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16 (일)

예술위 직원 "블랙리스트 큰 고통…말도 안 되는 지시 내린 사람 만나고 싶었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조선일보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1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관련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도저히 말도 안 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 속에서 이 지시를 내린 사람을 직접 만나 왜 이것이 말이 안 되는지 조목조목 설명하고 싶었다.”

문회예술계 지원 배제 명단, 이른바 ‘블랙리스트’ 업무를 담당했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직원이 업무 당시의 괴로움을 법정에서 토로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부장 장모씨는 1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재판장 황병헌) 심리로 열린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장씨는 재판 말미 재판부의 허가를 받아 미리 준비해온 편지 형식의 글을 읽었다.

그는 “2015년 청와대에서, 문체부에서 내려왔던 지원배제 리스트는 온전한 이성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부조리한 명령으로 민심에 반하는 명령이었다”며 “당연히 그 명령은 실행하기가 너무너무 힘들었고 큰 고통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창작지원부장 자리는 예술인들을 가장 잘 도울 수 있는 자리로 저의 기쁨이자 자랑이었으나 배제 리스트가 시작된 이후 고통과 슬픔의 자리로 변했다”고 안타까워했다.

장씨는 김 전 실장을 지칭해 “오래 전부터 많이 뵙고 싶었다”며 “하지만 뵙고 싶었던 때는 오늘 이 자리가 아니라 2015년 배제리스트가 한창일 때였다”고 말하기도 했다.

남북분단과 6·25전쟁, 군사독재 시절 등을 언급하며 김 전 실장이 예술작품들을 좌파 성향으로 지목한 현실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그는 “김 전 실장도 한국 현대사의 아픔이 없었다면 박근형·이윤택·한강 (작품을) 즐길 수 있었을 것”이라며 “김 전 실장이 박근형의 ‘청춘예찬’, 이윤택의 ‘문제적 인간 연산’,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편견 없이 보실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엿다.

장씨는 블랙리스트 업무를 함께 한 예술위원회 직원들과 피해자인 예술인에게도 사과의 뜻을 전했다. 그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을 일을 하면서 (예술위 직원) 여러분이 겪어야 했던 모멸감을 잘 알고 있다”며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전한다”고 했다.

이어 “(예술위원회는) 산하기관으로 정부가 오른쪽으로 가라고 하면 오른쪽으로 가야한다”며 “명령이 부당한 경우 70보, 50보, 30보 정도로 줄여가는 정도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도 말했다.

그는 새 정부를 향해 “근 1년간 제가 받은 유일한 지시는 ‘어떻게 배제할 것인가’로 문화계 활성화 방안 지시는 없었다”며 “공정하지 못한 지시를 막아주고 대한민국을 살리는 지시를 내려달라”고 호소했다.

또 “예술인 여러분의 양에 차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기대에 부응하도록 노력하겠다는 말이 최선인 것 같다”고도 했다.

[오경묵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