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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8 (수)

윤석열이 허물어뜨린 공동선, 그리고 편가르기 [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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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윤석열 즉각 퇴진·사회 대개혁 비상행동(비상행동)이 추최한 내란수괴 윤석열 체포구속 촉구 집회가 열린 6일 오후 서울 한남로 일대에서 참가자들이 윤석열긴급체포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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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창 밖으로 텅 빈 겨울 들녘이 휙휙 지나갑니다. 가지만 앙상한 나무들이 빼곡히 열병식을 벌이는 먼 산들. 선배 마지막 가시는 길을 보러 산골 수도원으로 허위허위 달려갔지요. 5분도 채 안 걸리는 천주교 예절이 끝나고 선배는 조그만 단지에 담겨 유리장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몇 안 되는 조문객들 따라 절 한번 꾸벅하고 적막한 수도원을 떠나는 걸로 수십년 선배와의 인연은 끝이 났지요.



소탈하고 해학 넘치고 반듯하셨던 분. 고위 관료를 지냈어도 기득권에 취하지 않고 오히려 그 반대의 길을 걸으신 분. 마지막 길이 이리도 조촐한 게 오히려 선배님다운 거란 생각도 듭니다.



그 불과 한달여 전 선배 부름을 받고 주말 모임에 갔었습니다. 이제는 70~80대가 된 왕년 민주투사들이 모여 낮부터 술을 마셨지요. 훌쭉한 키의 선배는 그때만 해도 정정하셔서 느릿한 충청도 사투리로 좌중을 즐겁게 하셨지요. 그 자리에 모인 이들은 평생 감옥도 마다 않으며 공동선을 향한 수고로운 길을 걸었고 노년의 나이에도 여전히 나라 걱정, 이웃 걱정이라.



한달 전 첫번째 탄핵안 표결이 있었던 토요일에는 등산을 마치고 곱창집에서 텔레비전을 보면서 술을 마셨지요. 주인 할머니와 영감도 삼겹살 삶아놓고 술 마시면서 연신 뭐라 뭐라 욕을 하더군요. 누구를 욕하는 건가. 가만 보니 할머니가 전라도 사투리를 쓰고 있더라고요. 우리는 마음 놓고 “할머니 빨리 탄핵해야죠?” 하고 속을 털어놓았지요. 그러자 할머니가 기겁을 했습니다. “뭐시? 탄핵이라고라?” 내 친구가 경상도 사투리를 쓰니까 당연히 탄핵에 반대할 거라 짐작했었나 봅니다. 서로 같은 편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니 참말로 민망도 해라. 나는 수습하기 바빴지요. “할머니, 곱창 정말 맛있네요. 탄핵 찬성한다고 다음번에 왔을 때 주방에서 곱창에 몰래 침 뱉어 내보내시는 건 아니겠죠?” 당황했던 할머니도 “아이구, 그럼이지라. 사람 생각은 서로 다를 수도 있는 거니께” 하며 눙치더군요. 하지만 국회 표결 상황을 주인 내외와 같이 보는 건 아무래도 좀 거시기해서 마시던 술병이 비자 그냥 그 집을 나왔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힌두교 경전 ‘바가바드기타’ 첫머리에 나오는 ‘올바름의 들녘’에서 평생 싸움을 합니다. 이 싸움은 우리 개체들의 “유한성” “어리석음” “이기심”에서 비롯된 겁니다.



이번 내란의 우두머리인 대통령은 검사, 대통령이라는 높은 자리에 그만 넋을 뺏겨서 제 유한성, 제 어리석음, 제 이기심을 알지 못하고 저와 남을 싸움터로 몰아갑니다. 군인들이 총을 들고 국회에 쳐들어가는 걸 내란이 아니라며 끝끝내 이를 감싸는 국회의원들, 학자들, 언론들도 제 잇속에 눈이 먼 어리석은 이들입니다. 사실 그들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너나 할 거 없이 다 유한하고 욕심을 부리고 어리석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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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발부받은 내란죄 피의자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 시한 마지막날인 6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 관저 들머리에서 관계자들이 서류봉투를 들고 걸어가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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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은 우리의 이런 이기심과 어리석음에서 비롯된 다툼을 막아내기 위해 여러 제도를 마련해두고 있습니다. 헌법 제37조 제1항,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 제2항은 그 본질적인 부분을 침해하지 않을 것을 전제로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를 위하여 제한할 수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에 따라 우리 대표인 국회는 저마다 다른 이익과 주장을 제한하여 조화시키는 각종 법을 만듭니다. 민법, 형법, 행정법… 이 모든 법들이 다 서로 충돌하기 마련인 저마다의 이익과 주장들을 헌법이 제시하는 공동선의 관점에서 걸러내는 역할을 하는 거죠. 우리의 유한성, 이기심, 어리석음을 그대로 인정하되 그 한계로서의 공동선을 법으로 분명히 정해두는 겁니다.



대통령이 군인들을 시켜 국회를 무력화하고 이것도 모자라 내란 혐의 수사를 위해 발부한 법관의 체포영장마저 휴지 조각처럼 여기는 건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 같은 공동선을 송두리째 허무는 헌법 위반입니다. 민주주의는 모든 주장을 허용하지만 이를 부정하고 제 이익과 주장만을 내세우는 민주주의의 적에 대해서만은 절대로 관용하지 않습니다. 이걸 방어적 민주주의라 하죠. 그래서 공동선을 침해하는 내란죄를 어떤 범죄보다도 엄히 처벌합니다.



‘바가바드기타’의 주인공 아르주나는 올바름의 싸움을 앞두고 어찌 친족을 죽일 수 있겠냐며 망설입니다. 그러자 전체이신 당신이 개체로 이 세상에 내려온 크리슈나는 징징대는 아르주나에게 어서 싸우라며 혼을 냅니다. 그 무기는 총칼이 아니요, 자신의 유한성을 자각하고 이기심과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는 것, 그리하여 집착함이 없이 착한 행위를 하는 것이죠. 예수님도 석가모니 부처님도 ‘나’라는 이기심의 굴레에서 자유롭게 되어 사랑과 자비로 세상을 바로잡으라 가르치셨죠.



하지만 사랑과 자비라는 스승님들의 가르침이 우리에겐 너무 과분한 게 분명합니다. 세속 헌법은 성악설에 터 잡아 우리 편과 상대편의 공존을 위해 모든 인간의 존엄을 선언하고 삼권분립, 의회제도, 언론의 자유, 선거제도 등을 마련해둔 거죠.



사실 나는 탄핵이 1차로 부결되던 날 곱창집 할머니와 마주 앉아 공동선과 편 가르기, 사랑과 자비를 아주 쉬운 말로 토론해보고 싶은 생각도 좀 있었지요. 그런데 할머니는 이번에 대통령이 저지른 일이 얼마나 헌법에 어긋나는 것이었는지를 따지기보다는 탄핵이 우리 편에 유리한지 불리한지에만 관심이 있는 듯해서 그만두고 말았습니다.



제 편의 이익을 기준으로 내란 행위의 신속한 수사와 헌법 재판을 어떻게든 가로막으려 드는 이들이 국회며 정부, 언론 그리고 태극기 인파 속에도 널려 있으니 공동선을 지켜가는 길이 정말로 쉽지는 않아 보입니다. 그리고 이런 일들은 사람 사는 세상에서 영원히 반복되겠지요?



민가도 하나 안 보이는 산자락 수도원에서 그 재미난 말씀도 다 접고 그저 ‘적막’으로 계시는 선배님, 이걸 어쩌면 좋을까요.



한겨레

김형태 변호사(법무법인 덕수).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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