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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7 (목)

권도균 대표 “정도를 걷는 회사가 결국 시장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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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지않은 국내 스타트업 역사에서 ‘프라이머’라는 이름은 의미가 있다. 프라이머는 인터넷 벤처 1세대가 주축이 돼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 환경을 조성하고 후배 창업가들에게 경험을 전달하기 위해 2010년에 설립된 국내 최초 스타트업 인큐베이터이기 때문이다.

처음이라고 해서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지난 7년 동안 프라이머는 초기 스타트업을 발굴해 서비스, 마케팅, 경영 등 회사 운영 전반에 대해 파트너가 함께 고민하고 창업가들의 성장을 돕고 있다. 실리콘밸리 인큐베이터가 창업자에게 맡기는 형태인 반면 프라이머는 비즈니스 모델을 같이 만드는 공동창업자의 역할을 하는 창업기획사인 것이다. 창업자와 함께 회사를 만드는 컴퍼니빌더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더불어 엔턴십이라는 멘토링 코스웨어 프로그램을 통해 창업자들의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고 있다. 이를통해 번개장터, 위트스튜디오, 데일리호텔, 텔레톡비, 온오프믹스, 스타일쉐어, 마이리얼트립 등 스타트업이 성장해왔다.

22일 제주 테크노파크에서 개막한 ‘2017 스타트업 생태계 컨퍼런스’의 키노트 연사로 나선 권도균 프라이머 대표는 스타트업 인큐베이터나 투자자 입장이 아닌 본인의 창업 경험에서 얻은 교훈과 규제에 대한 화두를 던졌다.

권대표는 90년대 말에 이니시스와 이니텍 등 기업을 설립해 코스닥에 상장시켰으며, 카드밴(VAN) 전문 업체 KMPS를 730억 원의 기업 가치로 미국 기업에 매각하는 등 총 4000억 원이 넘는 기업 가치를 만들어 본 인물이다. 그는 2008년 경영하던 모든 회사를 매각하고 2010년 1월 프라이머를 설립해 이후 후배 기업가를 육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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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도균 프라이머 대표 / 사진 = 플래텀DB

“원활하게 기능하는 시장은 원활하게 돌아가는 바퀴와 같다. 바퀴를 잘 돌아가게 하려면, 튼튼한 축과 기름을 잘 먹인 베어링이 있어야 한다. 결국 ‘튼튼한 축과 기름을 잘 먹인 베어링을 어떻게 제공할 것인가’하는 문제가 곧 시장 설계가 다루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 앨빈 로스(Alvin Roth)

위 말은 2012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앨빈 로스 스탠퍼드 대학교 교수의 저서 《매칭》(원제: Who Gets What-and Why)에 나오는 문구다. 게임 이론 및 시장 설계 분야 권위자인 앨빈 로스는 좋은 매칭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과거에는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오로지 `가격`으로만 연결되는 상품 시장이 강조됐지만, 앞으로는 니즈(needs)와 니즈, 원츠(wants)와 원츠를 연결하는 매칭 시장이 경제 핵심으로 떠오를 것이라는 것이다.

권도균 대표는 앨빈 로스의 말을 서두에 언급하며 90년 대 이니시스의 도전을 통해 체득한 교훈을 이야기 했다.

시총 2조 기업 이니시스, 엔젤투자자가 없었으면 존재할 수 없었다.

1997년 권도균 대표가 이니텍을 창업한지 얼마 안됐을 때 엔젤투자 제안이 들어왔다. 그 투자자는 전자지불에 관심이 있다고 했고, 이니텍에 있는 전자지불 부문를 따로 떼서 회사를 만들면 투자를 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래서 권도균 대표는 별도의 회사 하나를 설립했다. 그게 이니시스다. 당시 그 엔젤투자자가 이니시스에 투자한 금액은 20억 원. 97~98년 당시 기준으로 보면 꽤 큰 금액이었고, 그 투자자는 대가로 이니시스의 지분 40%를 가져간다.

