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24 (월)

[이순간] 동물복지 농장주의 억울한 사연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친환경으로 키운 내 새끼들

AI 잘 이겨냈는데 묻으라니…

버틴 제가 죄를 지었습니까?


한겨레

참사랑 동물복지농장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정말 피눈물이 난다. 달걀 9만9천개를 땅에 묻으라니 가슴이 미어진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동물복지 참사랑농장 주인 유소윤씨의 목소리에는 안타까움과 분노가 뒤섞인 눈물이 묻어 있었다.

유씨는 오랜 군 생활을 마친 남편 임희춘씨, 친정 동생 유항우씨와 함께 지난 2015년 귀농을 결심하고, 전북 익산의 양계 축사를 인수해 동물복지축산농장으로 개축했다. 좁은 닭장에서 산란만 해야 하는 닭들과 달리 동물복지축사의 닭들은 더 넓은 공간을 누릴 수 있고, 부리도 잘리지 않는다. 바닥에서 모래목욕을 하다 횃대에 올라가 쉴 수도 있다. 게다가 유씨네는 조류인플루엔자를 예방하기 위해 지난해 가을부터 다른 양계농장 주인들과 만나지도 않았고, 외부인과 차량의 출입도 철저하게 통제해왔다. 지난 2월과 3월 이 농장 반경 3km 안에서 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했지만, 유씨네 농장은 무사했다.

그러나 익산시는 조류인플루엔자 반경 3km 안에 있는 모든 농장에 예방적 살처분을 명령했다. 참사랑농장은 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하지 않았고, 여느 농장들과는 다르게 친환경적으로 닭을 키웠기 때문에 살처분을 할 수 없다고 거부했다. 그 사이 조류인플루엔자 최대 잠복 기간인 3주가 지났고, 여러차례 재검사에서도 계속 음성 판정을 받았다. 그럼에도 익산시는 살처분 명령을 철회하는 대신 행정명령을 따르지 않았다며 참사랑농장을 고소했다.

지난 24일부터 익산시는 참사랑농장 계란의 제한적 출하를 허용하는 공문을 보냈지만, 달걀 가운데 상당수는 이미 유통기한이 지나 땅에 묻어야 했다. 나머지 15만개도 제값을 받기 힘든 상황이다. 익산시는 매몰된 달걀에 대한 보상은커녕, 살처분 명령을 취소하거나 고소를 취하하지도 않고 있다. 이정현 전북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예방적 살처분 구역 안에 위치한 농장에서 살처분을 안 한 사례는 처음이다. 시민들은 ‘생명달걀 캠페인’을 벌이며 농장주와 함께 비과학적인 예방적 살처분을 거부했다. 공장식 축산의 폐기, 지속가능한 복지축산의 필요성을 알렸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해마다 창궐하는 가축 전염병에 정부는 무조건적인 살처분으로 대응해왔다. 그러나 그 조처가 얼마나 무능한지, 우리는 해마다 거듭된 실패를 통해 확인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복지축산을 실험하며 상생의 대안을 찾아가는 농가들의 노력도 과거의 잣대에 짓밟히고 있다. 횃대에 날아올라 주인을 바라보는 저 닭, 땅에 묻히기엔 너무 건강하지 않은가. 익산/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주주신청]
[▶ 대선 팩트체크] [페이스북] [카카오톡] [정치BAR]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