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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2 (화)

[해보고 말해요 #1] 스타트업 직원의 리얼 재택근무기, ‘방심하면 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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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곳에서 일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매 출근길마다 생각했다. 지옥의 출퇴근 전쟁, 체력 방전으로 생기없이 보내게 되는 저녁 시간, 삶이 타인에게 저당 잡힌 것 같은 느낌, 그로 인해 떨어지는 동기 부여 등. 행복하지가 않았다. 본연의 업무를 잘 해내기 위해서 사무실에 앉아있을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마침 경영진과의 대화에서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라’는 권유이자 지시가 떨어졌고, 한 달의 고민 끝에 재택근무 이야기를 꺼냈다. 다음은 반 재택근무를 경험한 지난 한 달간의 느낀 점을 정리한 것이다. 미리 요약하자면, ‘방심하면 망한다’.

협상 : 한국에서 디지털 노마드로 사는 게 가능한 일일까?

스스로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외국계를 제외한 대부분의 대기업, 중견기업의 경우 협상 테이블에 앉는 단계서부터가 이미 하늘에 별 따기일 것이다. 연봉 협상도 어려운데, 근무 방식에 대한 협상이 쉬울 리 없다. 비교적 소통이 자유로운 스타트업의 경우에도, 이미 제도가 마련되어있지 않는 한 개인이 목소리를 내기는 어렵다.

나도 다르지 않았다. 근무 방식 변화에 대한 논의가 가시화된 것은 한 달 정도였지만, 사실 그 전에 1년 정도를 고민했다. 일은 좋은데 출퇴근이 괴로워 잠시 휴직이라도 하고 싶다는 넋두리에 지인은 ‘재택 근무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해볼 수 있는 분위기인 것 같은데 한 번 시도해보라’고 권유했다. 하지만 말이 쉽지, 아무리 합리적으로 보이는 제안이라도 그것이 나의 이익과 직결되어 있을 때는 뻔뻔하게 꺼내놓기가 어렵다.

입을 떼기 전까지, 그 길목에 넘지 못할 벽이라도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상대적으로 편하게 자기 의견을 내놓을 수 있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직원으로서 경영진에게 재택 근무를 건의할 때에는 세 가지 두려움이 있었다. 1) 거절당하는 것은 괜찮은데 불이익이 있진 않을까 (최악의 경우 퇴사) 2) 근무 형태 변화에 따른 책임을 내가 질 수 있을까 (결과물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 3) 타 직원들과의 갈등이 생기지 않을까 (형평성의 문제).

운 좋게도, 나의 직속 상사는 이미 몇 년 전부터 디지털 노마드로 살고 있는 사람이다. 공동창업자이자 사내 미디어 팀을 총괄하는 그는 주에 이틀 정도만을 출근한다. 팀원들과의 소통은 메신저를 통해서 실시간으로 하고, 주 1회 팀 미팅을 통해 그 주의 업무 계획을 세운다. 입사 초기부터 적응이 됐기 때문에, 소통에 불편함이나 부족함이 없었다. 또 비대면 상태에서 발생하는 몇 가지 문제들에 대해서는, 꽤 긴 시간 서로 합을 맞춰보며 나름의 해결책을 찾아낸 상태였다. 선례가 있다는 점이 힘이 되어 결국 ‘주 3회 출근’, ‘8 TO 5 ‘, ‘주 2회 재택근무’ 라는 변화를 얻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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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 : 눈에서 멀어질수록, 눈에 보이는 약속이 필요하다

상시 출근일 때는 ‘정시에 자리에 앉아있음’으로 일정 부분 근태 확인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재택 혹은 원격 근무를 할 경우, 경영진이 직원의 업무 성실도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은 딱 하나, ‘결과물’뿐이다.

이런 이유로 본격적인 주 2회 재택근무를 시작하기 전, 주간 업무 계획을 밝히는 달력을 따로 만들어 경영진과 공유했다. 평소에도 업무와 관련한 모든 일정은 전 직원이 캘린더를 통해 공유하고 있었으므로, 별다른 적응 기간이 필요 없었다. 매주 금요일 저녁이나 주말에 일정을 캘린더로 공유한 뒤, 별다른 지시 사항이 없을 경우엔 그대로 일을 진행한다. 업무 자유도가 높을수록 자발성이 높아졌다.

