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28 (금)

[뉴스AS] 정부가 자랑한 “세계 20위 국가경쟁력”의 진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기업 실적이 좋아 법인세를 많이 내면 국가경쟁력이 떨어진다.”



언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표현이지만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매해 실시하는 국가경쟁력 평가에서는 ‘참’인 문장이다. 최근 아이엠디가 발표한 ‘2024년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한국이 전체 67개국 중 20위로 역대 최고 순위를 기록하면서 해당 평가의 신뢰성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앞서 해당 기관의 국가경쟁력 평가 소식에 대한 보도자료를 내어 “1997년 평가대상에 포함된 이래 최고 순위를 기록”했으며 “국민소득 3만달러·인구 5천만 이상인 7개국 가운데는 미국에 이어 2위에 올랐다”고 자화자찬했다. 보수 언론을 중심으로 ‘역대 최고’ 기록 등을 앞세워 윤석열 정부의 경제 성과로 주요하게 보도했다. 국가경쟁력 세계 20위라는 지표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24일 아이엠디 국제경쟁력 평가를 보면, 이 평가는 △경제 성과 △정부 효율성 △기업 효율성 △인프라 등 4대 분야, 20개 부문을 조사한 뒤 336개 세부항목(통계자료 164개, 설문조사 92개, 보조지표 80개)을 합산하는 방식으로 지표를 구성한다.



이번 평가에서 한국의 순위를 끌어올린 분야는 ‘기업 효율성’과 ‘인프라’였다. ‘기업 효율성’ 순위는 기업의 생산성이 향상됐다는 평가를 받아 33위에서 23위로 10계단 뛰었다. ‘인프라’ 순위는 16위에서 11위로 5계단 상승했고, ‘경제 성과’와 ‘정부 효율성’은 각각 14위→16위, 38위→39위로 하락했다.



이 평가의 가장 큰 약점은 순위 산정에 활용되는 256개 항목 중 36%(92개)가 주관식 설문 조사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기재부도 올해 지표가 크게 오른 점을 두고 “기업인 대상 설문 지표 순위가 큰 폭으로 상승했다”고 말했다. 아이엠디 쪽은 최소 80개 기업의 답변을 받는다고 하지만, 설문조사에 응하는 기업 자체가 일관되지 않아 시계열 비교를 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개별 기업인들의 주관적 인상 평가에 순위가 크게 변동할 수 있는 구조기 때문이다.



통계자료 해석에도 의문이 나온다. 대표적인 사례가 정부 효율성 분야의 ‘조세 정책’ 항목이다. 경영하기 좋은 환경인지 여부를 최우선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법인세율이 낮은 경우뿐만 아니라 법인세수가 적을수록 긍정적인 지표로 판단한다. 이번 평가에서는 2022년 지표가 반영됐는데, 국내 기업들의 실적 호조로 2022년 법인세수가 1년 전보다 47%나 폭증한 게 부정적인 평가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한다. 실제 이번 평가에서 한국은 ‘정부 효율성’ 분야에서 1년 전보다 한 단계 내려앉았는데, 법인세 세수실적 증가 탓에 조세정책 항목이 하락(26위→34위)한 영향이 컸다고 한다. 낮은 법인세율이 국가경쟁력이라는 단순 논리도 문제지만, 기업 실적이 좋아 세금을 많이 냈는데 국가경쟁력이 오히려 떨어지는 아이러니까지 벌어지는 셈이다.



이런 탓에 아이엠디 평가 국내 협력사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도 순위 자체보다 개별 지표 관리에 참고하는 편이 좋다고 권고한다. 윤상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거시팀장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 순위를 매기는 거라, 지디피 대비 세수 비중이 커져도 순위에 부정적인 형태로 설계돼 있다”며 “명목 법인세율도 낮을수록 평가에 긍정적인데, 조세 정책은 각 나라마다 사회경제적 합의의 결과이기 때문에 꼭 낮은 세율만이 정답인 것도 아니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기재부는 지난 2016년 아이엠디 국가경쟁력 평가 결과를 발표할 때는 “평가방식에 있어 설문조사 비중이 높아 설문 당시 사회·경제 여건과 분위기에 조사 결과가 좌우되는 경향이 있다”며 지표를 보수적으로 해석해 달라고 주문한 바 있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권력에 타협하지 않는 언론, 한겨레 [후원하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오직 한겨레에서 볼 수 있는 보석같은 기사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