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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5 (일)

‘야구 전설’ 장훈의 국적 반납, 그는 한국에 왜 실망했을까 [필동정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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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한국 실업선발과 일본 프로야구팀 초청경기에서 장훈(오른쪽)과 백인천 선수가 서울운동장 야구장 베이스 근처에 서있다. 1차전에서 한국 선발팀은 시종 선전하다가 일본 팀에 2대1로 역전패했다. 장훈 선수는 히로시마 폭격 때 오른손에 원자폭탄 피폭을 당하고도 이를 이겨내고 통산 2752경기에 출장했다. 그는 ‘국적은 종이 하나로 바꿀 수 있지만 민족의 피는 바꿀 수 없다’며 은퇴 후에도 국적을 바꾸지 않다가 최근 일본 산케이 신문과 인터뷰에서 귀화했음을 밝혀 충격을 주고 있다. [전민조 다큐멘터리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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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나고 자란 장훈은 18세 때 프로야구 구단 도에이 플라이어스와 계약했다. 외국인 선수는 2명까지만 출전이 가능한 규정 때문에 구단은 한국 국적의 장훈에게 일본에 귀화할 것을 제안했다. 판잣집에 살았지만 자존심이 대단했던 장훈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야구 그만두라”고 했다. 일본에서 태어난 선수는 국적 불문 외국인 선수 제한 규정을 받지 않는다는 새 규정이 이때 만들어졌다.

일본 프로야구 개인 최다 안타는 장훈이 기록한 3085개(1959~1981년)다. 통산 타율이 3할이 넘으면서 500홈런, 300도루 이상을 기록한 선수는 그가 유일하다. 2007년에 나온 장훈의 자서전 제목은 ‘일본을 이긴 한국인’이다. 귀화도 거부한 재일교포가 최고 선수가 되는 것을 보고 동시대 한국인은 큰 긍지를 느꼈다. 그는 은퇴 후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 특별보좌를 지내면서 한일 간 교류, 한국 야구 선진화에도 기여했다. 2007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그랬던 장훈이 최근 산케이신문 인터뷰에서 “몇 년 전 국적을 바꿨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20년 넘게 KBO 총재특보로 일했는데 한국시리즈, 올스타전 초대는 한 번도 없었다”며 “은혜도, 의리도 잊어버렸다”고 했다. 뭔가 단단히 화가 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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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야구의 전설 장훈. 연합뉴스


노년 장훈의 생각과 감정을 짐작게 하는 인터뷰가 2023년 12월 국내 신문에 실렸다. “언제까지 일본에 ‘사과하라’ ‘돈 내라’ 반복해야 하나요? 부끄럽습니다(중략). 일본과 대등하게 손을 잡고 이웃 나라로서 가면 안 되겠습니까.” 선수 시절 야유는 들었지만 꼭 한국인이라 그런 것은 아니라고도 했다. 장훈의 전성기 시절 사진을 보면 그을린 피부에 쏘아보는 눈빛이 강철처럼 날카롭다. 핑계나 남 탓 따위는 평생 한 번도 안 했을 것 같은 남자의 얼굴이다. 실력 하나로 일본 야구를 평정한 그로선 영원한 피해자로 남고 싶어하는 조국을 이해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탄핵 여파에 한일 관계가 다시 갈등 관계로 회귀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장훈도 걱정할 것이다.

노원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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