사실 사무실에서 근무하건, 원격 근무를 하건 이미 우리는 다양한 협업 도구를 통해 자신의 업무 진행 상황을 팀과 공유하고 있다. 그러니까 사무실이 아닌 곳에서 근무한다고 해서 별다른 행동 변화나 불편함이 수반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하지만 조직에 속해있는 상태로 원격 근무를 할 경우 일 단위, 적어도 주 단위로 잘게 쪼개서 일정을 공유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월 단위로 목표를 설정할 경우 사실 그 누구보다 본인 자신의 늘어짐을 막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위기 : 원격 근무를 하며 느낀 세 가지 멀미 증상

짧은 기간이지만 원격 근무를 하며 이 생활이 그다지 환상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방심하면 일도, 삶도 놓친다. 하지만 이 위기 3요소는 원격 근무가 제공하는 최고의 이점들을 쟁취하기 위해 극복해내야만 하는 것들이다. 익숙한 것을 떠나 새로운 것을 도전했을 때에 느껴지는 일종의 멀미 증상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1) 업무 처리 시간이 늘어진다 : 풍경을 바꾸기

주 2회 재택근무를 하고 나서 깨달은 출근의 장점이 있다. 사무실 안에서의 규칙적인 일과들이, 시간과 공간을 분절시키는 일종의 칸막이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정시에 맞춰 출근하고, 때 되면 함께 점심을 먹으러 가고, 잠시 수다를 떨고, 짧은 미팅을 갖는 습관적 사건들이 시공간을 전환해주면서 짧은 시간에 더 많은 집중을 할 수 있게 한다.

집에서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같은 자리에 앉아서 일을 하면, 이런 전환들이 없다. 집 안에서 10시간이 균일하게 흐른다. 밥 먹을 시간도 누가 정해주는 게 아니니, 자칫하면 그냥 넘겨버리거나 아니면 주야장천 계속 먹는다.

집중은 흐트러지고, 남들 점심 먹는 시간에 잠깐 긴장이라도 풀까 싶어 누우면… 그냥 끝이다. 공간이 분리되어 있지 않은 원룸 거주자에게 재택 근무는 굉장히 힘들 수 있다. 방심하다가 일이 주르륵 흐르는 날에는, 보통 출퇴근할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 동안 일해야 했다. (심지어 그렇게 어렵거나 복잡한 업무가 아니었을 땐, 스스로에게 화가 난다.)

1주 정도 이 증상을 앓고 나서 ‘출근할 때와 동일한 시간에 집 밖으로 나가기’, ‘도서관, 카페 등을 이동하며 일하기’ 등 몇 가지 원칙을 세웠고, 실패하는 날도 있었지만 적응기라고 생각하고 스스로 여유를 주었다.

지난 15일 비즈니스인사이더를 통해 자신의 원격 근무기를 적은 탄자 라우 덴 벡(Tanza Loudenback) 기자는 이처럼 공간과 공간을 이동하는 행위를 ‘풍경 바꾸기(Changing my scenery)’라고 이름 붙였다. 원격 근무 전용 채용 플랫폼인 플렉스잡의 브리 레이놀즈(Brie Reynolds) 역시 “원격 근무자는 외부 환경을 바꿈으로써 에너지를 얻고, 더 높은 집중력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나 역시 여전히 해결책을 찾는 중이다. 중요한 것은 ‘침대 밖으로 멀리 갈수록 생산성은 오른다’는 것이다.

2) 돈은 절약될 수도 있고, 낭비될 수도 있다 : 도서관, 무료 협업 공간 이용

나의 경우에는 후자였다. 회사에서 점심 식대(야근 시 저녁 식대도 포함)를 제공하기 때문에, 점심값에 해당되는 추가 비용이 더 나갔다. 만약 식대를 본인이 부담했던 사람이라면, 오히려 메뉴 선택도 자유로워지고 비용이 절감될 수도 있다.

하지만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점심 시간에 본격적인 요리를 하는 걸 추천하지 않는다. 출근 시 근처 식당에서 이미 차려져 있는 음식을 먹고 나오기만 하는 것과는 달리, 집에서 요리를 할 경우 재료 손질부터 조리, 설거지에 이르기까지 투입해야 하는 시간과 노동력이 너무 많다. 아마 지쳐서 점심 시간이 끝나면 한숨 자고 일어나야 기운을 차릴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건강과 비용 절감을 모두 잡고 싶다면, 주말에 요리해 7등분 해넣는 ‘밀프렙’이 효과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해본 적은 없다.) 비용 지출보다 건강이나 맛이 먼저라면 도시락 배달도 추천한다.

