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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월드 톡톡] 정신질환자들과 37년째 섞여 사는 日本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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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홋카이도 우라카와 마을, 공동작업장 열고 妄想 대회도

일터 구호는 '약함을 인연 삼아'

인구 1만4000명 작은 포구(浦口)에 외지인 수백 명이 몰려들었다. 이곳은 일본 홋카이도(北海道) 우라카와(浦河) 마을. 조현병(정신분열증) 같은 중증 정신질환 환자 130여명이 37년째 일반 주민 사이에 섞여 평범하게 살고 있다. 거리에 나가면 누가 환자인지 구분이 안 된다. 아침에 마당에 모르는 사람이 자고 있어도 주민들이 웃어넘긴다. 라멘집 옆 테이블에 앉은 할아버지가 30년째 환청을 듣는 사람일 수도 있다.

지난 15~16일 이곳에서 정신질환 공동체 '베델의 집' 축제가 열렸다. 한·일 교류 10주년 기념행사도 겸했다. 하이라이트는 '환청·망상 대회'였다. "마징가 제트를 본다"는 사람, "매일 밤 화장실 양변기를 통해 도쿄·오사카에 간다"는 사람…. 문화회관 700석 홀을 꽉 채운 청중이 박장대소하며 경청했다. 근처 카페에 역대 그랑프리 수상자들의 상장이 줄줄이 걸려 있었다. 환자와 환자 아닌 사람이 뒤섞여 일하는 카페였다.

조선일보

16일 홋카이도 우라카와 마을에서 열린 ‘베델의 집’ 축제의 하이라이트 ‘환청·망상 대회’(왼쪽 사진). 베델의 집을 시작한 무카이야치 이쿠요시(오른쪽 사진) 사회복지사는 “암환자들이 ‘암과 친구 하라’고 하듯, 정신질환자들도 병과 함께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수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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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델의 집은 1979년 시작됐다. 사회복지사 무카이야치 이쿠요시(向谷地生良·61)씨가 낡은 교회당에 알코올중독자 자녀들을 위한 토요학교를 열었는데, 인근 종합병원 정신과에 장기 입원했다가 퇴원한 환자들이 하나 둘 흘러들어 함께 살기 시작했다. 1988년 환자들끼리 쌈짓돈을 털어 다시마 포장팩 장사를 시작했다. 그들이 만든 작업장 캐치프레이즈들이 일본 사회를 찡하게 했다. '약함을 인연 삼아'라는 캐치프레이즈는 약한 사람끼리 기대고 살자는 뜻이다. '편견·차별 대환영'은 아무리 괴상한 사람도 내쫓지 않겠단 뜻이다.

외부인이 보기에 이 회사 회의는 '비효율의 극치'다. 노는 사람, 문제 제기 하는 사람, 다른 얘기 하는 사람이 뒤죽박죽이다. 눈이 반쯤 풀린 채 "환청씨가 오셨다"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회사가 안 망하고 흑자가 난다. 회의 결론이 옳으냐 그르냐는 이들에게 중요치 않다. '아, 그래' 하고 다들 납득하면 족하다. 현재 베델의 집은 다시마 판매, 카페 운영 등을 합쳐 연 7000만엔(약 7억5000만원) 매출을 올린다.

이들의 신조는 '문제 해결 하지 말자'다. 조현병 아들을 둔 부모가 이곳 정신과의사 가와무라 도시아키(川村敏明)씨에게 "우리 애가 언제쯤 정상적으로 살 수 있겠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가와무라씨는 "취직하고 결혼하는 게 행복이라면 수많은 정신과 환자는 아예 행복을 포기하는 게 나을지 모른다"고 대답했다. 나으면 좋지만 낫지 않는 환자도 많다. 무카이야치씨는 "암 환자들이 '암과 친구가 되라'고 하듯, 정신질환 환자들도 병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고 했다.

베델의 집 사람들은 "우리는 다시마도 팔고 병(病)도 판다"고 자랑했다. 자신들의 얘기를 솔직하게 털어놓는 각종 다큐와 책으로 유명해져서 국내외 강연 요청이 연간 50~60회 들어온다. 외진 어촌 우라카와까지 한 해 3000명이 찾아온다. 토박이 주민이 "처음엔 불안했는데, 살아보니 별 탈 없고, 되레 젊은이와 일자리가 늘어나 좋다"고 했다. '베델의 집'은 2차 대전 때 독일 베델 마을 사람들이 "장애인을 잡아가려면 우리도 잡아가라"고 나치에 맞선 데서 따왔다.





[우라카와(일본)=김수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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