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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9 (목)

[우보세]아내가 내 카톡을 전부 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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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는 세상]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머니투데이

/사진=카카오톡


지난해 10월 업무상 연락을 주고받던 한 공무원의 '본인상' 소식이 고인의 카카오톡 계정을 통해 전달됐다. 슬픈 소식에 대한 황망함과 함께 그동안 둘이 나눈 대화가 다른 이들에게 노출됐다는 당혹스러움이 몰려왔다. 유가족이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부고장 링크 위로는 2년여 동안 주고받은 업무상 대화가 고스란히 나타나 있었다.

종종 배우자에게 휴대폰 접근권한을 넘기는 이들이 있다. "부부 사이엔 비밀이 없다"거나 "의심받을 게 없으면 패스워드를 내놓으라"는 식이다. 본인의 동의하에 철저히 자신만의 정보를 준다면 괜찮으련만 문제는 대부분 프라이버시가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프라이버시 보호의 중요성을 최초로 역설한 미국 대법관 루이스 브랜다이스는 일찌감치 이런 사태를 예견했다. 그는 1890년 논문 '사생활에 대한 권리'(The Right to Privacy)에서 '즉석사진'과 '신문산업'이 프라이버시라는 신성한 영역을 침범한다며 "벽장 안에서 숨죽여 말한 것들이 지붕 위에서 널리 공표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지난달 29일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 중 일부가 부고 사실을 알려야 한다며 고인의 카카오톡, 네이버 등 계정접근 권한을 제공해달라고 요청했다. 네이버·카카오는 주말 동안 검토를 거친 끝에 '불가'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고인의 프라이버시와 더불어 고인의 계정접근을 통해 침해될 또 다른 이들의 프라이버시 때문이다.

프라이버시는 '정보 자기결정권'으로 불린다. 스스로의 정보를 개인이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는 권리다. 여기서 자신의 정보에는 타인과 나눈 사적인 대화 등이 포함된다. 브랜다이스와 논문을 함께 쓴 법률학자 새뮤얼 워런은 프라이버시를 '혼자 있을 권리'(Right to be let alone)라고도 설명했다.

고인이 자신의 계정정보를 기꺼이 가족과 공유하려 했을 수도, 가족과도 나누기 싫은 비밀을 가졌을 수도 있다. 진실을 알 수 없을 때는 고인의 '혼자 있을 권리'를 존중하는 방식이 맞다.

계정정보를 상속 대상인 '디지털유산'으로 볼지는 아직 논쟁 중이다. 독일 연방대법원은 죽은 자녀의 페이스북 접근권한을 요구한 부모에 대해 "페북과의 계약은 채권적 권리로 상속 대상"이라고 2018년 판시했다. 고인이 남긴 글 등은 '저작권' 개념을 적용해 상속 대상이 된다는 의견도 있다. 다만 국내에서는 아직 계정정보를 '일신전속권'으로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계정 주인만이 행사할 수 있는 권리라는 뜻이다.

법적 논쟁이 끝나기 전이라도 플랫폼사별로 약관정비를 통해 디지털유산 처리원칙을 세웠다면 어땠을까. 이를 교통정리해줄 정부 차원의 가이드라인이 미리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부고를 알리고 싶은 유가족의 절절한 호소와 함께 그들의 마음이 상하지 않게 이를 거절해야 하는 플랫폼사들의 부담이 한결 덜하지 않았을까. 궁극적으로는 디지털 공간에 남겨온 모든 정보와 흔적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만드는 게 필요하다.

최우영 기자 you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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