집 밖으로 나가 일할 장소로 카페를 선택할 경우에 들어가는 음료값도 만만치 않았다. 가끔 재택근무를 하는 지인 역시, 커피값 나가는 걸 계산해보면 적지 않다고 토로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동네 도서관을 자주 찾았다. 무료 협업 공간을 이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이 밖에도 교통비를 절약할 수 있는 대신 여름, 겨울의 냉·온방비는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원격 근무 지역을 어디로 선택하느냐에 따라 지출 수준은 많이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물가가 높은 서울의 경우 비용 절감이 쉽지 않을 것이다. 실제 국경을 넘는 디지털 노마드의 경우에는 물가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발리, 치앙마이 등을 거주지로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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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은 의외로 원격근무자에게 가장 위협적인 방해꾼이다.

3) 최적화된 업무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 해결책 개발 중

집은 애초에 일이 아닌 휴식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집에서 일하는 건 어쩔 수 없이 불편하다. 카페나 도서관도 마찬가지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디지털 노마드 -원하는 곳에서 일하며 살아갈 자유>의 도유진 저자가 워낙 정확하게 적어두었기 때문에 그대로 인용한다.

사무실이 제공하는 편의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많다. 사소하게는 안정적인 인터넷 접속과 전원 부터, 높낮이가 맞는 업무용 책걸상, 프린터와 스캔이 가능한 복합기까지. (…중략) 장기간 일할 때 사무실이 제공하는 이러한 편의는 업무 효율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지구 반대편에서도 일을 한다’는 디지털 노마드의 삶이 언뜻 장밋빛 이야기로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여기에는 고정된 사무실이 지금껏 제공해 왔던 수많은 편의를 밖에서 스스로 찾고 최적화하는 노력이 필수로 수반된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 없이는 이동의 자유를 찾아 사무실을 벗어났다가도 얼마 가지 못해 제자리로 돌아올 공산이 크다.

출근해서 사무실이 차려준 밥상에서 수저만 뜨면 됐는데, 이제는 그 밥상을 내가 하나부터 열까지 다 차리고, 먹고, 설거지까지 해야 한다. 문제가 되는 부분들은 아주 사소하다. 별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무실 안과 바깥에서 비슷한 수준의 업무 효율을 내기 위해서 무시하고 지나갈 수 없는 지점들이기도 하다.

– 장기간 앉아있을 수 있는 환경 : 컴퓨터 모니터의 적절한 위치 선정, 의자의 안락함, 책걸상의 적절한 높낮이
– 인프라 : 인터넷 속도, 프린터기 유무, 추가 모니터 유무(사무실에서는 노트북과 모니터를 연결해 듀얼 화면을 사용하지만 재택 시에는 추가 모니터를 들고 이동하기가 쉽지 않다)
– 집중 방해 요소 : 반려 동물 , 동거인, 아기, TV

내 경우엔 의외의 방해자 때문에, 자주 집중을 잃었다. 함께 살고 있는 반려동물이 그 범인이다. 타자기 소리만 들리면 무릎이나 키보드 위에 누워버리는 탓에, 이 더운 날에 끌어안고 일을 한 경우도 많다. 간접적인 체험이었지만, 아이를 기르는 부모의 경우에도 집중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재택 근무를 하면 육아와 일을 동시에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최소 하루 2,3시간 만이라도 아이와 떨어져 온전히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반려 동물과 달리, 아이를 홀로 집에 두고 까페로 나가버릴 수 있는게 아니기 때문에 고충은 더 클 것이다.

다음이 한달 간 느꼈던 원격 근무의 애로사항이다. ‘그렇게 힘들다면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면 되는 게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이는 일시적인 어려움이다. 오랜 기간을 디지털 노마드로 살아온 지인에게 이런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하니 ‘처음엔 다 그렇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일정한 규율 없이도 성실하게 일할 수 있는 사람일까?’라는 막연한 두려움은 사라졌다. 3개월, 6개월이 될수록 조금씩 나아질 것이고, 그 이후에는 이전보다 훨씬 창의적이고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믿음이 생겼다.

원격 근무는 출퇴근 동안의 불필요한 체력 소모를 없애준다. 또 다양한 경험을 통해, 사무실 바깥의 현장감 있는 아이디어를 얻고 싶은 콘텐츠 창작자라면 매우 추천하고 싶은 근무 형태다. 회사 입장에서의 이점도 정말 많다. 첫째로는 사무실 임대와 이에 수반되는 많은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또 직원들로 하여금 회사를 떠나지 않고 그 안에서 보다 장기적인 인생 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부추기는 좋은 복지 옵션이기도 하다. 그리고 앞으로는 더 많은 인재가 원격 근무를 기본 조건으로 내걸게 될 것이다. 인재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오는 시대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 나의 재택근무기도 계속 이어질 계획이다. 좀 더 많은 이들의 ‘행복하게 일할 자유’를 응원해본다.

글: 정새롬(sr.jung@platu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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