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에만 2만명이 감염돼, 이 가운데 500명 이상이 숨졌다.’ ‘동승자는 대변인, 비서관 등 3명인데, 이들 모두 남성이다.’ 마스크하고는 달리 도움도 안 되면서 거추장스러운 말이 참 흔하다. 좀 다듬어 보자. ‘~ 감염돼 500명 이상이 숨졌다.’ ‘~ 3명인데 모두 남성이다.’ 원문보다 매끄러워 보인다면 ‘이 가운데’ ‘이들’ 같은 군더더기를 없앤 덕분이다.
대명사뿐 아니라 일반명사도 더러 쓸데없기는 매한가지. ‘에어컨을 오래 쐬면 더위에 내성이 약해져 더위를 더욱 못 참게 된다.’ ‘더위에’나 ‘더위를’이 없어도 말이 되지 않는가. ‘이때 방사선을 내뿜는데, 방사선을 쬐면 암이 생기거나 죽을 수도 있다’ 같은 문장은 ‘이때 내뿜는 방사선을 쬐면’이 깔끔하다.
얼핏 강조하는 느낌도 들지만 이치에 안 맞는 말이 흔해 빠졌다. 당장 저 앞에 쓴 ‘이 자리가 더 낫겠다 싶어’의 ‘더’가 그렇다. ‘낫다’가 ‘더 좋거나 앞서 있다’는 뜻이니 ‘더’는 필요 없다. ‘외신들의 이번 작품 평가가 혹평이 더 우세한 가운데’에서는, 혹평과 호평이 함께 우세할 수 없으므로 ‘더’가 없어야 옳다. ‘지역 균형 개발은 막연히 생각하는 것보다 역사가 더 깊다’도 비교를 나타내는 ‘것보다’가 있으니 ‘역사가 깊다’ 하면 될 말.
그나저나 이놈의 버릇을 어쩐다. 다음 주 토요일에 친구들이랑 모이기로 했다 치자. 휴대전화 메모에 ‘11일’이라고만 적는다. 설마 잊으랴 싶어 누구 만나는지는 빼놓았다 생각해 내느라 끙끙댄다. 군더더기 꺼리는 직업병인가? 예끼, 건망증인 주제에.
[양해원 글지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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