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1.04 (토)

트럼프 2.0…미국과 세계의 디커플링 [신년기획]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미국 대선 다음날이었던 2024년 11월6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당시 공화당 대선 후보가 플로리다 웨스트팜비치 팜비치컨벤션센터에서 아내인 멜라니아와 함께 손을 들고 등장하고 있다. 웨스트팜비치/AP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1월20일 미국과 세계는 다시 미지의 영역으로 항해를 시작한다. 미국과 세계의 ‘디커플링’이다.



이날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도널드 트럼프는 25개 이상의 행정명령을 쏟아낼 것으로 예상된다고 로이터 통신은 보도했다. 그중에는 비합법 이민자들의 대대적 추방과 남부 국경으로의 군 병력 파견, 미국 땅에서 태어난 이에 대한 시민권 부여 폐지 등 이민 제한, 석유 등 화석연료 규제 완화, 파리기후협정 및 세계보건기구(WHO) 탈퇴, 트랜스젠더 병사 전역 및 입대금지, 2021년 1월6일 의사당 난동 사건 연루자 1500명에 대한 사면 등이다. 모든 수입품에 10% 보편관세와 중국 제품에 대한 60% 관세, 멕시코와 캐나다 제품에 대한 25% 관세 부과도 실행될지 주목된다.



트럼프가 취임 첫날 혹은 집권 초기에 실시할 것으로 보이는 이런 조처들은 미국이 그동안 표방했던 자유와 인권, 포용적 국제질서, 이런 가치들을 위한 미국의 관여 등에서 전면적 철수를 의미한다. 미국이 2차 대전 이후 설계하고 주도했던 가치와 국제질서에서 자신을 분리하는 것이다. 미국은 2017년 트럼프의 1기 집권 이후 중국을 글로벌 공급망에서 분리하는 디커플링 정책을 펼쳐왔는데, 이제 트럼프 2기 들어서는 세계로부터 자신을 디커플링하려 한다.



2차 대전 이후 미국은 국제질서를 설계하고 유지하고 주도한 패권 국가였다. 미국은 달러를 통해 세계 경제를, 군사력을 통해 국제 안보를 유지하고 통제하는 패권을 누렸다. 패권에는 비용이 필요하다. 미국은 자국 시장을 개방하고, 유럽이나 동아시아 동맹들에 방위를 제공했다. 2차 대전 이후, 특히 냉전이 종식된 1990년대 이후 세계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미국이 설계하고 주도하던 국제질서로 유지되어 왔다. 명목적으로라도 자유와 인권 등 진보적 가치에 대한 지지뿐만 아니라 달러 결제와 금융망 유지, 해로 보호, 세계무역기구(WTO) 등 다자주의 기구와 협상, 산업에서 표준화 제공, 기존 국경의 준수 등은 세계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미국이 제공했던 공공재였다.



하지만, 트럼프의 미국은 이제 패권 국가로서 비용은 치르지 않고 편익을 누리겠다고 한다. 트럼프의 보편관세 부과 움직임은 이제 미국 시장을 동맹이나 세계의 경제를 위한 포지티브섬이 아니라 제로섬 게임의 장으로 설정한다는 의미이다. 나토 등 동맹국의 방위비 증액이 없다면 나토 탈퇴도 불사하겠다는 경고 역시 그동안 국제 안보에서 공공재로서 미 군사력 사용의 개념을 포기한다는 뜻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동맹을 재규합하는 단호한 신냉전 노선을 선택했다. 2022년 2월 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뒤 러시아와 타협하지 않고 우크라이나를 지원한 것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최근 전세는 러시아 쪽으로 기울었고, 중국의 부상은 더 진전됐다. 미·러 양쪽 진영에 가담하지 않는 글로벌 사우스(북반구 저위도와 남반구 개발도상국)가 부상했다.



이런 현실 앞에서 트럼프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유럽의 문제라며 빠른 종전을 선택하려 하고, 이는 트럼프 대외정책의 시금석이 되고 있다. 트럼프의 미국이 자유와 인권을 명분으로 한 신냉전 자유주의적 개입을 축소하겠으나, 국익 앞에서의 공격적 대외정책의 민낯은 더욱 강화될 수도 있다. 캐나다는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어야 하고 파나마 운하와 덴마크령 그린란드를 미국 소유로 만들겠다는 트럼프의 발언이 대표적이다.



미국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영토 확장 때부터 자신들이 이 신대륙을 책임져야 한다는 ‘예정된 운명’을 2차 대전 이후에는 전세계로 확장했다. 2차 대전 직후 해리 트루먼 당시 대통령은 미국이 “다가올 세대들을 위한 세계의 복지를 위해 전능하신 신이 의도한 책임”을 지고 있다고 설파했다. 미국은 기존의 강대국과는 달리 자신의 이익이 곧 전세계의 이익이라는 ‘미국 예외주의’에 바탕해, 세계에 대한 미국의 관여를 정당화했다. 바이든의 지난 4년은 미국의 이런 지위와 역할을 재확인하려는 고투였으나 미국 내에서부터 거부됐고, 이를 부정하는 트럼프가 대통령에 다시 당선됐다.



또한 ‘1·6 의사당 난동’이라는 내란이라고 볼 만한 사건을 선동하고 성관계 입막음 돈 관련 형사재판에서 지난 5월 유죄 평결을 받은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은 민주주의 위기라고 볼 만한 사태다.



세계는 이제 이전과는 다른 미국에 직면하고 있다. 트럼프의 미국은 ‘미국의 이익이 세계의 이익과 등치되지 않는다’고 공공연히 표방하는 미국이다. 그런 트럼프의 미국이 세계와 국제질서에 결국 어떤 영향을 줄지는 미지수이다. 미국은 특정 국제 문제에서 관여를 후퇴하거나, 혹은 더욱 공격적으로 개입할 수도 있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미국과 세계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멀어지게 됐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대통령에 취임한 직후인 지난 2017년 5월 앙겔라 메르켈 당시 독일 총리는 “우리는 유럽인으로서 우리 운명을 위해 스스로 싸워야만 한다”고 미국으로부터 유럽 독립 선언에 준하는 ‘폭탄 발언’을 했다. 메르켈의 이 말은 이제 유럽이 아니라 세계 전체에 적용되게 됐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한겨레는 함께 민주주의를 지키겠습니다 [한겨레후원]

▶▶실시간 뉴스, ‘한겨레 텔레그램 뉴스봇’과 함께!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