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회생절차에 돌입하면 채권자가 함부로 담보권을 행사할 수 없지만, 메리츠금융그룹의 경우는 다르다. 회생과 같은 특수한 상황이 생겨도 담보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구조를 짜면서다. 현재 담보의 소유자는 홈플러스가 아닌 홈플러스와 신탁 계약을 맺은 부동산 신탁회사다.
덕분에 홈플러스가 회생을 신청했어도 메리츠금융그룹은 마음만 먹으면 점포를 모두 팔 수 있다. 업계에서 메리츠금융그룹이 ‘얄밉도록 잘한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이런 이유다.
메리츠금융지주 사옥/메리츠금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잡힌 담보는 홈플러스가 가진 전국 62개 매장으로, 지난해 기준 부동산 감정가는 4조8000억원 수준이다. 메리츠금융그룹 관계자는 담보권 실행 여부에 대해 “(외부에) 홈플러스를 보고 있는 시각이 많다”고 했다.
앞선 2023년 롯데건설 유동성 위기가 불거지자 메리츠금융그룹은 선순위로 9000억원을 지원했다. 당시 금리는 연 12%로, 이 거래로 메리츠금융그룹은 약 1000억원을 벌며 재미를 봤다. 지난해엔 고려아연이 경영권을 위협받자 사모사채 1조원을 떠안으면서 7%의 금리를 챙겼다.
2025년 3월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제423회 국회(임시회) 제1차 전체회의가 열리고 있다. 이날 정무위에서는 홈플러스 사태와 관련해 김병주 MBK 파트너스 회장과 조주연 홈플러스 공동 대표 등 5명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뉴스1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하지만 홈플러스 사태가 국회까지 번지면서 메리츠금융그룹이 앞뒤 재지 않고 담보를 처분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MBK파트너스는 홈플러스의 최대주주이며 신영증권은 카드대금채권을 유동화한 주관 증권사다. 메리츠금융그룹이 담보권을 행사했다간 조정호 회장 등 관련자가 국회에 출석해야 할 수도 있다.
서울 영등포구 홈플러스 영등포점 모습/뉴스1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메리츠금융그룹은 뒤를 생각하지 않고 점포를 모두 팔 수는 없는 입장이다. MBK파트너스에 이어 홈플러스를 망가뜨린 주범으로 지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메리츠금융그룹은 당장 처분할 수 없는 자산을 담보로 잡은 셈이다. 매번 잘해온 메리츠금융그룹이지만, 이번에는 물렸다고 볼 수 있다.
한편 금융감독원은 홈플러스와 관련해 금융회사의 건전성이 타격받진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달 3일 이복현 금감원장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금융사의 익스포저(위험 노출액)는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며 “유통업 특성상 다양한 부동산 자산이 있어 금융권이 대규모 손실을 예상할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문수빈 기자(bean@chosunbiz.com)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