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마러라고서 '주지사' 발언 한 달여 만에 사임 발표
인플레, 집값 급등에 지지도 급락…트럼프 흔들기도 작용
머스크는 영국 총리 인신공격하고 독일 극우당 공개 지지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6일(현지시간) 오타와에 있는 총리 거주지인 리도 코티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집권 자유당이 자신의 후임자를 정하는 대로 당 대표직과 총리직에서 즉시 사임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로이터=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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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6일(현지시간) 집권 자유당의 수장직에서 물러난다. 새 당 대표가 선출될 때까지는 총리직을 유지하나 9년 넘게 지속된 '트뤼도의 캐나다' 시대가 막을 내렸다.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는 게 어떻겠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당선인의 발언 이후 불과 한 달 만이다.
트뤼도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당의 선거가 끝나면 차기 지도자를 선출한 후 당 대표와 총리직에서 사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의회의 기능은 지난 몇 달 동안 필리버스터 등으로 상실됐다"며 "가장 오랫동안 집권한 소수당 정부로 이를 재정비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트뤼도 총리는 이날 메리 사이먼 총독에게 새 당 대표를 선택할 수 있게 3월 24일까지 의회를 정지해달라고 요청했다.
트뤼도의 정치적 위기는 재무장관이던 크리스티아 프리랜드가 12월에 갑작스럽게 사임하면서 촉발됐다. 국정 지지도는 2015년 취임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이다. 캐나다 비영리 여론조사기관 앵거스리드연구소에 따르면 지난달 24일 기준 트뤼도 총리의 국정 수행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비율은 22%, 부정적으로 평가한 비율은 74%였다.
지난해 12월 30일(현지시각)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 델타 호텔 로비에 도착한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밝은 표정을 짓는 모습.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급작스런 25% 관세 부과 발언에 황급히 마러라고 자택을 방문했던 트뤼도 총리는 트럼프로부터 "미국의 51번째 주지사가 되는 것이 어떻겠냐"는 모욕적인 발언을 듣고 돌아왔다./AP=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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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취임 초기 60%를 웃돌던 지지율은 대형 건설사 수사에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2019년 30%대로 급락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덮친 2020년 초 국정 지지도를 다시 50%까지 끌어올렸으나 높은 인플레이션과 이민에 대한 불안, 주택 가격 부담 등을 해결하지 못해 몰락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트뤼도 총리 사퇴에 불을 댕긴 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다. 트럼프가 마약 밀수와 불법 이주민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캐나다와 멕시코에 25% 관세를 물리겠다고 하자 대응 방향을 두고 트뤼도 내각에 균열이 생겼다. 트럼프는 관세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자신의 마러라고 저택을 찾은 트뤼도를 '주지사'라고 부르며 외교 결례 수준으로 흔들었다. 트뤼도의 사임 소식 뒤에도 트럼프는 트루스소셜에 "캐나다가 미국과 합병하면 관세가 사라진다"고 썼다.
크리스티아 프리랜드 캐나다 부총리 겸 재무장관이 트럼프 차기 미국 행정부가 예고한 고율 관세 대응 문제 등을 두고 쥐스탱 트뤼도 총리와 충돌한 뒤 사임했다고 AP통신 등이 지난달 16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사진은 프리랜드 장관이 오타와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AP=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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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티코에 따르면 트뤼도 총리는 지지율 반등을 위해 감세를 추진했으나, 부총리 겸 재무장관을 맡고 있던 크리스티아 프리랜드가 "값비싼 정치 속임수"이자 "다가오는 관세 전쟁에 써야할 준비금을 강탈하는 행위"라고 반발, 지난달 16일 물러났다. 오랜 기간 트뤼도의 최측근으로 일했지만 트뤼도가 감세 반대를 이유로 좌천을 언급하자 곧바로 사표를 낸 것으로 전해진다.
트뤼도 총리의 대안으로 프리랜드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프리랜드는 전 부총리는 무역 분야 요직을 지낸 데다 미국-캐나다-멕시코 협정(USMCA) 협상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마크 커니 전 캐나다은행 및 영란은행 총재도 당 대표 출마를 고려하고 있다. 누가 당 대표가 되든 자유당은 우익 정치인 피에르 푸알리에브르가 이끄는 보수당에 정권을 내어줄 가능성이 높다. 푸알리에브르는 트럼프의 동맹인 일론 머스크가 대놓고 지지하는 인물이다.
캐나다는 다음 선거 날짜도 정해지지 않은 불확실한 시기에 자유당의 몰락을 막고 트럼프 2.0의 관세 폭풍에 맞서는 숙제를 안게 됐다. 보수당이 정권을 장악하면 캐나다 역시 경제적 포퓰리즘과 반이민으로 급선회할 수 있다. 이는 캐나다 정치에 급격한 변화다.
'영국판 도널드 트럼프'로 불리는 정치인 나이절 패라지(오른쪽)와 머스크(가운데), 왼쪽은 기업인 닉 캔디. /사진=나이절 패라지 영국개혁당 대표 엑스(X·옛 트위터)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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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 트럼프의 나팔수를 자처하는 머스크는 자신 소유의 소셜미디어 X를 십분 활용해 캐나다는 물론 유럽 정치에도 입김을 거세게 행사하고 있다. 머스크는 이날도 영국의 강간 조직 사건을 두고 스타머 총리를 향해 "표를 얻기 위해 대량 강간에 깊이 공모했다"고 공격했다. 머스크는 자신의 X 계정에 "미국이 독재 정부를 전복해 영국 국민을 해방해야 한다"며 찬반 투표에 부치기도 했다.
스타머 총리는 "머스크가 선을 넘었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다음 달 독일 총선을 앞둔 가운데 머스크가 극우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을 공개 지지하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우려를 표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소셜미디어 소유주가 반동적 국제 운동을 지지하고 독일을 포함한 (유럽) 선거에 직접 개입하리라고 누가 상상했겠느냐"며 "이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라고 밝혔다.
김희정 기자 dontsigh@mt.co.kr 김종훈 기자 ninachum24@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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