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서울 한남동에서 은박 담요로 몸을 감싼 시위대가 ‘윤석열 체포’를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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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윤석열씨. 일단 체포를 면하신 것 같습니다. 6일 자정이 오기만 기다리며 자축의 폭탄주를 준비하고 계셨나요? ‘인의 장막’으로도 모자라 군용 철조망까지 설치한 걸 보면 적잖이 불안했던 모양입니다.
대통령님이라고 부르지 않는 데 ‘격노’하셨나요. 시민에게 총부리를 들이대라고 명령한 것으로도 모자라, 국가 사법 체계까지 정면으로 모독하는 이가 대통령으로 불릴 자격이 있습니까. 주권자에게 존중받고 싶으면 먼저 주권자를 존중해야 합니다.
당신이 왜 대통령이 되려고 했는지 늘 궁금했습니다. 역대 대통령에겐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었는데, 당신에게선 그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통령이 되는 일’ 자체, 혹은 ‘아내 보호’가 아닐까 어렴풋이 추측해보곤 했습니다.
지난해 12월3일 이후 선명해졌습니다. 당신은 왕을 꿈꿨습니다. 롤모델은 박정희나 전두환이었으리라 짐작합니다. 근거는 유신헌법과 제5공화국 헌법이었겠지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공소장을 보면, 지난해 3~4월부터 비상계엄 선포 직전까지 당신이 ‘비상조치권’ ‘비상대권’을 수차례 언급한 걸로 나옵니다. 비상조치권이나 비상대권은 1987년 6·10 항쟁 이후 개정된 현행 헌법엔 등장하지 않습니다.
내란의 밤, 당신은 잔인하고 무자비했습니다. 다시 짚어봅니다.
“본회의장으로 가서 4명이 (의원) 1명씩 들쳐업고 나오라고 해” “총을 쏴서라도 들어가서 끌어내라” “문짝을 도끼로 부수고서라도 들어가 다 끄집어내” “(이재명, 우원식, 한동훈 등을) 싹 다 잡아들여”. “두 번, 세 번 계엄령 선포하면 되는 거니까 계속 진행해.”
당신과 수하들이 무능하고 허술했던 건 불행 중 다행입니다. 그렇다고 당신의 죄과가 가벼워지진 않습니다. 계엄을 선포하려 했으나 발각돼 실행하지 못한 것(미수·未遂)이 아니라, 계엄을 선포해 실행에 옮겼으나 실패한 것(기수·旣遂)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체포를 면했다며 승리감에 들떠 있을 겁니다. 그런데 모르는 게 있습니다. 당신은 스스로를 가두고 말았습니다. 이제 관저에서 나오면 구치소에 가야 하고, 안 나오면 한남동에 유폐되는 처지입니다.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 출석해 직접 변론하겠다고요? 관저 밖으로 나가는 순간 긴급체포돼 구치소부터 들러야 합니다. 공권력이 방어권을 고려해 자비를 베푼다 해도, 심판정에서 나오는 즉시 체포될 게 분명합니다. 관저에서 헌재까지 무사히 왕복할 길은 없습니다.
지난 5일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주변에 철조망이 설치돼 있다. 성동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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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 ‘법꾸라지’ 석동현·윤갑근 변호사 등의 법기술과 ‘사병’ 박종준 경호처장의 충성심에 기댈 수 있겠지요. 그러나 주권자도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법기술엔 법기술로, 힘에는 힘으로 맞설 겁니다.
체포를 둘러싼 적법성 논란은 끝났습니다. 법원은 체포영장 집행에 대한 이의신청을 기각했습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유효기간 연장을 위한 영장을 법원에 청구했습니다. 체포에 계속 불응할 경우 구속영장 청구는 시간문제입니다.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지 않으면 거의 100% 영장이 발부된다는 건 아시지요. 판사가 구속영장을 발부해도, 버티면 그만이라 여깁니까.
체포와 구속은 무게가 다릅니다. 그때도 경호처가 기꺼이 사병 노릇을 해줄까요. 박종준 등 경호처 간부 4명이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입건됐습니다. 경호처 직원들은 상급자 명령을 따랐다는 것만으로 법적 책임을 면할 수 없음을 압니다.
국가는 “영토 내에서 합법적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막스 베버)입니다. 당신의 ‘내란 어록’대로 압도적 인원을 동원해 “4명이 1명씩 들쳐업고 나오면” 됩니다. 또다시 망설이는 공권력이 있다면, 공수처든 국가수사본부든 문을 닫아야 할 겁니다.
그리고 시민이 있습니다. 폭설이 쏟아지는 거리에서 얇은 은박 담요 한 장 덮고 밤을 지새우는 청년여성이 있습니다. 광장의 시민은 당신 덕분에 전투력이 급상승 중입니다. ‘윤석열이라는 악몽’을 물리치기 위해 담대하고 용감하게, 치열하고 끈질기게 싸우는 중입니다.
2008년 촛불집회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청와대 뒷산에 올라 ‘아침이슬’을 들었다고 합니다. 지금 한남동 관저에선 이 노래가 들릴 겁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헌법 제1조’).
헌법은 힘이 세고, 국민은 더 힘이 셉니다. 속도는 느리지만, 내란 책동은 따박따박 분쇄되고 있습니다. 비상계엄은 해제됐고, 탄핵소추안은 가결됐으며, 헌법재판관 2인도 임명됐습니다. 8인 체제를 갖춘 헌재는 탄핵심판의 쟁점을 압축하고, 5차례 변론기일을 확정했습니다.
당신은 이길 수 없습니다. 이미 지고 있습니다. 조만간 시민(을 대리한 공권력)이 다시 모시러 가겠습니다. 그때까지 알코올과 극우 유튜브를 마음껏 즐기시길.
김민아 경향신문 칼럼니스트 |
김민아 경향신문 칼럼니스트 ma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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