원 택시'를 도입했다. 4년간 216만명이 이용했다. 정부는 오는 3월 이 100원 택시 제도를 전국 군 단위 82곳, 시 단위 78곳에서도 적용할 예정이다. 최원규 전북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소멸 위기에 처한 지방의 대중교통은 지역을 살리기 위한 복지 정책의 하나로 실시할 만하다"며 "50원 버스나 100원 택시가 인구 유출 속도를 더디게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안=김정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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