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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9 (목)

100년 만에 깨어난 ‘원조 흡혈귀’… 지금도 통하는 핏빛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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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作 ‘노스페라투’ 리메이크 영화 15일 개봉

조선일보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는 여인 엘렌(릴리 로즈 뎁)은 흡혈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친다. /유니버설 픽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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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와일라잇’의 창백하고 섹시한 뱀파이어는 가라. 살아 있는 시체, 살이 썩어 문드러지고 피가 뚝뚝 떨어지는 원조 흡혈귀가 돌아왔다. 지난해 크리스마스에 미국에서 개봉한 흡혈귀 영화 ‘노스페라투’는 개봉 10일 만에 매출 1억달러를 돌파하며 예상치 못한 흥행을 거뒀다.

15일 국내 개봉하는 ‘노스페라투’는 1922년 독일에서 만들어진 동명 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원작 영화는 브램 스토커의 소설 ‘드라큘라’(1897)를 무단으로 각색하며 제목을 ‘노스페라투’, 주인공 이름을 드라큘라 백작에서 올록 백작으로 바꿨다. 저작권 소송에 휘말리긴 했지만, 영화 역사상 최초의 드라큘라 영화로 대중문화 속 흡혈귀 이미지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번에는 로버트 에거스 감독이 빌 스카스가드, 릴리 로즈 뎁 등 90년대생 배우를 주연으로 100년 전 고전을 화려하게 부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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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노스페라투' /유니버설 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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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페라투’는 오랫동안 원인 모를 악몽에 시달려온 엘렌(릴리 로즈 뎁)과 그녀에게 반한 흡혈귀 올록 백작(빌 스카스가드)의 이야기다. 엘렌의 남편(니컬러스 홀트)은 부동산 계약을 위해 올록이 사는 성으로 떠나고, 혼자 남은 엘렌에게 올록이 마수를 뻗치면서 기괴한 일들이 벌어진다. 에거스 감독은 원작의 줄거리를 충실히 따르되 원작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엘렌의 서사에 초점을 맞춰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고딕풍의 음산하면서도 아름다운 영상, 울부짖는 듯한 현악 오케스트라로 고전을 풍부하게 되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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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독일 무성 영화 '노스페라투'의 올록 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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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만 보면 참지 못하고 송곳니를 드러내는 뱀파이어는 인간의 어두운 욕망을 떼어내 빚은 괴물이다. 브램 스토커의 소설 속 드라큘라 백작은 초자연적인 힘과 성적 매력으로 여성을 유혹한다. 2024년의 ‘노스페라투’에서도 올록 백작은 엘렌의 외로움과 억눌린 성적 욕망이 불러낸 악령으로 묘사된다. 박찬욱 감독의 ‘박쥐’를 비롯해 수많은 흡혈귀 영화에서 목을 물고 피를 빠는 흡혈의 행위는 에로틱하게 그려진다.

17~18세기 흡혈귀 전설은 유럽의 전염병과 함께 유행했다. ‘노스페라투’의 올록 백작 역시 동유럽 출신 외국인으로 쥐 떼와 역병을 몰고 다닌다. 영화의 제목이자 흡혈귀의 별칭인 ‘노스페라투’의 어원도 그리스어 ‘Nosophoros(병을 앓는)’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있다. 초기 뱀파이어는 이방인에 대한 두려움이 만들어낸 괴물이었으나 고립의 시대, 외로운 현대인에겐 오히려 매혹적인 캐릭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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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현지 시각) 미국 LA에서 열린 '노스페라투' 시사회에 참석한 배우 빌 스카스가드. /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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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거스 감독은 퇴폐적이고 음울한 이미지의 배우들을 캐스팅해 기대를 높였다. 북유럽 미남 배우 빌 스카스가드가 어떤 모습으로 변신할지 추측이 난무했다. 그러나 4시간의 특수 분장을 거친 스카스가드의 올록 백작은 흡혈귀의 원형에 가까워졌다. 스카스가드는 팔척 장신에 듬성듬성 남은 머리, 튀어나온 척추, 군데군데 살점이 썩어서 떨어져 나간 괴수로 변신했다. 에거스 감독은 영국 일간 가디언 기고에서 “뱀파이어가 존재한다고 믿었던 발칸반도와 슬라브 지역의 기록을 참고했다”면서 “민담 속 뱀파이어는 점잖은 귀족이 아니라 부패한 상태의 좀비에 더 가까웠다”고 했다.

아버지 조니 뎁의 호러 DNA를 물려받은 듯한 릴리 로즈 뎁의 연기도 압권이다. 온몸을 비틀어가며 몸속에서 벌어지는 악마와의 사투를 보여주면서도,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외로움을 숭고하게 표현했다. 흡혈귀를 쫓는 교수 역을 맡은 배우 윌럼 더포는 뱀파이어의 식지 않는 인기에 대해 “우리는 모두 죽음에 대해 생각하며 살아간다. 살아있는 시체(Undead)가 산 자를 찾아온다는 설정은 굉장히 흥미롭고, 인생의 어두운 면과 밝은 면을 고찰하게 한다”고 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유연하게 변화해온 뱀파이어는 여전히 영화적 상상력의 원천이다. 뱀파이어에 영감을 받은 한국 영화 ‘은빛살구’도 15일 ‘노스페라투’와 함께 개봉한다. 뱀파이어 웹툰을 그리는 주인공이 아파트 청약에 당첨된 후 계약금 마련을 위해 가족을 찾아가는 이야기. 서로 등골을 빨아먹는 징글징글한 가족 관계를 흡혈귀에 빗댔다. 장만민 감독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 착취하기도 하고, 피 같은 돈을 기꺼이 나눠주기도 하는 특수한 관계를 표현하고 싶었다”면서 “아파트를 향한 주인공의 욕망도 뱀파이어의 갈증과 닮았다”고 했다.

☞노스페라투(Nosferatu)

1922년 프리드리히 빌헬름 무르나우 감독이 연출한 독일 무성영화. 브램 스토커의 소설 ‘드라큘라’를 무단 각색하며 흡혈귀의 별칭인 ‘노스페라투’를 제목으로 붙였다. 최초의 흡혈귀 영화로 대중문화 속 흡혈귀 이미지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79년 베르너 헤어초크에 이어 2024년 로버트 에거스 감독이 세 번째 리메이크했다.

[백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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