권대표는 “창업초기 전자지불로는 사업을 하기 어렵다고 봤다. 그래서 암호인증기술을 가지고 솔루션 사업을 하기위해 97년에 설립한 회사가 이니텍이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기술을 잘 모르던 그 투자자가 전자지불의 미래를 제대로 보고 있었다. 나보다 더 혜안이 있었던 거다. 그것이 이니시스가 탄생한 계기다.”

이후 그 투자자의 요구에 따라 이니시스는 장외거래가 허용된다. 금새 이니시스는 장외시장의 황제주가 되었고, 2000년 전후 신문 지면 사채란에 언급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99년에서 2000년 사이 이니시스는 시가총액이 2조를 넘기도 했다. 요즘말로 치면 유니콘기업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주가가 본질가치로 회귀하면서 회사와 개인에게 괴로운 시절이 도래한다.

“우리 주식을 산 사람들로부터 부정적인 편지가 엄청 왔었다. 내용은 두 가지였다. 날 죽인다는 내용 혹은 본인이 죽는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아파트 지하에 주차하고 엘리베이터를 탈 때조차 조심스러웠다. 누가 날 해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그렇게 몇 년을 보냈다. 다행스럽게도 코스닥에 등록되었고, 수년간 주가가 하향평준되어 안정화되면서 해결되었다. 이니시스는 어려울 때도 편법으로 운영되지 않았다. 전자결제의 본질에 집중했기에 20년 동안 시장에서 메이저 회사로 남아있다.”

이니시스의 성장에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은 권도균 대표였겠지만, 초기 통큰 투자를 결정하고 사업 방향을 제안한 엔젤투자자의 역할이 컸다.

권대표는 “그 투자자의 제안과 투자가 없었으면 이니시스는 없었을지도 모르는 회사다. 사업 씨앗을 뿌리는 것이 오롯이 창업자만의 역할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된 경험이기도 했다. 씨앗을 뿌리고 창업자들의 등을 떠밀고 자금도 대면서 기회를 만드는 역할도 필요하다고 봤다. 프라이머를 설립한 몇 가지 이유중에 하나다. 현재 프라이머를 운영하며 땅 속에서 씨가 발아될까 말까한 초기 기업들을 지켜보고 있다. 그 과정에서 아쉬운 것은 엔젤투자와 브릿지 투자가 여전히 비어있다는 거다. 국내에 여러 액셀러레이터가 생기고 각자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시드투자와 시리즈A사이 영역의 브릿지 투자가 활성화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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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스타트업 생태계 컨퍼런스 현장 / 사진=플래텀DB

산업 활성화를 막는 산업 활성화

1998년 권도균 대표는 전자서명법 입법위원으로 1년 간 활동한다. 법조문을 다 만들고 기다리는데, 입법 직전에 본인이 모르던 것 두 개가 들어간 것을 보게된다. 해당 분야 진흥원 설립과 공인인증 내용이었다.

“입법할 때까지는 없는 내용이 국회로 넘어가기 직전에 들어갔다. 당시 전자서명법에 대해 보안업계가 기대하는 것이 컸다. 그런데 진흥원이 만들어지면서 보안업계는 그 진흥원과 경쟁을 하는 구도가 되었고, 업계는 끈 떨어진 연처럼 어려워졌다. 보안업계 대표들이 모이면 농담삼아 하던 말이 ‘보안업계의 모든 매출을 합친것보다 정보통신부의 보안업계 활성화 예산이 더 크다’라는 것이었다. 실제로도 그랬다.

어떻게 보면 사업가가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경쟁자는 ‘산업 활성화’라는 명분으로 등장하는 정부 기관이다. 이니시스도 그랬다. 다행스러웠던 것은 정통부가 전자지불에 대한 대응이 늦었다. 이미 전자지불이 시장에서 활성화된 상황이었고, 이니시스는 그 분야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래서 전자지불은 활성화 정책이나 진흥원이 안 만들어졌고, 시장 원리대로 흘러갔다.”

