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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5 (토)

로열패밀리 인도정치…`네루 왕조`는 아직도 진행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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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안하이웨이 2차 대장정 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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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루 생가 알라하바드시에 있는 네루 생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위한 국민회의 전체회의가 세 차례 열린 이곳은 자와할랄 네루-인디라 간디-라지브 간디에 이르는 네루 가문 3명의 총리를 배출한 인도 정치의 요람이다.


'이곳은 벽돌로 지어진 단순한 구조물이 아닙니다. 인도의 자유를 향한 투쟁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는 건물입니다. 여기에서 (독립을 향한) 위대한 결정이 이뤄졌고, 위대한 행사가 열렸습니다.' 알라하바드시에 있는 '아난드바완(인도의 초대 총리 네루가 살던 집)' 입구에는 이 같은 글귀가 새겨 있다. 인구 150만명의 도시에 위치한 이 건물이 20세기 이후 인도 정치를 이끌어온 '로열 패밀리' 네루-간디 가문의 요람이다.

건물을 들어가려니 입장권을 사란다. 외국인 입장료는 100루피(인도 국민은 10루피). 평일인데도 인도 각지에서 온 듯한 방문객이 200~300명은 되어 보였다. 대부분 나이 지긋한 노인들로 네루와 그의 딸인 인디라 간디 시대의 향수를 더듬는 것 같았다.

관람객에게 개방되는 곳은 건물의 2층. 오른쪽으로 도니 국민회의 간부들이 세 차례나 전국회의를 했다는 서재, 마하트마 간디가 자주 묵었다는 방, 인디라 간디의 침실 등이 자리 잡고 있다. 간디가 머물던 곳에는 소박한 침대가 놓여 있고, 어린 인디라 간디가 마하트마 간디에게 재롱을 부리면서 찍은 사진이 걸려 있어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네루의 부친인 모틸랄 네루의 유적도 곳곳에 남아 있다. 우리에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모틸랄 네루 역시 인도 국민회의당 대표를 지낸 독립운동 지도자로 네루-간디 가문의 1세대이자 산파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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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루 가문은 모틸랄 네루-자와할랄 네루(인도 초대 총리)-인디라 간디(네루의 딸이며 전 인도 총리)-라지브 간디(전 인도 총리)-라훌 간디(현 상원의원)까지 5대째 이어진다.

'네루 왕조'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5세대 주자는 인디라 간디 전 총리의 손자이자 현 집권당인 국민회의당 소냐 간디 당수의 아들인 라훌 간디 의원(41). 미국 하버드대를 나와 인터넷회사를 경영하다 2004년 정계에 입문한 라훌은 사무총장 자격으로 2009년 집권당의 총선 압승을 진두지휘하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인도인들은 몇 년 안에 그가 총리에 오를 것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인도 독립 이후 64년 중 무려 37년을 네루 가문이 3대에 걸쳐 집권했고, 지금도 라지브 간디의 미망인인 소냐 간디가 국민회의당 당수로서 총리 위에 군림하고 있는데, 국민은 왜 '네루 왕조'에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는 것일까.

우선 힌두교에 기반한 뿌리 깊은 신분제도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인도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카스트제도의 영향으로 인도에선 능력보다 출신 가문이 공천과 당락을 좌우한다. 외형적으로는 민주주의지만 내용 면에서는 봉건주의인 셈이다.

네루 가문뿐만 아니라 2009년 치러진 총선에서 당선된 30ㆍ40대 젊은 의원 대부분은 가문의 후광을 등에 업은 2세나 3세들이었다. 인물 검증이 생략된 민주주의는 부패로 얼룩질 수밖에 없다. 인도 국회의원 가운데 4분의 1이 범법자라는 통계도 있다. 급여 체계를 봐도 부패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총리, 주지사, 국회의원 등의 공식 월급은 4만루피(약 88만원) 이하이며, '비공식' 소득이 없다면 생활이 불가능한 수준이다.

올해 인도 전역을 가장 뜨겁게 달군 사건도 70대 사회운동가 하자레의 '반부패 단식투쟁'이었다. 지난 4월 노운동가가 목숨을 건 투쟁에 나서자 전국에서 10만여 명의 시민이 반부패 시위에 참여했다. 인도 정부는 부패방지법안 입법을 약속하고 나서야 하자레의 단식을 멈출 수 있었다.

과거 국력이 융성하던 시절에 대한 향수도 유권자들을 네루 가문에 투표하게 만든다. 자와할랄 네루는 미ㆍ소 냉전 시기 비동맹 노선을 이끌며 제3 세계의 리더 역할을 했다.

인디라 간디도 강력한 리더십으로 인도-파키스탄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고, 핵무기 개발에 성공해 인도의 국제적 위상을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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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난드바완에서 만난 한 노인은 "인디라가 말년에 독재정치로 원성을 샀지만 인도인들은 여전히 그를 좋아한다.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가장 역동적인 시절이었다"고 말했다.

네루 왕조의 드라마를 완성하는 것은 비극적 죽음이다. 인디라 간디는 시크교도 분리주의자에 대한 강경 진압 작전을 지시한 뒤 1984년 시크교도 경호원들에 의해 암살당했다. 그의 아들 라지브 간디 역시 스리랑카 내전에 간여했다가 1991년 타밀 반군에 의해 암살당했다. 연이은 비극은 네루 가문에 대한 인도인들의 애착을 한층 두텁게 했다. 라지브 간디가 암살당한 뒤 한사코 정치 참여를 마다했던 아내 소냐 간디는 국민회의당과 여론의 잇따른 러브콜에 1998년 정치를 시작한 뒤 지금까지 국민회의당을 이끌고 있다.

만모한 싱 총리가 시크교도인 사실에서 보듯이 '카스트 종교 출신 좌편향 성향' 등을 특징으로 하는 옛 정치 구조가 퇴조하는 셈이다. 그렇다고 해도 '정치 가문'의 존재는 인도 정치의 최대 특징임을 아직 부인하기는 어렵다.

[기획취재팀=김상민 부장대우 / 박만원 순회특파원 / 사진 = 이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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