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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5 (화)

첫 시집 '유다 복음' 펴낸 김은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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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009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한 김은상 시인이 첫 시집 '유다복음'을 냈다. 예수를 배반한 유다에 ‘복음’을 붙인 도발적인 제목이다.

시집에 실린 44편의 시에는 ‘반장의 집에 신문을 배달해야 하는 학생’ ‘실직 가족’ ‘정규직을 섬기는 자’ ‘근친상간을 연상케 하는 여학생’ 같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한결같이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다. 순탄치 않았던 그의 삶에서 길어올린 시들이기 때문이리라.

김은상은 서울 온수동 산 11번지 달동네, 천막·슬레이트로 덮인 집에서 자랐다. 형과 누나는 학교 대신 온수공단에 일을 나갔고 자신은 고철을 줍거나 전선을 훔쳐 고물상에 팔았다. 어린날 가난과 씨름했던 김은상의 시에는 자신처럼 가지지 못한 이들에 대한 연민이 담겨있다.

김은상은 ‘시인의 말’에서 “달방에 머물렀던 한 소년이 있었다. 밤마다 늙은 매춘부들이 홍등 아래서 화대를 흥정하던 곳. 소년은 그 기이한 풍경 아래서 시를 썼고 그녀들은 몸을 팔았다”며 유년기를 밝히고 있다.

이 시집에서 시인은 세 개의 신과 조우하고 또한 시적으로 투쟁하며 반목하고 있다. 첫 번째 신은 가난, 두번째 신은 자본주의이며, 마지막 신은 예수로 볼 수 있다. 그는 신학대학을 2년 다니다 중퇴했다.

“예수가 플래카드를 들고 광화문 광장에 서있다.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며 햇볕에 머리띠를 적시고 있다. 취업정보 사이트를 검색하면 아르바이트와 계약직과 같은 자본주의의 꽃 한 송이 피었다 지는데. 인생이 비정규직인 것을 보지 않기 위하여 예수가 이순신 장군 칼에 기대 울고 있다.”(‘서울 예수’ 중)

김은상은 시집에서 자본주의가 종교화되고 절대적인 이념으로 받아들여진 현실을 비판한다. 하지만 그가 결국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이념으로서의 공산주의가 아니라 삶의 태도로서의 공산주의”이다. 반 자본주의 투쟁보다는 ‘인간애’를 통해 배금주의를 극복하는 ‘사랑의 공산주의’를 주장한다.

“나의 공산당은 보이지 않는 손을 잘라내고 자신의 손을 만져보는 사소함을 꿈꿉니다.
따뜻한 온기, 손금의 방향, 수전증 여부와 같은. 신을 살해한 자라투스트라의 외침 같은.
그렇습니다! 나의 진실한 공산당은 다수가 아닌 개인을 꿈꾸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죽음을 통해
수천, 수만, 수억의 공산당을 꿈꾸는 것입니다.”(‘공산당 선언’ 중)

시집 제목이기도 한 43페이지 분량의 서사시 ‘유다 복음’은 “인간의 관점에서 쓴 성경”이다. 해설을 쓴 김산 시인은 “신학대학을 다니면서 느꼈던 고뇌와 절망, 그리고 선과 악에 대한 그의 절박한 심경이 절절하게 그려져 있다”고 말했다. 단순한 반기독교적 관점이 아니라 현실과의 실제적 고투 속에서 만들어졌다. 이것이 시인 김은상에게는 지상에 남은 마지막 '야훼의 자세', 바로 최후의 양심수인 시인의 자세다.

김은상 시인은 “시집을 통해 종교화 된 승자독식의 자본주의를 깨트리고 이념으로서의 공산주의가 아니라 삶의 태도로서의 공산주의를 독자들과 논의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한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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