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乙巳年, 역사·문화 속의 '뱀'
교활하고 두려운 존재이지만
생명력·신성함·풍요 등 상징
'시왕도'에선 불의의 심판자로
'교사도'엔 천지개벽 의미 담겨
푸른 뱀의 해, 만사형통 기원
뱀은 어리석은 인간을 경고하거나 벌을 주는 존재로 인식되기도 했다. 19세기에 그려진 민화 ‘시왕도’나 ‘게발도’에는 뱀에게 심판받는 인간의 모습을 표현했다. 특히 시왕도에 담긴 변성대왕 지옥 장면에는 독사 지옥이 등장하는데 인간에게 ‘삶에 충실해야 하고 너무 욕심을 부리면 안된다’는 교훈을 전달하는 데 뱀의 형상을 사용했다. 불의의 심판자 뱀의 형상이 올 한해 정치적 격랑 속 우리나라에 상징적인 의미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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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부터 뱀은 혐오감을 주는 생김새와 공격적인 성향, 그리고 치명적인 독 탓에 인간에게 본능적인 두려움을 갖도록 했다. 우리나라 설화 속에선 용이 되지 못해 악을 품고 있는 이무기나 구렁이가 사람을 해치는 역할로 등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이미지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마찬가지다. 그리스 신화 속에서 뱀은 저주 받은 괴물 메두사의 머리카락으로, 성경 속에서는 에덴동산에서 이브가 선악과를 따 먹도록 유혹하는 존재로 등장한다.
우리나라 전설에서는 주로 ‘구렁이’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구렁덩덩 신선비’에서는 구렁이가 된 선비가 허물을 벗음으로써 비로소 인간 세계의 일원이 된다. ‘용두사미(龍頭蛇尾)‘라는 말에서는 아예 뱀을 형편없는 ‘꼬리’ 취급한다.
생태학적 관점에서는 뱀은 대개 방어적이며 일부러 인간을 공격하는 성향은 없다고 한다. 오히려 사람을 마주치는 것을 원치 않고 가까이만 안 가면 절대 물려고 덤벼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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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을 숭고한 존재로 여기는 사례도 많다. 사람들은 특히 뱀이 허물을 벗으며 성장하는 모습과 겨울에 사라졌다가 봄에 다시 출현하는 생존 본능을 경이로워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뱀은 끊임없이 변하고 혁신하면서 영원히 사는 신성한 존재로 여겨졌다.
뱀은 또 많은 알과 새끼를 낳아 다산과 풍요의 상징이기도 하다. 토속신앙에선 구렁이를 ‘업’이나 ‘지킴이’로 불렀고, 업단지를 만들어 쌀이나 돈을 넣어 모시며 액운을 떨치고 부를 기원했다. 뱀은 해로운 쥐를 없애는 실질적인 도움도 준다. 올해는 ‘푸른 색’이 입혀져 더 긍정적으로 인식된다.
뱀을 소재로 한 우리 문화유산 가운데 친숙한 것은 고구려 고분 벽화다. 중국 지린성 고구려 고분 삼실총에서 발견된 두 마리의 뱀이 ‘S’자가 서로 얽혀 있는 모양으로 그려진 벽화 ‘교사도(交蛇圖)’는 천지개벽, 생명탄생, 문화창조 등의 위업을 기리는 의미가 담겼다. 중국의 창조신화의 하나로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복희여와도(伏羲女渦圖)’도 유사한 취지다. 신라시대 토우로 국보 195호인 ‘토우장식장경호’에는 뱀의 모양이 선명하다.
십이간지에 맞춰 한국인들은 뱀띠해에 태어난 사람을 총명하다 여긴다. 이는 십이지 중에서 뱀은 지혜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방위에서는 남남동쪽으로 한창 해가 뜰 때인 오전 9~11시를 가리킨다.
다만 12년 만에 돌아오는 뱀의 해라도 올해 60년만인 ‘을사년’은 대체로 부정적으로 인식돼 온 것이 사실이다. 1905년 을사년은 을사늑약이 강제된 해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 우리말에 ‘을씨년스럽다’는 표현은 을사늑약이 체결된 당시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소설가 이해조가 쓴 신소설 ‘빈상설’(1908)에 ‘을사년시럽다’로 처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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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뱀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는 전시 등 행사가 연초부터 전국 곳곳에서 열린다. 서울 종로구 국립민속박물관은 오는 3월까지 을사년 뱀띠 해 특별전 ‘만사형통’을 통해 뱀에 대한 인간의 복합적인 인식이 담긴 전 세계의 민속문화를 소개하고 있다. 대전 국립중앙과학관은 7일부터 2월 9일까지 열리는 ‘사(巳)이언스, Science!’ 특별전에서 뱀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개발 중인 다양한 과학기술 결과물을 설명한다.
정상훈 한국민속박물관 관장은 “뱀이라는 동물에게 천 개의 얼굴을 만들어준 것은 인간인 데 이런 마음을 거울 삼아 모든 일이 뜻대로 이루어지는 을사년을 기원한다”고 말했다.
최수문기자 기자 chsm@sedaily.com서지혜 기자 wis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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