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속 160㎞ 강풍에 LA 산불 ‘통제 불능’…15만명 대피령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카운티의 앨터디나 지역에서 8일(현지시각) 한 소방관이 불을 끄러 달려가고 있다. 로스앤젤레스/AP 연합뉴스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발생한 여러개의 산불이 강풍을 타고 급속하게 번지면서 인명과 재산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이번 불은 하루 만에 건물 1100여채를 잿가루로 만들며 로스앤젤레스 역사상 최악의 화재로 기록됐다.

캘리포니아주 소방당국은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서북쪽 6곳에서 잇따라 발생한 산불로 8일 밤(현지시각) 현재 서울 여의도(2.9㎢)의 39배에 이르는 112㎢의 면적이 불타고 5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주택 등 건물 1100여채가 화재로 소실된 가운데 15만명 이상에게 대피령이 내려졌다. 100만명에 가까운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주민들을 비롯해 남캘리포니아 지역의 150만명가량이 단전으로 인한 피해도 보고 있다. 피해 파악이 진행될수록 사망자 수 등은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불은 전날 오전 태평양에 면한 부유층 거주지 퍼시픽팰리세이즈에서 먼저 발생했고, 이후 다른 곳들에서도 잇따라 불길이 치솟았다.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불이 강풍을 타고 소방당국이 손쓸 겨를도 없이 번졌다. 소방당국은 이날 오후 현재 화재가 전혀 통제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로스앤젤레스 명소인 할리우드도 불길에 위협을 받았다. 해안가에서 시작된 불이 할리우드 대로 인근으로까지 번지면서 할리우드 사인과 그리피스 천문대 등이 있는 할리우드힐스 인근에도 화재 대피령이 내려졌다. 워싱턴포스트는 퍼시픽팰리세이즈는 아파트, 주유소, 상점 등 많은 건물이 초토화됐다며 “큰 폭탄 여러개가 터진 것 같았다”고 전했다. 퍼시픽팰리세이즈에서는 이날 새벽 소화전 물이 고갈돼 화재 진압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강풍으로 소방 헬리콥터가 뜨지 못한 것도 피해를 더 키웠다.

이처럼 불길을 걷잡을 수 없게 만든 것은 ‘샌타 애나’로 불리는 강풍이다. 9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로스앤젤레스 지역에 부는 ‘샌타 애나’는 미국 남서부 사막 지대의 고기압이 협곡을 통과해 태평양 쪽으로 이동하면서 발생하는 강력한 바람이다. 이 바람이 품은 공기는 고온건조해 화재 피해를 더 키운다. 이번에 일부 지역에서는 시속 160㎞의 돌풍이 불었다. 캐런 배스 로스앤젤레스 시장은 퍼시픽팰리세이즈 지역에서는 강풍 탓에 불에 탄 면적이 12분 만에 20배로 불어나기도 했다고 밝혔다. 건조한 날씨가 계속된 것도 로스앤젤레스 교외 지역 덤불을 강력한 불쏘시개로 만들었다. 미국 국립기상청은 ‘샌타 애나’는 이날 오후부터 잦아드는 국면에 접어들겠으나 9일 또 다른 ‘샌타 애나’가 발생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마침 로스앤젤레스와 그 주변 지역 방문에 나섰던 조 바이든 대통령은 행사를 취소하고 캘리포니아를 재난 지역으로 선포했다. 그는 9일 지미 카터 전 대통령 영결식 뒤 프란치스코 교황 등을 만나려고 계획했던 이탈리아 방문 일정을 화재 대응을 이유로 취소했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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