초기 이니시스의 서비스는 여신법(여신전문금융업법)상 불법이었다. 당시 작은 회사이고 비대면 거래였던 쇼핑몰에 카드사들이 가맹점을 안 열어줬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이니시스는 할 수 없이 VAN에 PG를 끼워 맞췄다. ‘대표가맹점’ 서비스가 그것이다.

권대표는 “이 서비스를 하면서 카드 매출이 많았기에 국세청 조사도 받았고, 경찰도 찾아왔다. 그 과정에서 공무원들에게 PG와 VAN을 이해시키려 노력했다. 그런 노력의 결실로 2003년 여신전문금융업법이 수정되며 ‘전자금융보조사업자로 PG를 지위를 주면서(전자금융법 2조 5항) 대표가맹점 서비스가 합법화 되었다.”고 회고했다.

대한민국 전자상거래 활성화 촉매제는 카드깡?

국내 전자상거래가 활성화 된 것은 편리하고 가격이 저렴하다는 것이 큰 이유겠지만, 촉매제는 나쁘게 말하면 ‘탈세’, 좋게 말하면 ‘절세’였다. 전자상거래 초기 제품이 가격이 싼 이유는 세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예를들어 쇼핑몰이 이니시스를 통해 전자상거래를 할 때 매출은 이니시스에만 잡히고 쇼핑몰에는 잡히지 않았다. 쇼핑몰은 세금을 안 내는 만큼 가격을 싸게해서 오프라인과 경쟁한거다. 현재 중고거래, 직거래 시장에 암암리에 판매자가 활동하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권대표는 대한민국 전자상거래 초기 열성고객은 ‘카드깡(카드대환대출)’이었다 말한다.

“카드깡들이 전자결제 통해 영업을 했다. 그래서 그것을 막기위해 카드사 등에서 리스크 관리 담당자를 두고 그런 시도를 차단했다. 그런데 카드깡 업자들이 관리 담당자에게 뇌물을 주며 한도를 높이는 시도가 이어졌다. 카드사 담당자, 지불 담당자에게 뇌물이 빈번했던 거다. 그러다 2003년도에 검찰이 대규모 조사를 하며 상당수 기업 담당자가 구속되는 등 여파가 있었다. 우리도 압수수색을 받았고. 다행스러운 것은 그것을 기점으로 전자상거래가 정상화되었다는 것이다. 한때 국내에 PG만 수백 개가 있었다. 상장한 이니시스보다 더 많은 매출을 내는 작은 회사도 있었다. 편법을 일삼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번에 정리가 되고 현재는 5개 전후만 남았다. 한 눈팔지 않은 회사만 남게된 거다.”

제도는 과거에 머물러있지만, 미래의 문은 기업가정신이 연다.

규제는 과거의 문제를 해결하고 보완하면서 생긴 흔적이다. 하지만 사업은 미래를 지향하는 것이다. 이 사이에서 상충된 상황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

권대표는 “내가 사업을 했던 과정을 돌이켜보면, 처음에 관과 경쟁했고, 시장에서 경쟁했고, 과거의 규제와도 싸운 과정이었다. 시장에서의 경쟁은 어차피 해야하는 것이지만, 관이 산업 부흥을 명분으로 시장에 개입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관은 시장의 방향에 맞게 현실적으로 법을 고쳐주는 역할을 하는게 필요하다고 본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음지에서 싹트고 양지를 지향한다.

또한 그는 “사업이 잘 될 것 같으면, 제일 먼저 음지가 반응한다. 조심해야하는 것은 그것에 편승해 단기적으로 돈을 버는 행위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창업자들에게 늘 하는 조언한다. 사업의 원칙대로 밸류를 창출하는 회사가 결국 성공하고, 정도를 걷는 회사가 결국 시장에 남는다. 스타트업 지원 기관은 이런 스타트업들을 도와야 한다.”고 제언했다.

글: 손 요한(russia@platu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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