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주의자’라는 공개 저격을 받고도
어떤 해명도 없이 침묵하고 있다...
“생각이 바뀌었다”는
그 한마디 하기가
그렇게 어렵나
어떤 헌재 재판관은 2년 전 인사 청문회의 한 장면이 소환됐다. 대한민국의 주적(主敵)을 묻는 질문에 답변을 거부하더니 마지못한듯 “(정부·군이) 북한으로 설정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답한 것이었다. 헌재는 자유 민주주의 헌법 질서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다. ‘북한이 주적’이란 말조차 하지 못하는 판사가 국가 정체성을 수호하는 자리에 앉아 있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충격 받았다.
헌재를 좌편향 인사들로 채워 넣은 것은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민주당은 골수 운동권 출신 마은혁 판사를 새 재판관 후보로 밀어붙이고 있다. 마 후보를 임명하지 않는 최상목 대통령 대행에게 “몸조심하라”고 조폭 식으로 협박하더니 탄핵 카드까지 꺼내 들었다.
최 대행은 여야 합의가 없다는 이유로 마 후보 임명을 늦추고 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다. 젊은 시절 마 후보는 체제 전복을 꿈꾸던 마르크스·레닌주의자였다. 민주당은 하필이면 그런 사람을 후보로 낙점했고, 우리는 그의 이념적 정체성에 확신을 갖지 못한다. 이것이 ‘마은혁 문제’의 핵심이다.
1987년 결성된 인민노련은 계급 혁명을 추구하는 반체제 조직이었다. 노회찬·주대환 등이 지도부를 구성하고, 조승수·송영길·신지호 같은 학생 운동가들이 가담해 출범했다. 반제(反帝)·반파쇼·반재벌 등의 강령을 내세웠지만 기본 이념은 마르크스·레닌주의였다. 노동자 주도의 민중 봉기를 일으켜 정권을 타도하고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4년 뒤 인민노련은 대법원에 의해 ‘이적(利敵) 단체’로 판정받는다.
28년간 판사의 길을 걸으며 마 후보가 특별히 문제된 일은 없다. 유일한 논란거리가 2009년 국회 로텐더홀을 점거해 기소된 민노당 당직자들을 풀어준 판결이었다. 이념적 편린을 드러낸 이 판결은 결국 상급심에서 뒤집혔다. 그는 전향한 다른 운동권처럼 생각이 바뀌었다는 입장을 밝힌 적이 없다. 공산 혁명을 신봉했던 과거에 대해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도리도 없다.
그를 아는 사람들의 평가는 엇갈린다. 인민노련을 주도했다가 전향한 주대환 민주화운동동지회장은 ”마은혁이 공산혁명 사상을 접었다”고 했다. 인민노련이 나중에 내부 토론을 거쳐 사회 민주주의의 합법 투쟁으로 방향을 틀었는데, 마은혁이 노선 전환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는 것이 근거였다.
반면 1980년대 노동 운동의 대부 김문수 고용부 장관은 “매우 위험하다”고 했다. 자신이 아는 마은혁은 “결정적 시기에 폭동을 일으켜 소비에트 정권을 수립하려 한 마르크스·레닌주의자”라며 “사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했다. 어느 쪽이 맞는지는 본인만이 알 것이다.
마 후보자가 스스로 밝혀 국민에게 확신을 주기 바란다. 김문수 장관이 ‘공산주의자’라고 공개 저격했는데도 그는 지금껏 어떤 항변도, 해명도 없다. 침묵하는 그를 기어이 헌재에 보내겠다는 민주당의 정체성도 궁금해진다. 마 후보자에게 듣고 싶은 것은 “생각이 달라졌다”는 한마디뿐이다. 그 말 하기가 그렇게도 어려운가.
[박정훈 논설실장]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