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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2 (목)

[과학세상] 백마디 말보다 중요한 한 장의 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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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투데이

작년 연구개발예산이 삭감되는 아픔을 겪은 후에 2025년도 예산은 복원됐다. 과학기술 3대 강국을 목표로 3개 게임체인저 기술개발에도 3조4000억 원을 투자한다. 3대 게임체인저는 AI반도체, 첨단바이오, 양자기술이다. AI반도체는 우리 삶에 이미 침투했고, 단시간에 개발된 코로나19 백신에서 첨단바이오의 파괴력을 맛보았다. 양자 해킹으로 통장이 털릴 수 있으니 양자 기술도 이해는 된다.

3대 게임체인저에 돈을 쏟아부으면 우리나라가 3대 기술강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 해외에서 코로나19 백신이 개발되자 국내도 백신도 곧 나온다며 큰소리 쳤다. 메신저리보핵산(m-RNA) 백신 개발자들이 2023년 노벨 의학상을 받는 동안 국내 과학자들은 백신 개발을 중단했다. m-RNA 백신의 개발 원리는 알려져 있어도 성공 공식은 디테일에 있다.

美 과학연구 추세, 인체지도 그리는 수준


첨단바이오 과제의 목표물에는 바이오정보를 제공하는 포털 구축도 있다. 포털의 벤치마킹은 미국국립보건원에서 기금을 대는 인간바이오분자지도(HuBMAP)이다. 잠시 살펴본 국내 포털은 HuBMAP에 비하면 주소를 밝힐 수 없을 정도로 창의성이 없다. HuBMAP이 구글지도라면 국내 포털은 파일관리시스템에 불과하다.

HuBMAP은 인간의 신체를 세포단위까지 촬영하여 지도를 만들겠다는 프로그램이다. 대체로 정보를 전달하는 방법에는 문서, 동영상 등도 있지만 지구 지도, 천체 지도, 해양 지도에서 보듯이 지도가 더 직관적인 방법이다. 지도의 위치정보에 주변정보들이 가미되면 지도는 최상이다. 백마다 말보다 보는 것이 낫지만 이제는 한 장의 지도를 던져주는 사람도 있다.

현대 문명은 가시적 사물뿐만 아니라 비가시적 관계를 원한다. 물리적 지도에 관계가 더해지면 도면이 된다. 도로의 연결관계, 이웃토지와 경계관계, 친인척 관계는 물질 세계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도면에는 나타난다. 산업체 종사자는 도면을 읽지 못하면 업무가 불가능하다.

이제까지 인체지도는 물질적 장기 배치만 보여주었지만 HuBMAP은 관계까지 보여준다. 인체는 물리적 작용 외에 화학적 작용, 생리적 작용도 일어나는데 이를 해석하려면 세포 간, 세포 안의 소기관 관계까지 알아야 한다.

도면을 만드는 기술이 만만하지 않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옆면에서 본 얼굴, 정면에서 본 몸통을 이어 붙여 인물을 그렸다. 앞면도, 측면도를 각각 그리는 현대 도면에 비하면 이집트 기법은 물감과 종이를 절약했다. 덕분에 파스칼은 코 높이를 알 수 있었고 클레오파트라 코가 조금만 낮았더라면 세계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라는 통찰을 얻었다.

HuMAP 제작에도 이집트인의 번쩍이는 창의성이 보인다. 분석 장비를 8년 만진 경험으로 촬영에 사용된 분석기기를 살펴보았다. 질량분석기와 현미경을 제외하면 이름도 생소하다. 조직과 세포를 관찰하는 대표적인 기술이 광학 현미경이데 이제는 형광물질로 소기관을 선택적으로 염색하여 관찰하는 형광현미경도 있다.

정보 통합 있어야 선진강국과 경쟁 가능


현미경은 소기관의 물리적 배치를 그대로 볼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세포 안의 수백 가지 화학적 물질을 구별하기 어렵다. 세포안의 디옥시리보핵산(DNA), 리보핵산(RNA), 단백질 등은 시퀀싱 기법을 통해야 구별이 가능하다. 단점으로 시퀀싱은 세포를 믹서에 갈아 분석하므로 위치정보가 사라지는 한계도 있다. 만일 세포를 갈기 전 각 위치에 동위원소 라벨을 붙인 후 분석하면 라벨을 통해 위치정보를 복원할 수 있다. HuBMAP은 이렇게 촬영된 모든 사진 자료를 통합시키는 방법과 도구를 제시한다.

우리나라 과학자들도 분석장비로 특정 사진을 얻을 수 있고 신약을 개발할 수 있다. 그러나 정보의 통합 없이는 해외에 처질 수밖에 없다. 2조 원이나 투자하는 첨단바이오가 2700억 원에 불과한 HuBMAP에 밀릴 수는 없다. 말로만 3대 기술강국이 아니라 발로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 같은 과제 기획자를 기다린다.

[정연섭 한국원자력학회 사무총장, 과학칼럼니스트 (opinio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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