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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7 (화)

[데스크에서] 값싼 안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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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무안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엿새째인 3일 오후 전남 무안국제공항 참사 현장에서 인양 준비 작업 도중 국과수 관계자들이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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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무안공항의 여객기 참사 이후, 그간 많은 위기의 징후가 있었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제주항공 직원들은 회사 이메일을 인증해야 쓸 수 있는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1~2년 전부터 “1년에 공중에서 엔진 4번 꺼짐”, “조종사는 밤샘 비행이 잦고, 정비사도 충분한 시간 들여 정비하지 못한다. 타지 마라”와 같은 글을 올려왔다.

작년 1월 티웨이항공의 한 기장은 베트남에서 이륙을 앞두고 브레이크 패드의 마모 상태가 안전 규정 이하라는 걸 확인했다. 부품 교체를 요구했지만 회사는 문제없다며 출발을 지시했다. ‘운항 불가’ 결정을 내린 기장은 운항 지연을 이유로 ‘5개월 정직’의 중징계를 받았다.

한 저비용 항공사 전직 정비사는 SBS 인터뷰에서 “조종석 왼쪽 창문이 깨졌어요. 내가 ‘비행하지 말자’ 이랬어요. 정작 (정비)해서 왔더니 정비팀장이 ‘야 그냥 끌고 오지 그랬어’”라고 했다고 말했다. “(정비로) 지연을 잡을 수는 있지만, 잡으면 욕먹겠죠. 심리적 부담감이 있다”고도 했다.

항공의 ‘제1 원칙’인 안전을 담당하는 이들이 ‘현실은 안전하지 않다’고 했던 많은 호소를 우리는 귀담아듣지 않았다. 기자도 반성한다.

사고기가 사고 전 이틀간 공항 총 8곳을 13차례나 쉴 새 없이 오갔다는 사실에, 주위 많은 사람은 “이래도 되나” 했다. 하지만 항공사 관계자들은 “전 세계 LCC들이 다 그렇게 한다”, “법 안 지키는 것 하나도 없다”고 한다. 국토교통부가 정한 안전점검 최소 시간 28분은 다 채우고 있으니 괜찮다는 뜻이다.

저비용 항공사(Low Cost Carrier)는 이름 그대로 저가를 앞세워 해외여행 대중화를 이끌었다. 지난 2023년엔 LCC 타고 해외 나간 여객 수가 대한항공, 아시아나 같은 대형 항공사를 넘어섰다. 사람들은 LCC 하면 ‘마일리지 적립 안 되고, 기내식 안 나오는 대신 싼 비행기’ 정도로 생각하지만 안전도 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 깨닫게 됐다. LCC는 조종사 경력, 정비사 수, 비행기 연령, 정비 투자 등 많은 부분에서 대형 항공사에 미치지 못한다. 돈을 적게 낼수록 본인이 탄 비행기의 안전 역시 법적 최소 기준에 가까워지는 것이 현실이다.

이번 사고 이후 주위에 ‘LCC와 지방 공항은 피하겠다’는 분들이 적지 않다. 정치 논리로 지방 공항을 지었든, 항공사를 허가했든 안전만은 철저히 지켜져야 한다. 국민 다수가 불안해한다면 그 기준을 끌어올려야 한다.

모든 안전 수칙은 피로 쓰인다는 말이 있다. 탄핵 정국이라 해도, 수많은 희생을 앞에 두고 안전 수칙 하나 제대로 바꾸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은 국가의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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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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