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후 최고 수준 환율
수입 원자재 가격 상승 불가피
일부 업체 사업계획 조정 나서
"식품 물가 더 오르나" 우려
해외 비중 높은 제조사는 반사이익 기대감
3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이날 오전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7.5원 오른 1475.0원에 출발했다. 지난 27일에는 장중 한 때 1486.7원까지 치솟았는데 환율이 1480원대 후반까지 뛴 것은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3월16일(1488.0원) 이후 15년 9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환율 상승(원화가치 하락)은 식품업계에도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환율이 오르면 원맥과 원당 등 수입 가격이 상승하기 때문이다. 원맥은 밀가루의 원료이며 원당은 설탕의 원료로 라면이나 빵, 과자 등에 들어간다.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국내 최대 식품업체이자 밀가루와 설탕, 식용유 등을 생산하는 CJ제일제당은 올해 3분기까지 원당 매입 비용이 6631억원이었다. 원맥을 사들이는 데는 2281억원을 썼다. 식용유 등을 제조하는 데 사용하는 대두 매입 비용은 9346억원이었다. 하지만 이달 비상계엄 사태를 계기로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서 원재료 수입 가격 또한 상승이 불가피해지고 제품 원가에도 압박이 생겼다.
식품업체들은 통상적으로 원재료 재고를 품목에 따라 길게는 3∼4개월 치까지 보유하지만, 이 같은 고환율이 지속되면 비용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대표적으로 CJ제일제당은 올해 3분기 보고서에서 원·달러 환율이 10% 오를 경우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면 세후 이익이 141억원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당시 CJ제일제당이 적용한 원·달러 환율은 1352원이었다. 현재 원·달러 환율이 1470원 안팎인 점을 고려하면 이미 9%가량 상승한 셈이다.
원·달러 환율 상승은 특히 내수 비중이 높은 식품 업체에 더 큰 타격이다. 고환율로 수입 원재료 매입 가격이 올라가는 상황이 지속되면 제조사들은 원가율 상승을 고려해 매출과 영업이익 등 사업계획을 조정할 수밖에 없다. 농심, 오뚜기 등 내수 비중이 높은 라면 제조 업체가 특히 그렇다. 이들 업체는 라면에 들어가는 밀가루와 팜유, 대두유 등의 가격이 오를 가능성을 예의주시하는 한편 환율 상승을 반영해 내년도 영업이익과 매출 목표 조정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27일 오전 원·달러 환율이 1480원을 넘어섰다. 서울 을지로 하나은행 딜링룸에 환율 등 지수가 표시되고 있다. 허영한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커피음료, 주스 등을 생산하는 음료 제조 업체들도 커피 원두, 과즙 등 원재료 수입 단가가 상승해 어려움에 직면한 건 마찬가지다. 국내 원유로 생산되는 흰 우유와 일부 유제품을 제외하면 대부분 제품을 수입산 재료로 만들기 때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수입 시기별로 다르겠지만, 지금과 같은 고환율이 이어진다면 원가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대부분 업체가 환율 1350원 안팎으로 사업계획을 세웠는데, 이 역시 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수입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제조 업체 부담이 가중된다면 가격 인상은 불가피한 수순이다. 실제 본지가 이달 초 유통업계 주요 기업 22개 사의 최고경영자(CEO)를 대상으로 진행한 2025년 경기 전망 설문 조사에서 10개 사 CEO가 "내년에 가격을 인상할 수 있다"는 취지로 답했다. 소비자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최대한 감내하고 있으나, 고환율로 현재 수준을 벗어나면 가격 인상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었다.
반면 고환율 덕을 보는 식품업체도 있다. 내수 비중보다 해외 사업 비중이 큰 업체가 그렇다. 미국과 동남아 등 해외시장에서 '불닭볶음면' 신화를 쓰고 있는 삼양식품이 대표적이다. 삼양식품의 올해 3분기 기준 해외 매출은 3409억원으로 전체 매출(4390억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80%에 육박한다. 특히 삼양식품 해외 매출은 지난해 동기 42.2% 오르는 등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다. 앞서 삼양식품은 올 초 내놓은 사업보고서에서 원·달러 환율이 10% 오르면 세후 이익이 61억원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 바 있다.
조성필 기자 gatozz@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