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28 (금)

여가부 폐지 ‘그날’은 왔는가 [뉴스룸에서]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여성·시민 단체 연대체인 ‘여성가족부 폐지 저지와 성평등 정책 강화를 위한 범시민사회 전국행동’(전국행동)이 지난 2월23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여성가족부 정상화를 주장하는 기자회견을 열였다. 전국행동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겨레

이정애 | 스페셜콘텐츠부장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에게 일하고 있는 부서를 소개할 때마다 살짝 수줍은 마음이 인다. ‘스페셜콘텐츠부’라니. 언론에 보도되는 기사들 모두 ‘스페셜’한 일을 다루는 게 아니던가. 대체 어떤 콘텐츠를 다루면 ‘스페셜’하다고 거창하게 이름까지 내건단 말인가. 과연 이름값에 걸맞은 값어치를 하고 있나 존재론적 고민 앞에 아찔해진다.



확실히 정치부나 사회부, 경제부처럼 이름만 봐도 뭘 하는 부서인지 딱 알 수 있는 이름은 아니다. 이참에 말씀드리면 스페셜콘텐츠부는 ‘젠더’와 ‘기후변화’ 이슈를 다루는 2개의 팀으로 구성된 부서다. 솔직히 내가 봐도 두 팀의 교집합을 찾기 쉽지 않은 조합이다. 사회부나 사회정책부, 경제부 등 어느 부서에 쪼개져 있어도 크게 이상할 게 없다고 해도 할 말 없다. 그런데도 두 팀을 스페셜콘텐츠부에 함께 모아둔 건, 한겨레가 젠더와 기후변화를 우리 사회 주요 어젠다로 규정하고, 전담 인력을 투입해 스페셜하게 다루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여성가족부. 이 이름도 어디 설명하기 난감한 조합이다. 여가부는 ‘여성정책의 기획·종합·여성의 권익증진 등 지휘향상, 청소년 및 가족(다문화가족과 건강가정사업을 위한 아동업무 포함)에 관한 사무를 관장’(정부조직법 제42조)하는 정부 부처다. 여성부도 아니고, 청소년 및 가족에 관한 사무까지 얹어 여성가족부라니. 젠더와 기후변화보단 여성과 가족, 청소년의 교집합이 더 크지 않으냐 반문할 수도 있지만, 아니, 가족을 여성 혼자 꾸리고 (청소년이 될) 아이는 여성 혼자 낳아 기른단 말인가. 어떤 측면에선 가부장적 성 역할 분담만 강화시키는 구시대적 조합처럼 여겨진다. 1940~50년대 사회부 부녀국이나 보건사회부 부녀아동국을 ‘부’로 격상시킨 것만 같은 이 부처 이름에서 대체 우리는 어떤 ‘의지’를 읽어야 하는 것인가.



윤석열 대통령이 저출생 해결을 전담하기 위해 ‘인구전략기획부’를 신설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자 한동안 잠잠했던 여가부 폐지론이 재점화하고 있다. 분명 시대가 바뀌면 그에 걸맞지 않은 부처는 얼마든지 폐지할 수 있다. 하지만 무조건 있던 걸 없앤다고 기대하는 변화가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시대 변화와 동떨어진 구린 표현을 써서 좀 그렇지만, ‘마누라와 자식 빼곤 다 바꾸라’던 어느 회장님 말마따나 뭘 바꾸려고 할 때도 놓치지 말아야 할 ‘핵심 가치’는 있는 법이다. 그러니 여가부 존폐 논쟁을 하기 위해선 여가부의 핵심 가치, ‘애초 여가부는 왜 만들었는지’부터 물어야 한다. 아울러 이제 그 존재 이유가 달성됐으니 폐지해도 되는지 사회적 동의도 구해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은 2001년 여가부의 전신인 여성부를 처음 출범시키며 “역설이지만 여성부는 ‘여성부가 없어지는 그날’을 위해 일하는 부서”(김대중 자서전 2권, 412쪽)라고 했다. 여성부를 “성평등이 실현되면 없어져야 할 시한부 부서”(이희호 자서전 ‘동행’, 329쪽)라고 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지금이 ‘여가부 폐지’를 논해야 할 만큼 성평등이 실현된 ‘그날’인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도 못 미치는 여성 국회의원 수나 여전한 성별 임금격차 같은 수치를 일일이 들 것도 없다. 당장 저출생 대책 부서 신설과 여가부 폐지를 연동하는 걸 봐라. 여성은 여전히 저출생 대책을 위한 ‘출산 도구’로 호명되고 있다. ‘구조적 성평등은 없다’는 말, 참 수긍하기 쉽지 않다.



이게 모두 여가부가 일을 못해서인가. 성평등 실현은 사회·문화적 구조에서 기인하기 때문에 단기간에, 그것도 어느 한 부처의 노력만으론 달성하기 어렵다는 걸 우리 모두 다 안다. 게다가 여가부는 출범 이후 20년 동안 줄곧 존폐 논란에 시달려왔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없어질 수 있는 부처’ 1순위로 꼽히는 미니 부처 여가부에 성평등 실현 컨트롤타워로서 힘이 얼마나 실렸겠는가.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가 최근 여가부 폐지 대신 “여가부의 인적·기술적·재정적 자원을 실질적으로 늘리고, 모든 정부 부처에서 성 주류화 노력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도록 여가부 직원들의 역량을 강화하라”고 권고한 것도 이 점을 짚은 것이리라. 결국 인력과 예산이 몰리는 곳에 힘이 실리는 법이다. 여가부가 일단 ‘일 잘하는 부서’가 될 수 있도록 토대부터 마련해주자. 여가부 폐지 여부는 그 뒤에 결과를 보고 얘기해도 늦지 않다.



hongbyul@hani.co.kr



▶▶권력에 타협하지 않는 언론, 한겨레 [후원하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오직 한겨레에서 볼 수 있는 보석같은 기사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