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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3 (일)

33차까지 온 이재용 공판…똑 떨어지는 증거·증언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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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환점 돈 삼성 재판 / 이재용 구속 4개월…평행선 달리는 3대 쟁점 ◆

매일경제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5월 17일 14차 공판) "특검이 제시하는 '말씀자료'는 사실상 참고자료 형태며 대통령이 면담 자리에 참고자료를 갖고 들어가는 경우는 없다"

박원오 전 승마협회 전무(5월 31일 21차 공판) "2015년 1월까지는 최순실은 정윤회의 전처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정은보 금융위원회 부위원장(6월 16일 29차 공판) "금융지주사 전환과 관련해 수차례 보고했지만 청와대가 관심없어서 사실 서운했다"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6월 21일 31차 공판) "국민연금 포트폴리오 지분가치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발표 전에 비해 2000억~3000억원 증가한 상태다"

28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된 지 꼭 131일이 됐다. 그 기간 반도체 산업 글로벌 1위, 가전산업 글로벌 1위인 삼성의 오너 경영활동은 모두 중단됐다. 다른 경쟁기업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대규모 투자와 인수·합병(M&A)으로 삼성을 압박하고 있다. 지난해에만 7건에 달하는 공격적인 M&A를 펼쳤던 삼성이 올해는 단 한 건도 성사시키질 못하는 실정이다. 이대로라면 삼성도 불과 3년 뒤, 5년 뒤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우려마저 심심치 않게 나온다. 이 부회장이 구속된 올해 2월 17일 이후 법정에서 어떤 공방이 펼쳐졌는지, 이 부회장의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뚜렷한 증거나 증언이 나왔는지 되짚어본다. 4월 7일 시작해 27일 제33차까지 진행된 이 부회장 공판에서 제기된 쟁점은 크게 3가지로 요약된다. 쟁점은 △이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부정한 청탁을 했는지 △삼성이 최순실의 영향력을 미리 알고 정유라를 지원했는지 △청와대가 부당한 방법으로 삼성의 편의를 봐줬는지 등이다.

먼저 '삼성이 현안 해결을 위해 대통령에게 부정한 청탁을 했다'는 특검 주장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58·구속기소)의 수첩과 2015년 7월 25일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과 독대할 당시의 '말씀자료'에 근거하고 있다. 수첩에 나오는 '미르재단' 등의 용어와 말씀자료에 적힌 '임기 내 승계 해결' 등의 문구는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 사이에 부정한 약속이 오고갔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라는 것이 특검 측의 일관된 주장이다.

이에 대해 삼성 측은 수첩과 말씀자료의 기재 경위와 목적이 불분명하다고 반박하고 있다. 수첩이 실제 독대 과정에서 나온 워딩을 그대로 받아적은 것인지 확실치 않을뿐더러, 말씀자료는 사전에 대통령을 위해 참고자료로 만든 것일 뿐 실제 독대에서 그대로 얘기를 했을 가능성은 반반이라는 주장이다. 이 부회장은 특검 조사 당시부터 "당시 청탁을 한 사실이 없다"고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고, 박 전 대통령도 검찰 조사에서 청탁이나 대가합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첩과 말씀자료의 신빙성을 판단해 줄 다른 증인이 아직까지도 없다는 점이 문제다. 정호성 전 비서관은 지난달 17일 열린 14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특검이 제시하는 '말씀자료'는 사실상 참고자료 형태며, 대통령이 면담 자리에 참고자료를 갖고 들어가는 경우는 없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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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롯데 신동빈 회장과 독대 당시 대통령 '말씀자료'를 작성했던 최훈 전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실 행정관은 "우리는 보고를 할 뿐, 실제로 자료가 어떻게 활용되는지는 알지 못한다"고 증언해 말씀자료에 기재된 내용이 실제 독대 장소에서 언급되지 않았을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수첩을 기재한 안 전 수석 본인 역시 "(대통령에게 어떤 지시를 받았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는 취지의 진술을 하고 있다.

다만 지난 22일 박근혜 전 대통령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대통령과 독대 자리에서) 완곡하게 동생 최재원 부회장의 사면을 부탁했다"고 진술한 사실은 이 부회장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은 나온다. 아직 이 부회장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하지 않은 안 전 수석이 어떤 증언을 하느냐도 앞으로 중요한 변수다.

두 번째 쟁점은 삼성이 최순실의 존재를 미리 알고 있었는지다. 특검은 이 부회장이 최씨와 박 전 대통령의 관계를 미리 알고 최씨에게 뇌물을 제공함으로써 대통령을 통해 경영권 승계와 관련한 여러 가지 복잡한 현안을 해결하려고 했다고 주장한다.

특검은 2015년 1월 '권력서열 1위는 최순실'이라고 주장한 박관천 씨의 발언을 보도한 언론기사와 이때 이후 승마계에 퍼졌다는 '최순실이 실세'라는 소문을 예로 들어 "삼성이 최순실의 존재를 사전에 알고 있었다"고 말한다. 정보력이 뛰어난 삼성이 최씨의 실체를 몰랐다는 것은 '상식에 반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 부회장은 "박 대통령과의 독대 자리에서 미흡한 승마지원 때문에 질책을 당한 이후에야 최지성 부회장으로부터 최씨와 정유라의 존재를 전해 들었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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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의 실체를 몰랐다고 주장하는건 삼성만이 아니다. 승마계에서 잔뼈가 굵은 김종찬 전 승마협회 전무, 이재훈 승마협회 과장, 정유라의 전남편인 신주평,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설립에 관여했던 이규혁과 김동성, 노태강 전 문화체육관광부 체육국장과 진재수 전 과장 등도 한결같이 '최순실의 실체를 최근에서야 알았다'고 진술했다.

박재홍 전 마사회 승마팀 감독은 "최순실이 실세라는 소문이 승마계에 돌기도 했지만, 믿지 않았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또 정유라의 출산과정까지 개인적으로 돌봐준 박원오 전 승마협회 전무조차도 5월 31일 법정에서 "2015년 1월까지는 최순실은 정윤회의 전처일 뿐이라고 생각했다"고 증언했다.

마지막 쟁점은 삼성에 대한 특혜 제공 여부다. 특검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같은 해 순환출자구조 해소를 위한 삼성SDI의 주식처분 물량 확정, 2016년 삼성생명의 중간금융지주회사 전환 등 삼성과 관련한 주요 이슈에 청와대가 건건이 개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부회장의 청탁을 받은 박 전 대통령이 '삼성의 현안 해결을 위해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위원회 등 정부 기관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특검의 주장은 증인들의 연이은 반대 증언에 힘을 잃고 있다. 공판에 출석한 공정거래위원회, 금융위원회, 청와대 소속의 증인 대부분은 "삼성의 부정한 청탁이나, 삼성에 유리하게 업무를 처리하라는 청와대의 압박은 없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지난 16일 법정에서 증언한 정은보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오히려 삼성이라는 대기업의 일(금융지주회사 전환)에 청와대가 너무 관심을 보이지 않아 섭섭함을 느꼈을 지경"이라고 말했다.

[김동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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