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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6 (월)

치앙마이 거리 적시던 노래… 뜨거운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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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손관승의 영감의 길]

태국 치앙마이에서

삶을 다시 생각하다

조선일보

태국 치앙마이의 불교 사찰. 종교는 없지만 무안공항 희생자들의 영혼과 유족들을 위로하고 한국을 위해 기도했다. /손관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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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까닭 모를 불안한 마음에 잠을 설쳤다. 치앙마이에 와서 처음 겪는 일이었다. 숙소의 텔레비전을 켰다가 고국의 무안공항에서 끔찍한 사고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더 이상 뉴스를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희생자 가운데는 내 지인도 포함되어 있었다. 두 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태국인들은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면 한마디씩 했다. “요즘 한국, 도대체 왜 이런 거냐? 블랙핑크의 리사, 2PM의 닉쿤을 키워줘서 좋아했는데 실망했다.” 환전소에 들를 때마다 뚝뚝 떨어지는 원화의 가치처럼 자존심이 상했다.

답답한 마음에 황금빛 탑이 빛나는 불교 사원에 들어갔다. 117개에 이른다는 치앙마이 불교 사원 중 하나였다. 남방불교 승려들은 오렌지색 법의를 걸친 채 의식을 거행하고 있었다. 비록 종교는 없지만 두 손 모아 희생자의 영혼과 가족들을 위로하고 한국을 위해 기도했다. 무안공항 희생자들도 나와 비슷한 시기에 태국에 와서 사원을 방문하고 가족을 위해 작은 선물을 챙겼을 것이다. ‘내년’을 준비하자며 떠났다가 ‘내세’가 먼저 다가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정말이지 하루 앞을 알 수 없는 게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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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노마드의 성지답게 치앙마이에는 코워킹 스페이스가 흔하다 /손관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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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마이는 태국말로 새로운 도시라는 뜻이다. 일정이 한가한 연말에 올드 시티 구역에 소박한 숙소를 정해놓고 반바지에 샌들 차림으로 코워킹 스페이스에 매일 출근하다시피 했다. 서울의 절반 가격에 커피 한 잔 주문해도 2층 작업실에서 일할 수 있는 공유 공간이다. 20여 년 전 내가 한국 최초로 ‘디지털 노마드’에 관해 책을 쓸 때부터 이 도시는 디지털 노마드의 성지처럼 여겨졌다. 저렴한 물가, 외국인에게 개방적인 분위기, 인터넷 인프라 덕분이다. 나는 향후 10년을 준비하는 주제의 책을 쓰고 있었다. 그런데 10년은커녕 당장 1년의 전망조차 쉽지 않은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열심히 써두었던 신문 연재 글, 신간용 원고를 모두 폐기해 버릴 수밖에 없었다. 아까운 게 어디 그것뿐인가? 글이야 다시 쓰면 되지만 사라진 목숨은 돌아오지 않는다.

우울함에는 몸을 열심히 움직이는 것이 최고다. 기온이 선선한 아침에 구도심 성벽을 둘러싸고 있는 해자를 따라 걷다가 ‘부악 하드 퍼블릭 파크’로 향한다. 작지만 치앙마이의 보석 같은 공원으로, 매일 오전 9시부터 무료 요가 강습이 열린다. 세계 각국에서 온 100명 가까운 건강 미인과 남성들이 서양 여성 강사의 지도에 따라 녹색 공간에서 몸과 마음을 수련하고 있었다. 서양인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지만 중국인, 일본인, 그리고 ‘낯선 곳 한 달살이’ 방문 중인 한국 여성도 얼핏 보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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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에서 요가를 하는 사람들. 힘들수록 몸을 움직여야 한다. /손관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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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걱정? 배 나왔다고 걱정? 아무도 나에 대해 관심 없으니 신경 쓰지 말자! 근처 매점에서 매트를 빌려 눈치껏 따라 하면 된다. 새로워지고 싶다면 먼저 타인의 시선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육체의 근육이 그러하듯 자신감 근육, 감정 근육도 노력해야 만들어지는 법이다. 강습이 끝난 뒤 옆자리 중년 서양 여성에게 소감을 물었다. “여기 오면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뭔가 답답한 것도 잊을 수 있고요.”

바로 그거다. 힘들어도 움직여야 한다.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는 요가의 묘미처럼 인생도 그런 것 같다. 과도한 스트레스는 병을 주지만, 자극이 너무 없어도 사람은 망가지는 법이다. 비슷한 시각 공원의 또 다른 공간에서는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는 독서 모임이 진행되고 있었다. 자유와 독립을 원한다 해도 누군가와 연결될 필요가 있다. 규칙적인 만남과 커뮤니티의 중요성이다. 퍼블릭 파크에서 그리 멀지 않은 ‘Kalm 빌리지’를 향해 걷는다. 태국 북쪽의 화려한 색상의 예술, 디자인, 수공예를 감상할 수 있는 건물 8개로 이뤄진 아름다운 복합 공간인데 입장료는 무료다. 미술에 무지한 사람이라도 이곳의 화려한 색상과 고급 디자인 감각 앞에서는 절로 눈이 떠지기 마련이다. 산악 민족 나가(Naga)족의 생활상까지 두루 감상하면서 새로운 영감을 떠올려 볼 수 있다면 금상첨화. 루프탑에서는 선셋 요가 강습도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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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마이의 거대한 야시장 /손관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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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답답하다면 재래시장에 가보라 했던가. 일요일마다 열리는 선데이마켓은 동남아 최대 규모로, 세계인들이 모두 몰렸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활력 넘친다. 매일 저녁 창클란 도로 양쪽에 걸쳐 열리는 야시장의 규모도 엄청나다. 시장 곳곳에 야외 라이브 무대를 마련해 놓고 수준급 공연을 보여준다. 푸드 코트에서 태국의 볶음국수 팟타이로 간단히 요기하면서 돌아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밥 말리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No, Woman, No Cry”(안 돼요! 그대, 울지 말아요), 레게 음악의 전설과도 같은 노래다. 이 곡의 “잃어버린 좋은 친구들”이란 가사에서 울컥하다가 “So, dry your tears”(그러니 눈물을 거두어요)란 대목에서 끝내 뜨거운 액체가 흘러나오고 말았다. 음악이 주는 위로와 치유가 바로 이런 것인가.

다음 날 아침 치앙마이의 핑강 강변을 따라 걷다가 맨발 차림의 탁발 승려를 만났다. 그가 지날 때마다 상점 주인과 시민이 허리를 낮춘 자세로 공손하게 음식을 공양하며 무언가 기도문을 외는 듯했다.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경건함이 느껴졌다. 수행자는 사흘 이상 같은 나무 아래 머물지 않는다는 삼일수하(三日樹下) 모습을 보는 듯했다. 정치가 혼란스럽고 경제도 어려운 시대에 잠시나마 고통과 집착에서 해방되는 기분이다. 니체의 말이 떠올랐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치앙마이(태국)=손관승 글로생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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